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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이게 다 MB 때문이다’

중앙일보 2010.03.18 19:53 종합 34면 지면보기
고려대와 연세대는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양대 명문으로 일컬어진다. 그만큼 라이벌 의식도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고려대 재학생인 김연아가 겨울올림픽에서 사상 최고 점수로 금메달을 땄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 피겨계(界)의 경사이니 고려대의 기쁨은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다. 주요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고려대-김연아’를 홍보하는 광고까지 냈다. 연세대나 그 동문들의 심기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세대가 자랑할 만한 스포츠 선수를 찾아보았단다. 프로골프 스타 신지애? 그는 연세대 체육교육학과에 재학 중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LPGA의 여왕도 국민적 인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김연아에게 처진다. 고려대 사람들이 “우리에겐 김연아가 있어”라며 뻐길 때 연세대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고심 끝에 그들이 만든 말은 “우리에겐 MB가 없어”였단다. 최근 사석에서 들은 농담이다.



이명박(MB) 대통령이 오죽 싫으면 우리 학교 출신이 아니라고 자랑까지 할까 싶기도 하다. 마치 대한민국이 중간세력은 없고 친(親)MB·반(反)MB로만 나뉜 듯이 비친 지 이미 오래됐으니 그런 농담이 만들어지고 통용될 만도 하다. MB를 싫어하는 사람은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중간파 국민들도 재미있어 할 테니까.



감정이 논리를 앞서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처음에는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싫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싫으니까 싫은’ 상태가 된다.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아주 좋은 먹을거리요 불쏘시개다. 우리 속담에 ‘며느리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발뒤꿈치가 아무리 고와도 시어머니에게는 미운 며느리의 신체 일부분일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무던히 욕을 들었다. 오죽하면 집권 말기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제목을 단 소설까지 나왔겠는가.



최근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 논란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2008년 7월 9일 일본 도야코에서 배석자 없이 MB를 만난 후쿠다 야스오 당시 일본 총리가 “교과서 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를 기술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MB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대답했다는 게 이른바 ‘문제 발언’ 의혹이다. 2008년 7월 15일자 요미우리 신문이 이를 보도했으나 한·일 정부는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고, 요미우리 신문도 곧 인터넷에서 기사를 삭제했다. 그러나 우리 측 시민소송단 1886명이 “요미우리의 악의적 허위 보도가 대한민국 자존의식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을 계기로 인터넷 공간이 달구어지자 야당에서 다시 MB를 압박하고 나섰고, 청와대가 나서서 “사실무근임을 확인한 종결된 사안”이라고 재차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사태의 핵심은 MB가 과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용인하는 듯한 말을 했느냐 여부다.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재판 과정이나 언론의 후속 취재를 통해 밝혀야 할 것이다. 나는 MB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래.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실어도 좋다”고 일본 총리에게 말했을 리 없다고 추측한다. 그건 정치적으로 ‘사망 선고’ 감이기 때문이다. 2008년 요미우리 보도 직후 그동안 조용히 치러오던 해군과 해경, 공군의 독도 방어훈련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했던 MB다. 독도 문제의 폭발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MB가 독도 팔아먹는다’는 식으로 번지니 버선이라도 벗어 발뒤꿈치를 보여주고 싶은 심정 아닐까. 민주당 부대변인이 소송을 대리하는 것도, 야당 정치인들이 잇따라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나는 정공법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오조준(誤照準)이다. MB가 싫다면 다른 방법으로 공격했어야 했다. 결국 국민 감정에 편승해 선거에서 득 보자는 속셈 아닐까. 왜 일개 외지 보도에 온 대한민국이 놀아나야 하나. ‘이게 다 MB 때문이다’는 소설 한 편이 더 나올 것 같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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