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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138> 달마대사

중앙일보 2010.02.25 08:35 경제 17면 지면보기
1 쑹산에 세워진 달마대사상. 부리부리한 눈과 꼬불꼬불한 수염은 그가 인도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때론 낯설게 다가오는 달마(達磨)대사. 여러분은 달마대사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세요? 큼직한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달마도? 아니면 ‘달마야 놀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같은 영화 제목? 그런데 달마대사는 한국 불교에서 무척 중시하는 인물입니다. 왜냐고요? 우리나라 불교가 주로 선불교(禪佛敎)를 표방하기 때문이죠. 그 선(禪)의 뿌리가 달마대사에 닿아 있습니다. 달마대사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백성호 기자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된 달마대사



달마는 중국 사람이 아니다. 인도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피부도 검고, 머리도 뽀글뽀글하다. ‘달마’라는 이름도 인도에서 왔다. ‘다르마(Dharma)’는 ‘법(法)’이란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우주가 숨을 쉬는 이치가 바로 ‘법’이다. 그래서 한국 스님들의 법명에도 ‘법’자가 많이 들어간다. 그게 바로 ‘다르마’란 의미다.



달마대사는 남인도 파사국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왕자였다고 한다. 출가해서 부처님의 법을 잇는 제28대 제자가 됐다. 그런데 그는 인도에 머물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선(禪)의 씨앗’을 대륙에 심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중국에는 이미 불교가 들어가 있었다. 아주 높은 탑도 짓고, 거대한 사찰도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실은 천태지의 선사의 훌륭한 가르침도 이미 중국 땅에는 흐르고 있었다.



불교 종파에 따라 이에 대한 시각은 갈린다. 한국 불교의 경우 조계종에선 ‘선종(禪宗)의 초조(初祖)’로 달마대사를 꼽는다. 그래서 ‘달마 이전의 중국 불교’를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런데 천태지의 선사의 가르침에는 붓다 당시의 인도 수행법과 가르침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어쨌든 여기선 선종의 관점에서 달마대사를 만나볼 작정이다.



2 쑹산에서 달마 대사가 9년간 면벽수행을 했다는 동굴. 3 소림사에 모셔져 있는 달마 대사와 혜가의 상. 소매 사이로 혜가의 오른팔만 보인다.
선불교 전파 위해 양 무제 만나 유명한 문답 남겨



달마대사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물론 고민을 했을 터이다. ‘이 불법(佛法)을 중국 땅에 전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뭘까?’ 결국 달마대사는 중국 양 무제를 만났다. 달마대사의 도력이 높다는 소문을 익히 들은 황제가 물었다. “나는 수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간행하고, 불교 교단을 후원했다. 이 공덕이 얼마나 되겠는가?” 달마대사가 답했다. “아무런 공덕도 없습니다.” 양 무제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 불교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달마대사는 “진리는 텅 비어서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문답으로 비춰볼 때 양 무제는 불교에 대한 애정은 강했으나 불교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표면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 무제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럼 지금 내 앞에 선 당신은 누구인가?” 달마대사는 이렇게 답했다. “오직 모를 뿐입니다.”



이 장면은 중국 불교사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장면이다. 당시에도 다양한 반응이 있었을 터이다. 어떤 이는 “달마대사가 동문서답을 했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달마대사가 양 무제에게 엄청난 자비를 베풀었다”고도 할 것이다.



공덕에 집착한 양 무제에 자비 베풀어



달마대사는 왜 그랬을까. 대체 왜 그리 엉뚱한 대답만 던졌을까. 사실 달마대사는 양 무제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에게 살아 있는 부처를 만나는 길을 일러줬기 때문이다. 양 무제는 달마에게 “나는 이런저런 일을 엄청나게 했다. 그러니 나의 공덕이 얼마인가”라고 물었다. 그런데 달마는 “아무런 공덕도 없다”고 답했다. 왜 그럴까.



이 우주는 이미 붓다의 공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불교의 역대 조사들이 한 입으로 “모두 놓아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모두를 놓을 때 이 무한대 우주를 채우는 생명의 공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언가에 집착하는 순간에 우주의 공덕을 떠나고 만다. 우리의 마음이 집착의 대상에 “차~악!”하고 달라붙기 때문이다.



물음을 던지던 양 무제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 보자. 그의 마음은 이미 숱한 불사와 후원에 대한 집착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양 무제의 마음이 이미 우주의 공덕을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달마대사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답했던 거다. 우주의 공덕을 떠난 집착에는 아무런 공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마는 “무공덕(無功德)”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물음도 그렇다. “무엇이 성스러운 진리인가”라는 물음에 달마대사는 “텅 비어 성스럽다고 할 게 없다”고 답했다. 진리는 텅 빈 채로 모든 걸 수용한다. 그래서 진리에는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 구분도 없다. 그러니 성스러움도 없고, 세속적임도 없다. 달마대사는 양 무제에게 “‘진리=성스러움’이라는 당신의 이분법적 잣대가 바로 진리를 가리는 장벽”이라고 설한 셈이다.



마지막 질문도 그렇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달마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답했다. 왜 오직 모를까. ‘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멀쩡하게 달마가 양 무제 앞에 서 있는데 왜 달마가 없다는 건가?” 그래서 깊이 따져봐야 한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된 존재인가. ‘나’는 무엇의 집합체인가. 불교에선 그걸 ‘아상(我相)’이라고 부른다. 내가 있다는 집착, 내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말한다. 그게 없는 것임을 깨달을 때 달마대사의 답변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대답이 “오직 알 뿐”이라는 대답과 다르지 않음도 알게 된다. 다만 앎과 모름에 착(着)이 없을 뿐이다.



쑹산서 9년 면벽수행…왼팔 자른 신광 제자로 들여



4 쑹산의 소림사 입구. 달마는 이 소림사 뒤편의 산에서 면벽수행을 했다.
달마대사는 양 무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황제를 통한 선불교의 전파’도 포기했다. 그리고 허베이(河北)성의 쑹산(崇山)으로 갔다. 봉우리만 72개인 쑹산은 매우 험한 악산이다. 달마대사는 쑹산의 동굴에 가서 9년간 면벽수행을 했다. 지금은 그 동굴까지 1시간 동안 올라야 하는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경사가 너무 급해 오르기가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달마대사는 계단도 없는 그 길을 오르며 숱하게 넘어졌을 터이다.



거기서 달마는 사람을 기다렸다. 제자를 기다렸다. 이 황량한 중국 땅에서 선법(禪法)의 싹을 틔울 제자를 기다렸다. 소문을 듣고 많은 이가 도를 구하러 찾아왔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이들에게 ‘퇴짜’를 놓았다. 이 험한 땅에서 생명을 틔우려면 무척 강한 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신광(神光)이란 자가 찾아왔다. 당시 마흔 살이었던 그는 유교와 도교에 정통한 고수였다.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이었다. 신광은 달마가 면벽하는 동굴 밖에 서 있었다. 눈은 무릎까지 찼다. 꿈쩍도 하지 않던 달마가 말을 건넸다. “그대가 구하는 것이 뭔가?” 신광이 답했다. “뭇 중생을 건져주십시오.” 달마가 말했다. “만약 하늘에 붉은 눈이 내리면 법을 주리라.” 한마디로 ‘거절’이었다.



그러자 신광은 칼로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 피가 튀어 눈밭을 붉게 물들였다. 붉은 눈이 내린 셈이었다. 그걸 본 달마가 말했다. “부처나 보살도 몸으로 몸을 삼지 않는다. 목숨으로 목숨을 삼지 않으니 법을 구할 만하다.”



불교의 수행자는 ‘색(色)’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바탕인 ‘공(空)’을 만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색을 놓기가 쉽진 않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공에 들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신광은 과감하게 왼팔을 잘랐다. 달마대사는 그걸 통해 색을 자를 정도로 간절한 신광의 구도심을 본 것이다. 신광은 결국 달마의 수제자가 됐다. 그가 바로 중국 선불교의 이조(二祖) 혜가선사다. 달마의 선맥은 혜가를 거쳐 삼조 승찬, 사조 도신, 오조 홍인, 육조 혜능에 이르러 중국 대륙을 뒤덮게 된다.



독살설, 495년 입적설, 인도 귀국설 … 전설이 된 최후



달마대사의 죽음에 얽힌 일화는 여럿이다. 주위 사람의 질투로 독살당했다는 설도 있고, 관 속에 신발 한 짝만 남겨두고 서천으로 갔다는 설도 있다. 또 인도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에 송운이란 사람이 달마를 만났다는 얘기도 있다. 그때 달마는 인도로 돌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달마는 죽어서 전설이 됐다. 붓다 이후의 법맥과 법어를 수록한 송나라 때 불서인 『전등록傳燈錄』에는 달마대사가 495년에 입적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부에선 달마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달마대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선종의 씨앗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씨앗은 선불교라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했다. 그 나무가 한때는 동아시아 대륙을 뒤덮었다. 지금도 그 뿌리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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