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심’ 역할 못한 푸미폰 국왕

중앙일보 2010.03.15 02:47 종합 4면 지면보기
이번 태국의 정치적 혼란 뒤에는 그간 이 나라 정국의 중심추 노릇을 해 온 현 국왕이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임 중 쿠데타 19번, 헌법 개정 16번 겪어
작년 9월부터 방콕의 병원서 입원 치료 중

태국에서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푸미폰 아둔야뎃(83·사진) 현 국왕은 그간 정국 혼란 때마다 ‘중심’을 잡는 태국 정치의 최후 보루였다. 1946년 즉위한 푸미폰 국왕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쏟아 전폭적인 국민적 지지를 얻어 왔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정국이 불안할 때마다 개입해 안정을 이끌었다. 73년 민주화 사태 때 시민들은 왕궁에 보호하고 여론을 주도해 타놈 군부정권을 실각시켰다. 92년엔 쿠데타를 일으킨 수친다 장군과 반대파 잠롱 전 방콕시장을 부른 뒤 수친다를 질책해 망명길에 오르게 한다. 푸미폰 국왕은 재임 중 겪은 19번의 쿠데타와 16번의 헌법 개정 속에서 20여 명의 총리 선출을 추인하며 정국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탁신 정권의 등장 후 국왕의 권위는 삐걱거렸다. 2006년 탁신은 자신의 탈세 의혹으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조기 총선을 통해 재집권한다. 그러자 군부는 그해 9월 쿠데타를 일으킨다. 당시 국왕은 쿠데타를 추인하며 반탁신 세력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탁신 지지 세력은 2007년 말 총선에서 승리하는 등 세력을 넓혀 왔다. 국민 다수는 정신적으론 국왕을 지지하면서도 현실 정치에선 서민 보호와 경제 발전을 내세운 친탁신 정당을 선택한 셈이다. 후계 문제도 태국 정국을 혼란케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고령의 푸미폰 국왕은 지난해 9월 방콕의 한 병원에 입원해 다섯 달 넘게 치료를 받고 있다. 국왕은 이미 아들 와질라롱콘을 왕세자로 지명했지만 그는 부패 혐의에 연루되는 등 부친 같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승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