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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본어만 쓰고 말하라”… 일제의 한국어 말살정책 본격화

중앙일보 2010.03.17 01:13 종합 33면 지면보기
일본어 상용을 강제한 제3차 개정교육령이 공포된 1938년 이전에도 조선어 수업 시간을 제외한 모든 교과는 일본어로 학습됐다. 사진은 1934년 남양보통학교의 수업 장면. 칠판에 일본어로 쓴 ‘리어왕 이야기’ ‘코델리아’가 그때의 교실 풍경을 잘 말해 준다. (출처=『근대 화성의 옛 모습』, 수원대 동고학연구소, 2005)
일본어가 이 땅에서 새로운 지식을 전하는 학습 언어로 군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한제국이 종언을 고하던 시절 통감부가 초등학교용 일어독본과 이과 과목의 교과서를 일본어로 편찬하면서였다. “한국 유년에게 일문 교과서를 익히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뇌수를 뚫고 저 소위 일본 혼이라 하는 것을 주사하고자 함이다.” 1906년 6월 6일자 ‘대한매일신보’가 그 저의를 꼬집어 냈듯, 그때 이미 일제는 우리글과 말을 교육의 영역에서 배제해 이 땅의 사람들을 제국의 지배에 순응하게끔 하려 했다.



‘보통교육은 보통의 지식 기능을 주고, 특히 국민 된 성격을 함양하며, 국어(일본어)를 보급함을 목적으로 한다’. 1911년 조선교육령에 의거해 조선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의 교과서는 일본어로 발행되고, 행정과 법률 관련 문서도 일본어로 작성되면서 국어의 지위를 앗긴 조선말은 일상에서만 쓰이는 생활어로 전락했다. 그러나 제3차 개정교육령이 공포된 1938년까지는 조선어가 필수 과목으로 남아 있었다. 그해 3월 15일 일제는 식민지 언어정책을 조선어 병용에서 일본어 상용, 즉 ‘고쿠고조요(國語常用)’로 바꿨다. 식민지 민족에게서 말과 글을 송두리째 빼앗아 ‘완전한 일본인’으로 만들려 한 황민화 정책의 중핵이 바로 일본어 사용의 강제였다.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외치던 그때, 일본어와 일본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반면 조선어는 정규 교과목에서 제외됐다.



‘대동아공영’을 내건 침략전쟁이 동아시아로 확대되면서 식민지 사람들을 징병과 징용으로 전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1942년 일제가 ‘국어전해(全解)운동’을 펼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국어의 보급은 국가의 소장(消長)을 보여 주는 문화적 무기라는 것은 저 영어와 불어가 외교어, 무역어로서 전 세계를 풍미했던 사례로부터 보아도 명확하다. 그러나 미영도 옛날의 미영이 아니며 불란서 역시 궤멸된 오늘날 동아의 맹주, 세계의 지도자가 된 일본 국민은 국기가 나아가는 곳에서는 반드시 국어를 상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평안남도 ‘도지사훈시요지’, 1942).



이제 일본어는 지식을 전하는 언어로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쓰이는 생활어가 돼야 했다. 1940년 우리 글 신문의 폐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등 폭력적인 언어 탄압이 가해졌다. 그러나 조선어 말살정책에 맞서 한국어사전을 편찬하다 옥고를 치른 이윤재·최현배·이희승 같은 선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글과 말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을 가둔 죄명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한’ 내란죄였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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