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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딛고 선 기업들 <3> 대한생명

중앙일보 2010.03.18 03:01 경제 8면 지면보기
“1조6150억원에서 7조6865억원으로. 이런 ‘클린 히트’는 없을 겁니다.”


“경영 정상화까지 보수 안받겠다”
오너 끌고 전문가 밀고 … 상장 결실

한화그룹 장일형 부사장의 말이다. 계열사인 대한생명의 ‘턴어라운드’를 가리키는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대한생명의 변화는 두 개의 숫자에 극명하게 담겨 있다. 1조6150억원은 2002년 매각 주관사였던 메릴린치가 평가한 대한생명 가치의 상한선이다. 주당 가치로 치면 2275원이었다. 7조6865억원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7일 종가 기준 대한생명의 시가총액 규모다.



이날 대한생명은 창립 64년 만에 증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장 첫날 시총 기준 29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삼성전기 다음이었다.



국내 1호 생명보험사 대한생명은 오랫동안 업계 2위 자리를 지켜 왔다. 1985년엔 국내 최고 높이의 63빌딩도 세웠다. 86년 총자산 1조원, 96년엔 10조원을 돌파하며 빠르게 사세를 키워 왔다.



대한생명의 발목을 잡은 건 전 대주주의 방만 경영이었다. 전 대주주의 횡령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 대출로 회사는 흔들렸다. 99년 금융감독원의 조사에서 자산을 초과한 부채 규모가 2조9000억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대한생명은 ‘부실 금융회사’로 지정됐다. 이때 공적자금이 들어가면서 국영보험사가 됐다.



신뢰가 무너지면서 고객들의 해약은 빠르게 늘어 갔다. 업계 순위도 3위로 밀려났다. 예금보험공사는 두 차례에 걸쳐 총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대한생명을 일단 연명시켰다. 하지만 다시 민간에 되파는 데는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02년 12월, 한화컨소시엄이 8236억원에 대한생명 지분 51%를 인수했다. 김승연 회장은 당시 맡고 있던 다른 대표이사직을 떼고 직접 2년간 대한생명 대표이사를 맡았다. “회사 경영이 정상 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보수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오너의 의지가 담겨서였을까. 조직의 힘은 다시 살아났다. 2003년부터 매출과 시장점유율이 다시 2위로 올라섰다. 김 회장에 이어 대표이사를 맡은 신은철 부회장은 보험통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영업을 강화했다. 오너의 리더십이 재기의 시동을 걸었다면 전문경영인의 관리력이 궤도 진입을 이끈 셈이다.



2002년 한화가 인수할 당시 29조원이던 총자산은 7년 만에 56조원으로 증가했다. 2006년엔 업계에서 두 번째로 수입보험료 1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인수 당시 2조2906억원에 달했던 누적결손금은 2008년 모두 털어냈다. 95.6%에 불과했던 지급여력 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228.1%로 껑충 뛰었다. 국내 보험사로는 처음으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중국 시장에서 합작사 설립도 추진 중이다. 대한생명은 이를 통해 국내 보험사 가운데 ‘해외 매출 1위’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증시 상장으로 대한생명은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셈이다. 17일 상장기념식에서 신은철 부회장은 “이번 상장으로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돼 글로벌 생명보험사로 거듭나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대한생명은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 중 4800억원은 영업조직 구축에, 3000억원은 해외시장 진출과 수익원 다각화에 각각 쓸 예정이다. 나머지는 회사에 적립해 두고 지급여력비율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계획이다.





신 부회장은 “상장기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투자자들에게 많은 정보와 한 단계 높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도 말했다. IR팀을 새로 만들고 공시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이어 가겠다는 것이다.



대한생명의 상장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서도 반가운 일이다. 지금까지 대한생명이 비상장이다 보니 예보는 지분을 팔아 치우기가 쉽지 않았다. 예보가 지금까지 회수한 공적자금은 1조2406억원. 아직 2조3094억원어치 지분이 남아 있다. 예보는 6개월이 지나 주요 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수 있게 되면 시장 상황을 고려해 지분을 장중에 팔거나 통째로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는 블록세일에 나설 계획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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