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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상> 탈북한 고위 당 간부 딸 “대한민국에 나를 고발한다”

중앙일보 2010.03.18 03:01 종합 4면 지면보기
하나원(탈북자의 정착을 돕기 위한 통일부 산하 교육기관)에서 나올 때 300만원이 든 통장을 주더군요. 그 돈으로 전남 광주의 임대 아파트로 들어갔어요. 갑자기 혼자가 되니 먹먹하고 외로운 거예요. 탈북자 친구 집들을 전전했지요. 여행 삼아 무작정 강릉도 가 보고, 서울도 가 보고….



그러다 아는 사람이 남자를 소개시켜 줬어요. 이렇게 만난 남편은 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일해요. 딸이 생겼지요. 그렇지만 결혼식은 꿈도 못 꿨어요. 혼인신고도 못했죠. 혼인신고 하면 정부 지원금이 끊기거든요. 애 아빠는 한 달에 130만원 정도 벌어요. 여기에 지원금 60만원을 보태면 200만원쯤 되지요. 전 이렇게 세 식구 살림을 꾸리는 ‘가두녀성(전업주부)’이 됐어요. 공부를 해야 먹고살 길이 열린다고 해서 대학에 다녀요. 등록금은 나라에서 지원해 주더군요.




나도 모르게 보험사기에 …

#1 하나원서 알게 된 언니가 보험 들라고 권유




하나원에서 같이 지낸 언니가 2년 전 보험업자 한 명을 소개해줬어요. 탈북자는 병력(病歷)이 없기 때문에 보험 가입이 쉬워요. 시키는 대로 보험 4개를 들었어요. 월 보험료가 수십만원씩 나가는데 처음 두 달은 보험업자가 대신 내줬지요. 보험만 들어 놓으면 나중에 큰돈 생긴다니 그렇게 한 거예요. 영문도 몰랐지요. 한국 들어오면서 브로커에게 빚을 졌는데 잘 됐다고만 생각했어요. 몇 달 뒤 보험업자 주선으로 입원을 했어요. 당연히 특별한 병은 없었죠. 20일 정도 대전에 있는 병원에서 지냈어요. 이때 업자에게 30만원을 줬어요. 퇴원 후 병원에서 받은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하니 보험금을 주더군요. 탈북 브로커에게 진 빚 300만원은 그렇게 갚았어요. 한 번뿐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해선 안 되는 짓이었지요. 그 뒤로는 정말 필요한 보험 두 개만 남기고 다 해약했어요. 더는 그런 짓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나중에 알았는데 나처럼 보험에 가입해 보험금 타 본 탈북자들이 참 많더군요. 대여섯 개는 기본이고 열 개가 넘는 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있었어요. ‘보험금 못 타 먹는 게 머저리’라는 얘기까지 나와요. 대전뿐만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에 탈북자들이 많이 가는 병원이 있어요. 용인·화성·부천·안산 등등. 또 보험 가입자를 모으는 설계사도 같은 탈북자 출신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렇게 해서 탄 보험금은 대부분 놀고, 술 마시는 데 쓰여요. 북한 가족들에게 브로커 통해 돈을 보내는 사람도 꽤 있다고 들었어요. 돈을 보내다 보위부에 걸리면 빠져 나오느라 또 돈을 써야 하고. 남은 가족들을 탈북시키는 자금으로도 쓰고 있어요. 이래저래 보험사기로 탄 돈을 그렇게 다 쓴다는 거죠. 보낸 돈이 고스란히 북한 가족에게 들어가는 건 아니죠. 한국 브로커, 중국 브로커, 북한 브로커를 통해 중간에 다 떼이고, 국경 수비대·공안에도 뜯기고 아주 작은 액수가 들어가는 거예요. 가령 300만원을 보내면 정작 가족이 손에 쥐는 돈은 100여만원 정도라고 해요. 나중에 전화로 확인해 보죠. 전화 바꿔주는 북한 쪽 브로커가 ‘돈 얼마를 받았다고 얘기하라’고 시키나 봐요. 그럼 북한 쪽 가족들은 시키는 대로 ‘돈을 얼마 받았다’고 얘기하는 식이죠. 이렇게 남에서 북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을, 우리끼리는 ‘한라산 줄기’라고 해요. 중국 내 탈북자가 보내는 돈은 ‘두만강 줄기’, 일본 내 교포들이 보내는 돈은 ‘후지산 줄기’라고 하는 식이죠.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다 털어놓는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이에요. 또 다른 선량한 탈북자들이 이런 세계에 더는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요. 남편은 “오지랖 넓게 괜한 일을 한다”고 말렸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털어놓는 거예요.




매일 공안에 쫓기다 죽는 꿈

#2 몇 년째 심한 두통 … 통일되면 나을까요 ?




“하루 중 20시간은 별별 생각을 다해요. 잠을 자도 악몽에 시달리고요.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은 딸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에요.” 탈북자 김소형씨가 네 살 난 딸의 손을 이끌고 집 앞을 산책하고 있다. 결혼한 탈북 여성에게는 정부보조금이 끊겨 혼인신고도 못 한 채 키우는 딸이다. [강정현 기자]
말로만 듣던 별천지라는 중국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때가 스물둘, 겁도 없었죠. 국경지대인 무산으로 대학생 농촌 동원 갔을 때였어요. 두만강 건너 불빛 환한 중국 땅이 궁금했어요. 밤마다 중국 드나들며 담배·사탕 밀수하는 도강꾼도 많았어요. 저도 밤에 살짝 ‘강타기(두만강 도강을 통한 중국 밀입국)’ 했다가 다음날 저녁에 살짝 건너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몰래 건너간 중국 땅 농가에서는 돼지·닭도 자유롭게 풀어 키우고, 새하얀 밀가루로 수제비도 해 먹더라고요. 우리는 누가 훔쳐갈까 봐 돼지는 땅 파고 토굴에 넣어 자물쇠로 잠가 놓고 키우는데…. 막상 다시 도강하려니 무서워 못 돌아갔지요.



옌지(延吉) 거쳐 선양(瀋陽)으로 갔어요. 식당 일이 끝나면 밤마다 한인 PC방을 드나들었어요. 한국 소식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인터넷으로 남한 사람들과 채팅도 했어요. 중국어를 배워 조선족인 척하면서 한국 여행객들 가이드도 했어요. 또 한국 회사에서 통역도 했지요. 술집이나 노래방에 탈북 여성들을 소개시켜 주고 수수료도 챙겼어요. 그렇게 3년을 떠돌며 돈을 모았지요.



한국에 갈 길을 찾고 있던 중 브로커에게 세 번이나 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다 날렸어요. 중국 허룽(和龍)에 머물다가 공안에 잡혀 투먼(圖們)수비대까지 끌려간 적도 있어요. 북한에 넘겨지기 직전 중국 돈 2000원을 수비대 책임자에게 쥐어 주고 풀려난 적도 있었죠. 그러다 믿을 만한 브로커를 만나 그에게 300만원을 빌려 중국 국경을 넘었어요. 한국에 가면 갚기로 하고요.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운동화가 터지도록 밤새 헤매며 철책 3개를 넘었어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탄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어요.



지금 이 휴대전화 화면에 있는 거 어마니·아바지 사진이에요. 남한에 와서 브로커 통해 세 번 정도 집에 소식을 전했어요. 한 번에 20만~30만원씩 돈이 들어갔어요. 브로커가 북한으로 들어가 가족을 찾아 국경 근처로 데려와 휴대전화로 연결시켜 주는 거죠. 동생하고만 통화했어요. 동생은 “제발 붙잡히지 말라. 우리 다 죽는다. 잘살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전하더군요.



부모님도 남한으로 모셔올 수 있을까 싶어 계획도 세워봤어요. 그런데 김정일이가 화폐개혁 한 뒤로는 전화 단속이 심해지고, 돈 보내는 것도 여의치 않아졌어요. 요즘 밤에는 잠을 잘 못 자요. 매일 밤 악몽을 꾸죠. 공안에 쫓기거나 내가 죽는 꿈이 반복돼요. 새벽 4~5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아요. 몇 년째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어요. 약을 먹어 봐도 소용이 없어요. 통일이 되면 이 두통이 나을까요?




적응 못한 탈북자들, 마작에 빠지다

#3 "북한 사람이래” 그 이상한 시선들 … 나도 한때 왕따




탈북자들이 보험범죄와 같은 나쁜 길에 들어서는 건 결국 이 사회에 적응을 못 했다는 얘기예요. 어렵게 회사에 취직을 해도 ‘북한 사람이래’ 하면서 바라보는 그 이상한 눈빛들….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을 자주 겪어요. 나 같은 경우 처음 대학에 들어가 반년간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요. “남한 사람도 살기 힘든데 저런 탈북자에게 정부가 등록금을 대주는 게 못마땅하다”는 수군거림도 들었어요. 정착금이 바닥나고 취직해도 몇 달을 못 버티다 보니 갈 곳은 뻔하죠. 일본에 원정 가는 여자들도 꽤 있어요. 일본 교포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6개월씩 일해 몇백만원씩 벌어 오지요. 마작에 빠지는 남자도 많아요. 의지할 데가 없다 보니 술독에 빠지고, 결국 도박장으로 가는 거죠. 하나원 동기 여자는 남편이 마작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어요. 서울 구로구나 노원구 쪽 개인 주택에 마작 도박장이 차려져 있다고 들었어요. 정착금·지원금을 그렇게 날리는 거죠.




해양 경찰이 돼 중국인 혼내고 싶다

#4 중국인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 받는 탈북 여성들




해양경찰이 되고 싶어요. 중국인들을 혼내 주고 싶거든요. 중국인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은 여자가 내 주변에 많아요. 18살 여자 아이가 50대 중국인에게 팔려와 성 노리개로 사는 꼴도 봤고요. 23살 된 여자가 아버지와 아들 셋 사는 집에 팔려와 함께 동거하는 것도 봤어요. 나중에 아이를 낳았다는데 누가 아빠인지도 모를 정도로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해요. 그런 경험 때문인지 중국인들만 보면 괜히 화가 치밀어요. 해양경찰이 돼서 중국인들을 단속하고 잡아들이고 싶어요.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돼도 좋겠죠. 중국 떠돌면서 보고 겪은 게 너무 많은 탓인지 억이(기가) 막혀서 가슴 속에 한이 멍울처럼 맺혔어요.



탐사 1·2팀=김시래·진세근·이승녕·김준술·고성표·권근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deep@joongang.co.kr

사진=박종근·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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