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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57) 미군 최고 수뇌부의 방문

중앙일보 2010.03.17 01:57 종합 10면 지면보기
중국어로 말을 걸어온 미군은 폴 프리먼 대령이었다. 차분하면서도 심지가 굳어 보이는, 첫 인상이 참 좋은 인물이었다. 그는 미 2사단 23연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의 중국어는 유창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느냐는 그의 질문에 나도 중국말로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렇다면 중국어로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다. 조금 우습다는 생각에 “그냥 영어로 얘기하자”고 했더니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1931년부터 4년 동안 베이징(北京)에서 유학을 했다. 그때 익힌 중국어 솜씨였다. 발음이나 표현력이 아주 뛰어났다. 프리먼은 한국군에 영어가 보급되지 않아 내심 의사소통을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한국과 미국의 군대가 서로 만나서 수행하는 연합작전의 기본은 의사소통이다. 기본적인 언어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함께 생사를 걸고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프리먼이 ‘혹시 중국어를 사용하면 한국 군대와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 육참총장 시찰 직후 포탄 … 한·미 별 13개 사라질 뻔

프리먼 대령은 1951년 2월 벌어진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5개 사단의 6개 연대를 물리친 인물이다. 랄프 몽클라 중령이 이끄는 용감한 프랑스 부대와 연합으로 전투를 벌여 중공군의 공격을 결정적으로 꺾고 대승을 거두었다. 6·25 전쟁사에서도 손꼽히는 대첩(大捷)이었다. 그는 나중에 대장까지 승진해 유럽 주둔 미군 총사령관을 지냈다.



마이켈리스 대령이 이끄는 미 27연대와 프리먼 대령의 미 23연대가 국군 1사단에 왔다. 이는 한국 땅에서 본격적으로 벌인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이었다. 국군 1사단장이 이끄는 전투 지역에 대단한 화력을 갖춘 미군의 2개 연대가 중첩적으로 배치된 것이다. 대구로 향하는 적군의 공격 예봉을 꺾을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이 다부동에서 대구를 향하는 간선도로에 들어서게 됐다.



다부동~대구를 잇는 간선로에서 방어막을 펼쳤던 미 27연대의 장병들이 다리를 건너오는 미군 탱크를 지켜보고 있다. 다리 바로 앞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이 27연대장 존 마이켈리스 대령이다. 이들은 막강한 화력으로 T-34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미 육군부 자료]
마이켈리스의 27연대는 다부동~대구 사이 간선도로의 전방을 맡았다. 이들은 강력한 화력으로 북한 탱크의 남진을 저지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프리먼 대령의 연대는 그 남방 간선로를 맡았다. 마이켈리스 연대처럼 북한군과 정면 대결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대구 동북방의 가산산성에 진출해 대구 진입을 노리는 북한군에는 이들 부대가 매우 효과적인 방어막 역할을 했다. 실제 다부동 전투 막바지에서 동북쪽으로 내려온 북한군은 프리먼 연대의 분전으로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후퇴해야 했다.



미군이 한국군 사단에 와서 함께 작전을 벌인다는 점은 당시 한국과 미국의 양국 정부에서도 관심거리였던 것 같았다. 적군의 야밤 기습을 받고 난 직후였다. 사단본부를 습격한 북한군 병력을 물리친 뒤 정신 없이 전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육군본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중요한 손님들이 사단을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로튼 콜린스(1896~1987)
낮에 사단사령부에 찾아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미 양국의 최고 군 수뇌부였다. 신성모 국방장관, 정일권 참모총장(중장)에 이어 미군의 ‘큰 별’들이 나타났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월튼 워커 중장조차 지프 상석(上席) 대신 뒤쪽에 타야 했을 정도였다. 상석인 앞 좌석에는 사성(四星) 장군이 타고 있었다. 미 육군참모총장 로튼 콜린스 대장이었다.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사이에는 묘한 알력이 있었다. 워싱턴은 맥아더의 판단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맥아더의 과감한 전략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앞세우는 워싱턴은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한국 전선의 상황을 맥아더의 보고를 거치지 않고 직접 관찰하기 위해 트루먼이 보낸 사람이 바로 콜린스 총장이었다. 말하자면 미 대통령의 특사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국군 1사단의 전선을 둘러보고 대단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미군의 2개 연대가 국군 1사단과 본격적인 연합작전을 펼치기 위해 전선 배치를 끝내고 난 상황을 꼼꼼히 둘러본 뒤 아주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마이켈리스 대령이 만든 ‘하수구 CP’ 근처에 서더니 “모두 이리 오라”고 말했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제안이었다. 나를 비롯한 현장에 있던 1사단 참모들과 마이켈리스 연대장을 비롯한 미국 장교들이 함께 섰다. 미군 최고 수뇌부와 한국 전선에서 어깨를 함께하고 북한군에 맞섰던 양국의 장병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콜린스 총장은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돌아갔다. 나머지 VIP도 그와 함께 대구로 떠났다. 참 이상한 일이다. 콜린스 대장 일행이 바로 떠나자마자 적의 포탄이 그들이 머물던 자리 근처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요인들이 자리를 떠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미 대통령의 특사 격으로 전선을 방문한 콜린스 대장의 신변에 커다란 문제가 있을 뻔했다. 콜린스 대장, 워커 중장, 정일권 중장, 준장이던 나, 그리고 소장인 미 8군 작전참모를 포함해 모두 13개의 별이 한꺼번에 떨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적의 공세는 막바지까지 그렇게 치열했다.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사단 방어선 중앙의 가장 넓은 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12연대의 고투(苦鬪)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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