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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포레스트 검프’ 미국 대륙 달린다

중앙일보 2010.03.17 00:33 종합 31면 지면보기
미국 대륙 동서 횡단에 도전하는 뉴욕마라톤클럽 권이주 회장(오른쪽)이 부인 권복영씨와 함께 자신의 마라톤 풀코스 100회 완주 기념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51세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당뇨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다 온 뒤였다. 4년을 뛴 끝에 처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 뒤 10년 동안 풀코스 100회 완주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00마일(160㎞)을 쉬지 않고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도 세 차례 완주했다. 23일부터 110일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뉴욕 구간 5600㎞ 미국 대륙횡단코스 도전에 나서는 뉴욕마라톤클럽 권이주(65) 회장 이야기다.


권이주 뉴욕마라톤클럽 회장

현지 언론도 그를 ‘포레스트 검프’에 비유하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검프는 1994년 개봉한 같은 제목의 영화 주인공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자 검프는 돈과 명예를 다 버리고 발길 닿는 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달렸다. 검프는 삶의 의미를 찾아 뛰었지만 권씨의 목표는 뚜렷하다. 당뇨 퇴치와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89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가 당뇨로 쓰러진 건 96년이다. 치아가 거의 다 빠져버렸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먹고사느라 몸을 돌보지 못한 탓에 162㎝ 키에 몸무게도 84㎏이나 됐다. “달리 치료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오기가 생겼다. “69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정글에서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겼고 85년 칠레에 갔다 대지진을 겪고도 살아남은 내가 아닌가. 당뇨병으로 쓰러질 순 없다.” 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무작정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뛰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00m도 못 가서 쓰러졌다. 그럴수록 오기는 독기로 바뀌었다. 일주일 뒤엔 병원에서 지어준 약마저 끊어버렸다. 그렇게 4년을 버텼다. 놀랍게도 약을 먹지 않았는데 혈당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했다.



2000년 뉴욕마라톤에 첫 출전한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10㎞ 지점을 지난 뒤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응원 나온 딸 보기가 민망해 도망치듯 집으로 갔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봤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서두르지 말자.” 20주 동안 다시 훈련한 끝에 그는 그 해 11월 필라델피아 마라톤에서 첫 완주에 성공했다.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주변엔 함께 달리는 사람이 하나 둘 늘었다. 그 인연이 자연스럽게 2004년 뉴욕마라톤클럽 창립으로 이어졌다. 회장으로서 솔선수범하기 위해 그는 클럽 창립뒤 매주 일요일마다 맨해튼 센트럴파크를 네 바퀴씩 돈다. 총 38.4㎞다. 그를 따르는 센트럴파크의 마라톤 행렬은 일요일 구경거리가 됐다. 시합이 있는 날을 빼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한 차례도 빼먹지 않았다.



지난해 서재필 박사 추모 뉴욕~필라델피아 240㎞ 마라톤 완주 뒤 그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새 도전에 나섰다. 꿈으로만 여겨온 미 대륙 동서 횡단이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환자에게 희망과 용기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미 대륙 동서 횡단은 죽음의 코스다. 사막을 가로지르고 록키와 애팔래치아산맥을 넘어야 한다. 하루 6~8시간 매일 50㎞씩 뛰어야 하는 지옥의 레이스이기도 하다. 미 대륙 동서횡단에 성공한 사람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60대로는 그가 처음이다.



그런데 장도를 앞둔 그는 뜻밖에 담담했다. “당뇨로 쓰러진 뒤 15년 동안 달려온 길이다.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나도 모른다. 뛸 수 있는 한 달릴 뿐이다.” (후원 및 마라톤 동행 문의는 홈페이지 go2marathon.org 참조)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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