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주영 회장 영전에…] 대인은 가시었습니다

중앙일보 2001.03.23 00:00 종합 26면 지면보기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회장님의 영전에 올립니다.





세월의 무상함이야 다들 아는 바이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건강하신 모습을 뵈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처럼 황망하게 부음을 접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세기 그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를 열정과 의욕으로 헤쳐나오신 정회장님께서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선 새로운 세기 봄 문턱에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에 그저 가슴이 저려올 뿐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저 역시 아산 선배와 똑같은 조건과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많은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5년이나 선배이시지만 빈손으로 출발하여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창업을 이룬 것이 우선 그러합니다.





현대가 초창기에 건설업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해오는 동안 한진은 수송업으로 일관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60년대 중반 건설공사를 수주하여 해외에 진출했을 무렵 저 역시 수송을 맡아 월남 진출 한국업체의 대표격으로 이따금 만나 서로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그후 전경련 회장과 부회장으로 10년 가까이 회합을 갖기도 했으며, 올림픽 유치를 위해 민간 경제계의 대표로서 함께 노력해 마침내 88 서울올림픽을 이루어낸 일은 아직도 가슴 벅찬 추억입니다.





아산은 참으로 대인이셨습니다.





그 몸집뿐만 아니라 그 마음의 그릇과 행동력이 그러했습니다.





우리 경제계의 큰 별이셨으며, 기업인이 어떻게 애국을 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하셨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평생을 사업에 전념해온 이유는 결국 일에 대한 집념과 성취감 때문이라고 공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 즐기겠다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모험을 무릅쓰고 힘든 사업을 감당해야 할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아산을 '바로 이 시대의 거인' 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아산 선배님! 정회장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는 말로 대변되는, 그 영광으로 가득했던 '20세기의 모든 일들' 을 이제 추억으로 남겨야 하겠습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법,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것, 삶이란 뜬구름 같은 꿈이요, 죽음이란 것도 한갓 흘러가는 구름의 자취가 없어진 것뿐이라는 선인들의 깨달음을 되새길 밖에요.





천수를 다하신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해야 하는 후손들을 지켜주시고, 남기신 일들일랑 이제 젊은이들에게 맡겨두시고 편안히 눈을 감으소서. 영면하소서.





2001년 3월 22일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겸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