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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울한 봄날의 소극

중앙일보 2010.03.25 00:33 종합 35면 지면보기
수상한 날씨 탓일까, 아니면 수상한 시절 탓인가. 유난히 더디 오는 봄이 아쉽기만 한 3월, 사회 곳곳에서 중세 유럽에서 성행하던 한 편의 소극(笑劇)을 연상케 하는 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실없는 해학과 풍자, 노골적인 농담으로 관객을 웃기던 본래의 소극과 달리 2010년판 ‘봄날의 소극’ 시리즈는 비속함은 닮았으나 관객에게 ‘웃음’보다는 되레 ‘우울’을 선사한다.



그 서막은 지난 7일 지상파 방송 3사의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대축제 동시 생중계로 올랐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송 3사가 정규 프로그램을 결방하고 무려 2시간 동안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 거국적 행사를 방송했다. ‘피곤한 선수단을 위한 배려’라고는 하지만 올림픽 단독중계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였던 이들의 의기투합은 ‘국민화합’에 스포츠를 동원했던 군사독재 시절 관제방송의 망령을 되살렸다. 암울했던 80년대로 회귀한 이 소극은 동시간대 방송된 정규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32%를 넘어선 반면 3개 채널 시청률이 고작 15%로 흥행에도 참패했다.



제2막은 KBS 개그콘서트의 ‘동혁이형’의 죄목을 들고 나온 보수성향의 ‘방송개혁시민연대’가 열었다. 복학생 복장의 개그맨 장동혁이 비싼 커피 값과 휴대전화 요금, 등록금 인상 등 불합리한 사회적 문제를 꼬집는 사회풍자 개그를 놓고 ‘국민은 항상 피해자이고 정부와 기업은 가해자로 결론을 내리는,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한 선동적 개그’란다. 본디 코미디란 현실에 대한 풍자와 해학, 뒤틀기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제공하는 것이 본령이거늘 이데올로기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한 편의 소극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회풍자 개그가 인기를 구가하는 시대의 이면엔 언제나 일련의 억압과 통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유머와 풍자조차 용인되지 않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이 소극의 3막은 유인촌 장관의 일명 ‘회피 연아’ 동영상을 유포한 누리꾼 고소로 완결됐다. 겨울올림픽 선수단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유 장관이 김연아 선수에게 꽃다발을 걸어준 뒤 포옹하려 하자 김 선수가 이를 회피하는 듯한 장면을 편집한 내용이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유 장관이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하려 했으나 마치 성추행을 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동영상을 편집해 올렸으므로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며 수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고위 공직자가 고의성 없는 한낱 패러디 영상을 두고 구체적인 명예훼손 결과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자의적 해석을 염려해 고소까지 한 것은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다. 더군다나 그 주체가 연기자 출신이며 문화를 관장하는 부처의 수장이라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용이 있을 때 비로소 문화는 진보한다.



또 다른 소극 한 편을 보자. 주인공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다. 한 교육단체의 창립대회 축사에서 지난 10년간의 ‘좌편향 교육’으로 법치주의가 무너졌으며, 흉악범죄와 아동 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세종시’를 ‘좌파 정권의 대못’이라고 규정했던 그의 ‘좌파 타령’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논리적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법률가 출신의 주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굳이 범죄와 교육의 인과성을 따지자면 인성 등 전인교육은 뒷전이고 경쟁과 수월성교육을 앞세워 교육의 사각지대와 낙오자들을 양산하는 우파 교육이 더 위험하지 않겠는가. 봉은사를 둘러싼 밀담의 진위를 떠나 스님에게까지 ‘좌파’를 운운했다면 그가 생각하는 좌파의 실체가 무엇인지 마냥 궁금하다. 혹여 집권여당의 반대세력을 통칭하는 동의어가 아닐까.



‘봄날의 소극’ 시리즈 결정판은 스스로 발등을 찍고 물러난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연이다. 공영방송 MBC를 점령한 그의 무용담 속에 등장하는 ‘큰집’ ‘조인트를 까고’ ‘좌빨 대청소’ 등 조폭 수준의 원색적 표현은 개인의 수준 문제라고 치자. 도대체 ‘큰집’이 어디이기에 공영방송 사장을 불러다 조인트를 까며, MBC가 어느 나라 방송이기에 좌파가 그리도 많아 “이번 인사로 MBC 좌파 대청소는 70~80% 정도 정리됐다”고 하는 것인가.



하루하루 팍팍한 삶에 그다지 웃을 일 없는 국민을 위해 기획한 소극이라면 이제 제발 그만두시라. 시대와 역사의 퇴행을 절감하게 하는 이 저열한 ‘봄날의 소극’ 시리즈가 정녕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면 자괴감과 모멸감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김미라 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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