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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다 큰 남자가 왜 인형을 모을까

중앙일보 2010.03.15 08:56 경제 22면 지면보기
400%사이즈 미키마우스 베어브릭을 안고 있는 광고기획자 서덕영(30)씨. 그의 베어브릭 컬렉션은 100개가 넘는다.
“당신에게 포스가 함께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루크 스카이워커를 축복하며 말했다. ‘예수님 머리’를 펄럭이는 스승의 ‘포스’ 앞에서 소년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포스를 더해 줄 아이템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스타워즈뿐만 아니다. 건담·에반겔리온·아톰 등 만화영화의 주인공에서 베어브릭·큐브릭·퀴베어 등 아트토이까지 장난감들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이 장난감들을 사 모으는 건 어린아이뿐이 아니다. 다 큰 소년, 20~30대, 때로는 40대 남자들이 주 고객층이다. 이들을 일러 ‘키덜트’라고도 한다. 이들은 ‘득템’(아이템을 획득한다는 뜻의 게임 용어)할 때마다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인증샷’(득템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을 올려 자랑한다. 엄마나 마누라에게 걸리면 이렇게 말한다. “이거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몇 년 놔두면 프리미엄 붙어.” 박스조차 버리지 못하고 소중히 간직하는 다 큰 소년들의 장난감 세계를 살짝 들여다봤다.


‘베어브릭 매니어’ 광고대행사 AE 서덕영씨의 키덜트로 산다는 것

글=이진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다국적 광고대행사 맥켄에릭슨의 헬스케어 파트 신입사원 서덕영(30)씨는 소문난 장난감 수집가다. 이 분야 최대 사이트인 ‘킨키로봇’ 매니저들에게 이름을 대면 “아, 그 사람~” 하고 알아줄 정도다.



그는 한양대 광고홍보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이제 막 광고 AE로 입성했다. 학생 때는 20여 개 광고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만다리나 덕의 오렌지색 빅백을 들고 다닐 정도로 스타일링 감각도 빼어나다. 이런 멀쩡한 청년도 오프라인 키덜트 매장에 들르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단다. 남자가 ‘인형’을 사 모으는 취미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서씨의 수집벽은 역사가 오래됐다. 시작은 건담 로봇이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조립식 장난감이 그렇게 좋았단다. 정신 사나울 때 건담을 집어 들면 세상이 오롯이 그 로봇 하나로 집중됐다. 수없이 정리하고도 아직 남겨놓은 건담이 30여 개다. 몇 천원짜리부터 몇 십만원짜리까지 가격도 다양하다. 사람과 똑같은 포즈를 취할 수 있는 세심한 것일수록 부속이 많아져 손이 많이 간다.



최근 출시된 영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 큐브릭.
지난해부터는 베어브릭에 빠졌다. 베어브릭이란 사지를 포함해 9군데를 따로따로 움직일 수 있는 7cm 크기의 곰돌이 로봇이다. 미키마우스든 헬로키티든 스폰지밥이든 베어브릭 시리즈에선 무조건 곰돌이 머리 모양으로 변형된다. 디자인 관련 잡지를 보다가 브랜드 협업(콜래보레이션) 베어브릭을 발견한 것이 수집 계기였다. 하나 둘 했던 게 어느덧 100여 개 넘게 모으게 됐다. 베어브릭은 50%, 200%, 400%, 1000% 등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블라인드 패키지라 상자를 뜯어볼 때마다 복권 긁는 기분이란다. 모델별로 생산량이 다르기 때문에 더 귀한 디자인을 ‘뽑으면’ 확실한 기분전환이 된다.



서씨가 가장 아끼는 건 빨간색 몸체에 여러 나라 말로 ‘사랑한다’는 말을 새겨놓은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의 작품이다. 200% 사이즈에 초합금으로 만든 한정판이다. 다른 베어브릭은 9800원인 데 비해, 이건 18만7000원짜리다. 목재나 초합금 같은 특수 소재로 만든 건 플라스틱보다 훨씬 비싸다. 이 취미에 집 한 채는 몰라도 소형차 한 대 값은 들였을 성싶다. 그러나 서씨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베어브릭을 수집하는 데는 정당한 이유도 있다. ‘디자인 감각을 키우는 데도 좋고 고객들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관심을 갖고 보니 아티스트들이 장난감 디자인에 참여하는 일이 활발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름하여 ‘아트토이’다. 미국이나 홍콩·일본 등 디자인이 발달한 나라에는 어김없이 아트토이가 있었다.



그는 “여자애 같은 취향이라고 흉보는 사람이 많다”면서도 “여자친구가 먼저 새 버전이 나왔다고 알려줄 정도”라고 자랑한다. 킨키로봇의 구비취 매니저는 “당당히 매장에 들러 서로 아트토이를 골라주는 커플도 많다”고 전한다.



일본 드라마 ‘전차남’의 오타쿠와는 달라요

전시회까지 여는 피규어·아트토이 컬렉터들




드라마 속 ‘전차남’의 방. 피규어로 가득 차 있다.
피규어나 아트토이 등을 수집하는 남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명백히 보여주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 2005년 후지TV에서 방영된 ‘전차남’이다. 여자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오타쿠 겸 히키코모리 청년이 전차에서 취객에게 몰린 ‘에르메스’의 여인을 구해주고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 오타쿠에 대한 묘사는 처절하다. 왜소한 체구에 얼굴을 가리는 안경,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전차남이 자신의 바짓단에 낀 먼지 묻은 화장솔을 주워주자 여성이 “더럽다”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정도다. 그러니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건 어불성설. 전차남의 유일한 취미는 다른 오타쿠 친구들과 피규어를 사 모으고 PC통신을 하는 일이다.



이런 시선들 때문에 진짜 매니어들은 꽁꽁 숨는다. 그러나 1세대 베어브릭 컬렉터로 알려진 류창신씨는 인사동과 압구정동에서 두 차례 전시회를 열며 커밍아웃했다. 그가 소장한 2000여 개의 베어브릭들은 어엿한 수집품으로 대우받고 있다.



컬렉터들이 ‘전차남’일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또 다른 키덜트인 대학원생 김재호(28)씨는 강동원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한 케이블 방송에도 출연했다. 경희대 대학원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는 그는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디자인 인형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패션로얄티’라는 이름의 고가 인형과 스머프·몰리 등의 캐릭터를 모으고 있다.

광선검 우산, 망토 티셔츠, 요다 운동화 … 스타워즈는 끝나지 않았다



초보자도 매니어도 즐기는 컬렉션




스톰트루퍼 티셔츠를 입으면 나도 제국군! 버블인형은 부록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라고는 고작해야 “하아아아-악”하는 숨소리와 “아임 유어 파더(내가 네 애비다)”밖에 없지만, 스타워즈 속 다스베이더는 수많은 ‘아버지들’ 중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뽐냈다. 영화사상 최고의 악역 3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그에게 열광하는 이들을 보면, 우리의 마음속엔 마냥 선하기만 한 영웅보다 사연이 있는 악당을 더 사랑하는 본성이 있는 것만 같다. 이런 다스베이더를 코스프레할 수 있는 망토 티셔츠가 나왔다. 아디다스 한정판이다.



스타워즈를 모티브로 한 스니커즈도 다양하게 나왔다. 번쩍번쩍한 그래픽에 우주선 소리까지 내는 스니커즈. 모든 제다이의 스승인 요다와 하얀 옷을 입은 병사 스톰트루퍼, 제국군의 1인용 전투기 타이파이터의 특징을 재현한 스니커즈도 있다. 10만원 이상 구입하면 머리를 까딱까딱하는 버블헤드 인형을 끼워준다.



번쩍번쩍하는 스니커즈. ‘스타워즈’ 명장면을 두고두고 감상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피규어와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애니보이’(www.aniboy.com)에서는 ‘스타워즈’ 별도 섹션을 마련해두고 있다. 다스베이더의 광선검 모양 우산, 요다를 그대로 재연한 백팩 등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날리는 제품들을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수입·판매한다. 취향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즐기고 싶다면 아이팟 커버나 열쇠고리 같은 얌전한 아이템을 선택하면 된다.



컬렉터에게 입소문 난 온·오프라인 매장



온라인



● 킨키로봇 02-3444-7044

www.kinkirobot.com



국내 최초·최대의 아트토이 전문 사이트. 서울 신사동과 삼성동(코엑스), 강남역, 홍대 앞, 동대문(두타) 등 트렌드의 중심지 다섯 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큐브릭 등 신제품도 발 빠르게 소개한다. 13일 홍대 클럽에서 열린 화이트데이 파티에 베어브릭을 협찬하는 등 ‘핫’한 문화 활동에도 열심이다.



● 아트앤토이즈 070-7499-4977

www.artntoys.com



킨키로봇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키덜트 전문매장. 베어브릭·퀴 베어 등 유명한 아트토이부터 몰리·토푸 등 덜 알려진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구색을 갖췄다. 키덜트 전문잡지 ‘플레이타임즈’도 판매하고 있다.



● 키덜트S www.kidults.co.kr (커뮤니티)



키덜트 대표 커뮤니티답게 운영진의 별명을 베어브릭으로 표현했다. 새 아이템이 출시되는 정보를 나누고 ‘득템’할 경우 ‘인증샷’을 올린다. 물건을 교환하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건담 만드는 법 같은 온라인 강좌도 재미있다.



오프라인



● 마이 페이버릿 02-544-9319



등단한 지 10년이 넘는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명소. 이 동네에서 ‘디자인 좀 한다’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러본 가게다.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외국 책과 장난감들을 판다.



● 10코르소코모 02-3018-1010



밀라노의 패션 명소를 서울 청담동에 옮겨 온 명품 편집숍. 가게라기보다는 카페와 레스토랑까지 딸린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 디자이너 스니커즈부터 인테리어 용품까지 ‘핫’한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있다. 당연히 아트토이도 있다. 한정판 베어브릭이 주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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