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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西遊記

중앙일보 2010.03.18 00:32 종합 33면 지면보기
천궁(天宮)을 쑥대밭으로 만든 화과산(花果山)의 돌원숭이 손오공(孫悟空)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해 부처의 반열에 오른다. 중국 사대기서 『서유기(西遊記)』의 기본 플롯이다. 비평가들은 천상세계에 도전하던 오공이 기존 질서에 순응한 노예가 됐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유기는 행실 나쁜 악동(惡童) 새사람 만들기의 좋은 사례다. 석가여래에 의해 오행산(五行山) 아래 500년간 갇혔어도 제 버릇 남 못 주던 오공을 삼장법사(三藏法師)는 어떻게 다스렸을까?



삼장이 오공을 오행산에서 풀어 제자로 삼은 뒤 곧 여섯 명의 강도를 만난다. 오공은 이들을 거리낌 없이 때려죽였다. 제자의 잔혹한 살인행위를 본 삼장은 그를 엄히 질책했다. 불같은 성격의 오공은 버럭 화를 낸 뒤 스승을 버리고 떠난다. 이때 관음보살이 나타나 삼장에게 머리를 옥죄어 구속하는 마법테 긴고아(緊箍兒)를 건네준다. 긴고아가 하드웨어라면 이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긴고주(緊箍呪)다. 삼장이 긴고주를 외우면 긴고아가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 눈이 튀어나오고 머리는 깨질 것 같으며, 이마가 끊어지는 고통을 받는다. 옥황상제·석가여래와 맞짱을 뜰 정도의 신통력을 가진 손오공도 긴고아 앞에선 순한 양으로 변한다.



긴고아의 출처는 본디 석가여래다. 여래가 관음보살에게 세 개의 테와 각각의 주문을 건네준 것. 이 테들은 삼장을 호위한 손오공, 흑풍산 흑풍괴(黑風怪)와 화염산의 홍해아(紅孩兒)에게 씌워졌다. 흉악한 바람으로 삼장 일행을 괴롭힌 흑풍괴는 금고아(禁箍兒)를 쓴 뒤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낙가산(落伽山)을 지키는 수산대신(守山大神)이 된다. 관음보살은 우마왕과 나찰녀의 아들 홍해아에게 금고아(金箍兒)를 씌워 제압한 뒤 선재동자(善財童子)로 삼았다. 악명 높은 요괴들도 긴고아를 쓴 뒤 새사람이 된 셈이다.



오공은 틈만 있으면 삼장에게 ‘송고주(鬆箍呪)’를 외워 긴고아를 풀어 달라고 애원하나 소용 없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불경을 구해 돌아온 공으로 투전승불(鬪戰勝佛)에 봉해진 뒤에야 비로소 속박에서 벗어났다. 최근 전자발찌, 사형제가 논란이다. 몹쓸 사람들에겐 발찌보단 긴고아가 적격이다. 긴고주를 외우면 하시라도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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