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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퍼펙트’ … 자신의 한계마저 넘은 연기

중앙일보 2010.02.25 02:50 종합 2면 지면보기
금메달을 향해 쏴라. 쇼트프로그램에서 완벽 연기를 펼친 김연아가 007의 총 쏘는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밴쿠버=연합뉴스]
완벽한 기술 구사나 우아한 연기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다. 이미 대회 때마다 누누이 확인했던 것들이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24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시엄)에 출전한 김연아(20·고려대)에게 확인받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지난 시즌(2008~2009)부터 수없이 들었던 “그에게 목표는 그 자신을 넘어서는 것밖에 없다”는 말을 확인하는 것이다.



‘자신을 넘는다는 것’은 국민적 기대, 그리고 ‘금메달 후보 0순위’라는 예상과 분석이 주는 압박감을 극복하는 일이다. ‘금메달 0순위’라는 말의 이면에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승리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징크스가 깨지는 데는, 또 김연아가 최고임을 확인하는 데는 쇼트프로그램 배경음악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가 흐르고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승부는 첫 점프에서 갈렸다=23번째인 김연아 바로 앞에 나온 아사다 마오(20·일본)의 첫 점프는 트리플 악셀-더블토루프 콤비네이션(기본점수 9.50점)이었다. 아사다는 트리플악셀에 이어 더블토루프까지 깔끔하게 뛰었다. ‘깔끔’할 뿐이었다. 악셀 뒤에 이어진 토루프는 악셀의 화려함에 가려 눈에 띄지 않았다. 0.60점의 가산점. 심판들의 손을 3점은커녕 2점 쪽으로 이끌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3명의 심판은 가산점을 주기엔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판단, 0점을 눌렀다.



반면 김연아의 첫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기본점수 10.00점)은 그에게는 잘 맞는 옷과 같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러츠 못지않은 토루프의 도약 높이는 심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두 점프 다 도약도, 회전수도, 착빙도 교본 그 자체였다. 9명의 심판 중 8명이 2점의 가산점을 줬고 나머지 1명의 선택은 만점(3점)이었다. 12.00점 대 10.10점. 두 선수의 쇼트프로그램 점수(김연아 78.50점, 아사다 73.78점) 차이(4.72점) 중 절반 가까이가 첫 점프에서 벌어졌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전체를 관통했다=첫 점프를 성공적으로 마친 김연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부턴 일사천리였다. 김연아는 평소 가장 어려워했던 트리플 플립마저 멋지게 뛰어냈다. 같은 점프에서 아사다는 3명의 심판으로부터 감점(-1점씩)을 받아 0.20점의 가산점을 받는 데 그친 반면 김연아는 가산점 1.20점을 받으면서 격차를 더 벌렸다. 마지막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을 마친 김연아는 전방을 향해 손가락총을 겨누면서 2분50초간의 연기를 끝냈다. ‘본드걸’은 자신의 총에 맞고 쓰러진 상대 선수들을 차례로 확인하면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1만1000여 관중으로 꽉 들어찬 퍼시픽 콜리시엄에 환호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만으로도 김연아가 다른 출전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기를 펼쳤음은 분명했다.



그래도 피겨스케이팅이 스포츠인 이상 기술뿐 아니라 예술성까지도 숫자로 표시할 수밖에 없는 법. 그 모든 것이 담긴 점수가 전광판에 표시됐다. 자신의 종전 최고기록이자 세계기록이던 76.28점을 2.22점 경신한 78.50점. 2007 도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71.95점으로 쇼트프로그램 첫 세계신기록을 세운 이후 다섯 번(2009 4대륙선수권 72.24점→2009 세계선수권 76.12점→2009 그랑프리 5차대회 76.28점)째 자신을 넘어섰다. 김연아는 올림픽에서마저 자신에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글=밴쿠버=장혜수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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