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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놀이의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2010.03.18 00:24 종합 35면 지면보기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눈물은 감동이었다. 이 세상에 그렇게 예쁜 눈물의 표정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이 자신에게 바라던 끝에 도달한 무애의 환희. 인고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경외감.



그래서 그의 눈물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가슴에 사무치는 느꺼움에서 오고, 그 소중한 것과 함께 하는 것”(심노숭, 『눈물이란 무엇인가』)이었으리라.



스포츠 경기에서 온몸으로 사력을 다하는 선수들과 그것에 희로애락(喜怒愛樂)하는 사람들을 보며 놀이(play)하는 존재로서의 인간(호모 루덴스)을 실감한다. 그녀야말로 놀이의 장인이었다. 놀이로써 빙판 경기의 승부사를 넘어 놀이를 통해 예술을 빚어냈고, 대한민국과 세계를 즐겁게 도취시켰다.



놀이는 생명력, 모방 본능, 긴장 완화, 지배, 경쟁, 충동, 소망 실현에 대한 욕구와 발산 및 충족을 담고 있으니(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그의 놀이에서 역동의 에너지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놀이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여러 이유로 놀이의 광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가상세계의 게임 놀이에 중독돼 밀실에 사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현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돌아오기가 어렵게 된 이들. 그들의 모습은 처참하다.



지난 3월 초 인터넷 게임에 빠져 3개월 된 갓난아기를 굶겨 죽인 41세 남편과 25세 아내.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여 어머니를 살해한 20대 아들. 게임 화면과 낮밤을 지새우다 죽어서야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사고도 왕왕 있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는 땅에 떨어진 천륜과 패륜을 조곡하면서 냄비처럼 달아오르는 미디어를 따라 확 끓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미디어를 따라서 잊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9월 KAIST에서 온라인 게임에 열중하는 학생들 때문에 오전 2~7시 사이에 일부 게임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겠다고 공지하는 일이 있었다. 게임 중독으로 학사경고를 받는 학생이 학부생 3000명 가운데 50명으로, 학사경고를 세 번 받아 제적됐다가 재입학을 신청한 학생들의 3분의 2가 게임 중독에 따른 학업 부진으로 분석되었다.



지난해 4월 행정안전부는 국내 인터넷 중독률은 8.8%, 중독자는 199만9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독은 어린이·청소년·성인을 가리지 않는다. 증상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일탈행동, 학교 등교 거부, 폭력, 가출, 가족 해체, 범죄 등 처연하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세계를 주도하는 수준이다. 뛰어난 창의성의 결과다. 2008년 국내 게임시장은 5조6047억원, 수출 10억9000만 달러, 수입 3억8692만 달러로 무역수지 흑자가 7억 달러가 넘었다(문화체육관광부, 2009 대한민국 게임백서).



영국 국립과학기술재단은 2008년 12월 한국 게임 산업을 세계 3위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국내 게임업체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다섯 개 주요 게임업체(NC소프트, 넥슨, NHN(게임부문), CJ인터넷, 네오위즈게임즈)의 매출액·영업이익·순이익은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게임산업을 일군 능력을 칭송한다. 동시에 게임에 빠져 가상세계로 떠나간 사람들이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게임중독의 진단과 예방과 치료를 위한 방안 모색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10센트짜리 싸구려 잡지(pulp fiction)에 게재되었던 오늘날 게임의 원조 격인 영웅들의 이야기가 어린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컸다.



그 당시 인터넷 게임처럼 매혹적이었던 영화에 대한 걱정도 심각했다. 그런 우려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방대한 조사연구를 지원한 페인연구기금(Payne Fund Study)은 값진 사례의 하나다. 그 성과물들은 매체의 영향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의 시금석으로 모범이 되고 있다.



인간은 다양하게 놀이하는 동물이지만 가상세계에 정착할 수는 없다.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이들을 인생의 패배자나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처방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



이들은 인터넷 인프라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든 한국 사회의 후유증으로 보아야 한다. 가상세계를 맴도는 사람들이 현실세계에 안착할 수 있도록 게임업체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지혜를 모으고 행동해야 할 때다.



김정기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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