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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은행 총재 정말 잘 골라야 한다

중앙일보 2010.03.13 00:21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그제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조용한 퇴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달 말로 4년 법정 임기를 마치는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때 지나친 신중함이 “물가안정만 강조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 너무 소극적이다”는 비판을 샀다. 금리인상을 둘러싸고 정부와 너무 대립각을 세운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선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지키려 애썼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무난히 넘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총재는 13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아쉬움을 표시했다. “금융완화 기조는 적당한 시기에 줄여가야 한다”며 “갑자기 출구로 나갈 수 없다면 미리 문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출구전략을 완곡한 어법으로 주문한 것이다. 7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빚이 많으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가계들이 금리가 치솟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서둘러 부채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오는 23일 국무회의에서 차기 한은 총재 임명안을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차기 총재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전임 총재로부터 묵직한 숙제들을 넘겨받는다. 당장 그의 앞에는 기준금리를 언제, 얼마만큼 올려야 할지 어려운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자산거품의 불안과 경기위축의 우려를 동시에 진압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와 이인삼각(二人三脚)의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긴밀하게 정책 협의를 하면서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내야 한다. G20 의장국의 중앙은행 총재답게 글로벌 금융협력을 원만하게 이끌어 내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시중에는 벌써 차기 총재에 대한 하마평(下馬評)이 무성하다. 누구는 부동산 투기 혐의가 짙고, 누구는 한은 내부에서 반대한다는 흠집내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은 총재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한은법 개정안은 아쉽게도 이미 물 건너갔다. 청와대의 낙점만 남았다. 거꾸로 이명박 대통령은 인선 과정에서 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대통령 측근이라고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한은 총재가 대통령 측근이 반드시 앉아야 할 자리도 아니다. 소신만 내세우는 독불장군도 곤란하지만, 정치적 입김이나 외부 압력에 쉽게 휘둘리는 인물 역시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엔 항상 금리정책에 간섭하는 사공이 너무 많았지 않은가.



한은 총재에 첫째로 요구되는 자질은 전문성이다. 국내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이 필수적이다. 그다음은 시장과의 소통이다. 안정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받아야 통화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과거 한은법에 한은 총재는 ‘고결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던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중앙은행 총재들이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장수하는 게 관례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한은 총재 한 명쯤 갖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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