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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미래는 없다” 꿈 잃은 프리터 세대

중앙일보 2010.03.13 02:27 종합 12면 지면보기
후지이 요시히로(藤井芳廣·30)는 1998년 오사카(大阪) 인근 시가(滋賀)현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도쿄(東京)로 상경했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89년을 정점으로 붕괴하면서 경기침체가 본격화돼 지방에선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재 도쿄 교외에 살고 있는 후지이는 오전에는 건설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오후에는 고령자 요양센터에서 돌봄 서비스를 한다. 한 달 수입은 17만 엔(약 210만원)가량 된다. 공사장에서 12만 엔, 매주 이틀씩 나가는 요양센터에서 5만 엔을 받는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성인 남성으로선 소득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후지이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고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같은 것을 갖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런 마음은 전혀 없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물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결혼에 대해서도 초조함 같은 것은 없었다. 비정규 아르바이트인 ‘프리터(프리+아르바이터)’로 일하는 여자 친구(22)와 함께 월 7만 엔짜리 월세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걸로 만족한단다.



일본에서는 후지이처럼 상당수 젊은이가 자신은 물론 국가의 장래에 대해 꿈이나 희망을 갖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대학생 65%가 “일본의 장래에 대해 꿈을 갖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자산운용회사 피델리티투신이 지난 1월 인터넷상에서 대학 2∼4년생 2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재정 적자가 심각해 젊은 세대에 과중한 부담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라거나 ‘고용 불안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각각 70%대(복수응답)에 달했다. ‘기성세대일수록 지급액이 많고, 젊은 세대일수록 부담이 늘어나는 공적연금이 문제’(55%)라거나 ‘소득이 늘지 않아 풍족한 생활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51%)이라는 답변도 많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퇴직 후 가장 의존할 수 있는 수입원은 ‘저축 등 스스로 노력해서 모은 자산’이라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재정 악화와 구조조정 확산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공적연금(17%)이나 기업연금·퇴직금(16%)을 기대한다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취업 빙하기로 불리며 프리터가 쏟아져나온 90년대 후반 못지않게 심각해진 최근의 취업난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8월 말에는 대학생들의 취업 내정 비율이 90%에 달하지만 지난해에는 60%에 그쳤다. 당시 총리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총재는 취업난을 호소하는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돈이 없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취업난에 대한 학생들의 고충을 공감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지만 격렬한 사회적 반발을 불렀다.



이 같은 사회적 불만은 지난해 총선에서 젊은 층의 정치 참여로 이어져 자민당 정권이 54년 만에 붕괴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많은 젊은이가 “선거 무관심이 자민당의 무능 정치를 장기화시켰다”고 반성하면서 거리로 나서 투표를 독려했다. 그 결과 지난해 총선의 20대 투표율은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 때(36%)에 비해 크게 높아져 49.45%에 달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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