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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평가전이 나쁜 게 아니라 시점이 문제”

중앙일보 2010.03.18 00:43 종합 29면 지면보기
남아공 월드컵에 임박한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치러지는 한·일전을 두고 축구계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월드컵 앞두고 한·일전 축구계 대부분 반대
“지면 큰 파장, 이겨도 득 없어 선수 부상입으면 어떡하나”

일부 찬성하는 인사들도 있지만 프로팀 감독을 포함한 상당수 축구인들이 축구협회의 한·일전 추진에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김학범 전 성남 감독은 “한·일 평가전이 나쁜 게 아니라 (월드컵을 앞둔) 시점이 문제다. 일본과의 대결은 감독도 선수도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혹시 경기에 지면 파장도 클 것이다. 이겨도 별 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정기전 부활의 명분도 좋지만 월드컵 본선 성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2002 월드컵 기술위원장)은 “누가 봐도 득보다 실이 많은 경기다. 어떤 숨겨진 명분이 있는지 모르지만 월드컵을 앞둔 대표팀에 부담만 안겨주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강희 전북 감독도 비슷한 입장이다. 최 감독은 “한·일전은 정서상 대충 할 수가 없다. 평가전이란 전술 실험도 하고, 선수들 테스트도 해야 하는데 한·일전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머 “월드컵을 앞두고 격전을 치르다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어떡할 것인가”라고 우려했다. 이어 “만일 골을 많이 먹고 지기라도 한다면 팀이 침체 분위기에 빠질 수 있고 후유증이 크다. 현장 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건 존중해 줘야 하지만 평가전이 정말 월드컵을 위한 건지, 아니면 말 그대로 이벤트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번 한·일전은 허정무 감독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양국 축구협회장의 합의를 바탕으로 성사됐다. 축구협회는 한·일전이 2022년 월드컵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한·일전을 월드컵을 앞둔 흥행 카드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축구인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일전이 경기력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선수 부상 등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정에 정통한 박경호 오이타 기술고문은 “지난달 열린 동아시아대회에서 한국에 1-3으로 패한 일본은 독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이겨도 별로 남는 게 없지만 패할 경우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언제든 열 수 있는 한·일전을 왜 월드컵을 앞두고 여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안종복 인천 유나이티드 사장도 “실익이 없는 경기다. 한국도 이젠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경험이 많은데 왜 이런 일정을 짰는지 모르겠다. 준비 과정이 나쁘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멤버인 이태호 동의대 감독은 “한·일전 같은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하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 가서 적응하는 게 낫다. 현장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있게 마련”이라고 조언했다.



소수이긴 하지만 축구협회 입장을 이해하는 축구인들도 있다.



김정남 프로축구연맹 부회장은 “이미 결정이 내려진 상황이다. 논란거리가 있더라도 왈가왈부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낫다”는 현실론을 폈다. 최순호 강원 FC 감독은 “팬들의 높은 관심이 부담스럽지만 패하더라도 선수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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