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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디지털 애니, 모두에게 영감줄 것

중앙일보 2010.03.18 01:02 종합 27면 지면보기
생텍쥐페리 유족재단과 자선재단 양쪽에서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올리비에 다게는 소설 『어린 왕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를 꼽았다. [김성룡 기자]
“그 어떤 종교서적 못지않게 나를 흔들어, 읽고 나면 숙연해진다.” 법정 스님이 생전 소설 『어린 왕자』를 두고 한 말이다. “바흐의 화음(和音)이 난다”며 손때가 배도록 읽었고,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에도 물론 포함됐다.


국내 방영 협의차 서울 온 생텍쥐페리 유족재단 올리비에 다게

어디 스님뿐이랴. 『어린 왕자』는 성속(聖俗)과 동서양을 넘나들며 ‘화음’을 선사해 왔다. 아날로그 세대가 공유한 문화유산이라 할 만하다. 그런 『어린 왕자』가 52부작 디지털 애니메이션(포스터 사진)으로 태어난다. 생텍쥐페리 유족재단(SOGEX)과 미국 소니사가 합작 투자해, 현재 프랑스 메소드 프러덕션에서 제작 중이다. 올해 말 프랑스·독일에서 먼저 선보인 뒤 내년 초 영국 BBC, 일본 NHK 등에서 일제히 방영된다.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의 국내 방영을 협의하기 위해 최근 SOGEX의 실무대표 올리비에 다게(Olivier D’Agay)가 한국을 찾았다. 다게는 생텍쥐페리의 증조카로서 그의 할머니가 생텍쥐페리의 누이다. 자녀 없이 죽은 작가의 핏줄로서 다게는 ‘어린 왕자’ 저작권 및 각종 라이선스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촌수가 사뭇 멀게 느껴지지만 그는 “작품 곳곳에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영향이 드리워있다”고 말했다.



“생텍쥐페리에게 가장 중요한 분은 그의 어머니였죠. 강인하고 현대적이며 책임감이 강했어요. 어머니와 누이를 포함한 주변 여성들은 ‘어린 왕자’ 속 장미 캐릭터로 구현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애니메이션에선 장미 속에 여성 얼굴을 입혀 의인화했어요.”



인터뷰 자리에서 맛보기 영상으로 확인한 결과, ‘21세기판 어린 왕자’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캐릭터로 거듭 났다. 삐죽한 금발머리에 연미복 망토 차림은 그대로지만 눈가에 소년다운 익살이 흘렀다. 생텍쥐페리가 손수 그린 일러스트보다 애잔함은 덜하되 친숙함이 강해졌다. 샤갈과 달리의 화풍을 섞은 듯한 화면은 초현실적이면서 동화적인 아름다움이 넘쳤다.



애니메이션은 원작에 기초하되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대폭 추가했다. 별을 떠난 어린 왕자가 24개 행성을 여행하면서 각 행성이 처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이야기다. 다게는 “시적이고 현대적인 어린 왕자는 21세기에도 교육·문화적인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며 “어린이뿐 아니라 부모 세대에게도 공감을 살 것”이라고 했다.



1943년 발간된 『어린 왕자』는 180여 개국에서 1억30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선 72년 첫 출간 이래 300여 곳에서 앞다퉈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8년엔 책과 일러스트를 둘러싼 상표권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게는 “책을 많이 내고 많이 읽는 한국 특유의 문화에, 작품 속 귀여운 캐릭터와 일러스트레이션, 보편적인 인생 철학이 사랑 받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과는 처음 만났지만 한국은 여러 차례 왔다. 주로 ‘어린 왕자’의 라이선스 작업에 관여해서다. 일명 ‘어린 왕자폰’으로 불리우는 듀퐁폰이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지로 유명해진 경기도 가평 ‘쁘띠 프랑스’ 등이 SOGEX와 정식 계약한 산물이다. SOGEX는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 80%를 지난해 출범한 ‘생텍쥐페리 자선재단’에 지원한다고 한다.



“세계인은 ‘어린 왕자’를 통해 공통의 가치를 배워왔지요. 동·식물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어린 왕자는 21세기가 맞닥뜨린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숙제와도 만납니다.” 인터뷰 내내 미소로 응하던 그는 기자가 나이를 묻자 “15살(Fifteen)”이라고 눙쳤다. 실제론 쉰살이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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