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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유기만 시인 … 다른 범행은 “기억 안 나” 또 부인

중앙일보 2010.03.17 01:35 종합 20면 지면보기
부산 여중생 이모양 납치·살해사건 피의자인 김길태(왼쪽 사진)에 대한 현장검증이 실시된 16일 오전 부산 사상구 덕포동 사건 현장 일대를 찾은 시민들이 김의 현장검증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 여중생 이모(13)양을 납치 살해한 김길태(33)에 대한 현장검증이 16일 부산 사상구 덕포동 범행 현장에서 진행됐다.


김길태, 여중생 살해 현장검증
시신 가방 옮긴 장면 재연 거부
시민들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

현장검증은 이양의 집→이양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무당집→시신을 유기한 물탱크→김의 부모 집→검거 장소 순으로 이어졌다. 현장검증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낮 12시30분까지 2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김은 시신을 유기하는 장면에서는 순순히 범행을 재연했으나 성폭행·살인한 대목에서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현장검증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은 “김길태, 이 xx야”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모자를 벗겨라” “너도 똑같은 방법으로 당해봐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김의 얼굴을 본 뒤 “섬뜩하다”며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시민은 아파트 옥상과 계단의 창문을 통해 현장검증 장면을 내려다봤다.



현장검증을 위해 사상경찰서 현관에 모습을 드러낸 김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모자가 달린 검은 재킷에 같은 색 체육복 바지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었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첫 현장검증 장소는 지난달 24일 이양의 집이었다. 김은 “여기서(이양 집의 비어 있는 옆방) 라면을 끓여 먹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에게 큰방과 욕실을 차례로 보여준 뒤 큰방에서 “어떻게 납치했느냐”고 묻자 김은 “증거물이 있다고 하니까 할 말은 없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자체(현장검증)가 이해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다락방을 통해 침입한 과정과 무당집까지 이양을 끌고 가는 과정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당집에서의 성폭행·살해 혐의에 대해서도 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이양의 시신을 전기매트 가방에 넣어 물탱크로 옮긴 부분은 시인했다. 그는 “서랍에 있는 끈으로 이양의 발목을 묶어 가방에 넣었는데 다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방을 메고 나가는 장면은 김이 재연을 거부해 대역이 나섰다. 시신이 발견된 물탱크 옆 폐가에서 김은 “추울까 미안해서 물탱크에 시신이 든 가방을 던져 넣고 나온 뒤 대야에 석회가루를 탔다. 그리고 물탱크에 석회가루와 봉지를 넣고 뚜껑을 닫은 뒤, 그 위에 벽돌을 올려놨다”고 설명했다.



이때 현장검증을 지휘하던 검사가 “당시 시간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김은 “검사님, 시계 볼 정신이 있었겠어요”라고 대꾸해 검사를 무안하게 했다. 김은 이어 “시신을 유기하고 당산나무로 가서 한동안 있다가 버스를 타고 주례로 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덕포여중 뒷길에서 이양의 팬티를 버리는 장면을 태연히 재연했다.



김길태의 부모 집에서는 지난달 25일 김이 아버지에게서 형사 명함을 건네받아 휴대전화로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범행을 부인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마지막 현장검증 장소이자 김이 검거된 현대골드빌라에서는 시민이 너무 몰려 검증을 하지 못했다.



현장검증이 끝난 뒤 김의 아버지(69)는 눈물을 글썽이며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소. 난 할 말이 없소. 고마(그만) 가소”라고 말한 뒤 대문을 닫았다. 김씨는 현장검증이 진행되는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김의 부모 집과 가까운 덕포시장 주변 주민들은 동정론을 펴기도 했다. 장모(52·여)씨는 “처음엔 ‘죽일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성장 과정을 알고 나니 상처 많은 길태를 사회가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물탱크 안 비닐봉지에서 발견된 휴지뭉치에서 김의 DNA와 이양의 DNA가 함께 검출된 물증을 추가로 확보했다. 비닐봉지는 김이 시신을 유기하기 전 이양의 옷을 담았던 것으로 성폭행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로 경찰은 보고 있다.



부산=김상진·임주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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