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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과학] ‘세계문화유산’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중앙일보 2010.03.13 01:16 종합 26면 지면보기
인간만이 무덤을 만든다. 그 무덤의 규모로 권력과 위세를 자랑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인간만의 행위다. 가장 오래된 무덤의 형태 중 하나가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한반도는 세계적인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은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동북아지석묘연구소 이영문 소장은 “고인돌의 과학은 세계 8대 불가사의라 할 정도로 신비하다”고 말했다.


300t짜리 울퉁불퉁 덮개돌, 어떻게 옮긴 걸까

현대인에게 가장 큰 의문을 남기는 건 거대한 덮개돌이다. 덮개돌은 10t급의 가벼운 것부터 300t이 넘는 것까지 있다. 자연석처럼 보이지만 실은 장방형 등 특정한 형태에 가깝게 다듬은 것이다. 산에 있는 큰 암석에서 덮개용 돌을 떼고 연마하는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거석을 옮기는 과정도 큰 미스터리다. 통나무를 철길처럼 깔아 그 위에 돌을 놓고 밀어 옮겼으리라 추정하긴 한다. 그러나 냇물을 건너야 하는 위치라거나, 언덕을 올라야 할 경우엔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고인돌은 네모 반듯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통나무 길 위를 굴린다 해도 돌의 일부만 바닥에 닿았을 테고, 마찰력은 어마어마했으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전북 고창군 고인돌군 전경. 동서 1764m 범위에 442기가 분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고인돌의 균형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무게중심을 정확히 계산해야만 흔들림이 없다. 다른 지역의 거석문화는 돌을 조합해 건축물을 만드는 식이라 훼손이 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축조 당시의 상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가령 기반식(바둑판식) 고인돌의 경우 받침돌 4개를 사각형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다.



이 소장은 “발굴해보면 받침돌 3개를 놓고 덮개돌을 올린 뒤 네 번째 받침돌을 괴어 균형을 맞춘 흔적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흔들리면 쐐기돌을 넣어 균형을 잡았다. 새 가구를 집안에 들여놓을 때 한쪽 구석에 장판 따위를 넣어 균형을 맞추는 것과 같은 원리다.



미스터리는 돌의 무게다. 중장비도 없이 수십t짜리 돌을 어떻게 올리고, 어떻게 균형을 맞췄을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 사람이 끌 수 있는 돌의 무게는 기껏 120~160㎏ 정도다. 통나무와 밧줄만 써서 50t짜리 덮개돌을 끌려면 약 400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론 더 복잡하다. 오늘날 고인돌을 이전·복원할 때는 크레인을 사용한다. 50~60t짜리를 들려면 130~150t급 크레인을 쓴다. 고인돌은 피라미드의 돌처럼 네모 반듯한 게 아니라 울퉁불퉁하다. 무게중심을 잡기 힘들기 때문에 산술적 계산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설령 50t짜리 돌을 400명이 든다손 치더라도, 고인돌 주변에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서 있을 공간이 없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고인돌은 새로운 축조형태가 끊임없이 발굴되는 유물이기도 하다. 그 중 한 형태를 들여다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김해박물관(관장 송의정)은 창원 봉산리 2호 지석묘(고인돌)를 중심으로 고인돌의 비밀을 풀어보는 테마전 ‘고인돌에 대한 여섯 가지 질문’을 1층 상설전시실에 마련했다. 봉산리 2호묘는 지하에 3층짜리 역피라미드형 계단식 묘광을 파내려간 독특한 형태다. 김해박물관 윤온식 학예연구사는 “지하 묘광의 구조는 발굴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지만, 덮개돌을 옮긴 과정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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