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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 위에 누워 한 줌 재로 돌아가며 ‘진짜 사리가 뭔가? ’ 화두를 던지다

중앙일보 2010.03.15 02:40 종합 8면 지면보기
재만 남았다. 14일 오전 10시 전남 순천시 송광사 경내 조계산 자락의 다비식장에서 법정 스님의 상좌들이 남은 재를 모았다. 그리고 여러 개의 작은 오동나무통에 나누어 담았다. 다비장 밑의 숯불은 아직 타고 있었다.


장례식 없는 소박한 다비식

전날 치러진 법정 스님의 ‘장례식 없는 다비식’은 소리 없는 법문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 온몸을 태우며 토해내는 ‘무언의 할(喝)!’이었다. 13일 오전 10시 스님의 법구(法軀·스님의 유해)가 송광사 문수전에서 나왔다. 만장도 없고, 관도 없고, 수의도 없고, 조사도 없고, 행장도 없었다. 대신 평소 입던 가사로 동여맨 법구만 대나무 평상 위로 덩그러니 놓였다. 그걸 열 명의 스님이 어깨에 멨다. 운구 행렬은 대웅전 앞뜰에서 부처님께 삼배했다.



법구는 송광사의 다비 장소로 2㎞가량 이동했다. 가파른 산길을 600m가량 오르자 다비장이 나타났다. 법정 스님의 법구가 숯을 깐 장작 위에 놓였다. 한 스님이 외쳤다. “스~님! 스~님! 불 들어갑니다~아!” 그러자 산중에 있던 1만5000여 추모객들도 큰소리로 불렀다. “스니~임!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쩌렁쩌렁, 산이 울렸다. 상좌들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설정 스님(수덕사 방장) 등이 함께 불을 붙였다.



신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무도 타고, 하늘도 타고, 추모객들의 마음도 탔다. 그건 소리 없는 법문이었다. 말보다 강한 무언의 법문이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13일 순천 송광사에서 열렸다. 추모객들이 스님의 유언에 따라 영결식 등 일체의 행사 없이 조촐하게 치러지는 다비식을 지켜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법정 스님이 남긴 사리는 뭘까. 마지막 가는 길에 남긴 이 울림의 알갱이는 대체 뭘까. 법정 스님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스님들을 화장하면 사리가 나왔다고 요란을 떤다. 사리가 나온 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 사리는 산스크리트어로 ‘타고 남은 유골’이란 뜻이다. 당시 법정 스님은 이렇게 되물었다. “불교에서 화장을 하는 이유가 뭔가? 그건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본래 한 물건도 없기 때문이다.”



큰스님들이 입적할 때마다 재를 뒤져 “사리가 많네, 적네”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 오히려 ‘화장’에 담긴 불교적 메시지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손에 잡히는 사리란 상(相)을 잡지 말고 ‘살아 숨쉬는 진짜 사리’를 찾으란 메시지였다.



법정 스님은 장작 위에 누워서도 ‘진짜 사리가 뭔가?’라는 화두를 던진 셈이었다. 입적 전날 밤 스님은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법정 스님의 소박하디 소박한 다비식은 산중을 메운 추모객들에게 ‘화두의 울림’이자 ‘참회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법정 스님은 따로 임종게(스님이 열반 직전에 남기는 게송)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니 “장례식을 하지 마라. 사리를 찾지 마라. 재는 오두막의 꽃밭에 뿌려라”가 스님의 임종게가 아닐는지. 결국 ‘가짐의 길’을 통해선 하늘을 덮지 못한다. ‘소유의 길’을 통해선 땅을 덮지 못한다. ‘무소유의 길’을 통할 때만 나의 사리가 천지를 덮는 법이다. 법정 스님은 평생 그걸 설파했고,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그 길을 좇았다.



스님의 법구에 불길이 타오를 때 상좌인 덕현(길상사 주지) 스님이 말했다. “이 무상한 불길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나는 법정 스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화·중·생·연!(火中生蓮·불길 가운데 연꽃이 피어난다)” 산중의 추모객들도 따라서 소리쳤다. “화! 중! 생! 연!”



법정 스님이 평생을 좇았던 붓다도 그랬다. 2500년 전 붓다는 부친(숫도다나왕)의 다비식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불을 보라. 욕심의 불길은 이 불보다 뜨겁다. 삶은 환상과 같고, 타오르는 불꽃과 같고, 물에 비친 달 그림자와 같다. 잠시 그렇게 있어 보이는 것뿐이다. 쉼 없이 수행하라.”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그 ‘불’을 보여줬다. 그 불을 끄는 길이 ‘무소유의 길’임을 말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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