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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코드 2000] 17. 여름철 음식 '보신탕'

중앙일보 2000.07.01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외국을 여행할 때면 흔히 "그 나라의 전통음식을 꼭 먹어봐야 한다" 고들 말한다. 여행이 다른 문화와 만나는 즐거움이라면 전통음식은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이국 문화의 정수인 까닭이다.





우리의 전통음식은 무엇일까. 한국사람은 김치.된장부터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서구인, 특히 유럽인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당신도 개고기를 먹는가"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보신탕이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세계에 알려지면서 서구인들에게 던진 문화적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거꾸로 보신탕이 그만큼 특이한 우리의 음식문화란 얘기이기도 하다. 보신탕은 전통적으로 여름 음식의 으뜸으로 여겨져 왔다.





"며느리 말미 받아/본집에 근친갈제/개잡아 삶아얹고/떡고리며 술병이라" 조선시대 만들어진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는 1년 12달의 농가풍경을 묘사한 노래다.





음력 8월 대목에서 개고기가 등장한다. 여름 한철 힘겨운 농사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친정을 찾아가는 며느리에게 개고기를 주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개고기는 사돈댁에 보내는 귀한 음식이다. 영어권에서 '죽은 개(dead dog)' 란 '아무 쓸모 없는 것' 이란 뜻이니 인식의 차이가 크다.





이런 인식의 차이, 문화의 차이는 수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결과다. 인류학자들은 개고기를 먹는지 여부를 크게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차이로 본다. 주영하(38.세종대)교수는 "유목민들에게 개는 가축을 몰고가는 중요한 일손이다.





그러나 농경민족에게 개는 먹다남은 음식찌꺼기를 처리하는 가축이다. 또 유목민들에게는 개가 아니더라도 양이나 소와 같이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 많다. 그러나 농경민에게는 특별한 고급 단백질원이 없다" 고 설명했다. 당연히 농경민족은 개를 식용으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여러 가지로 뒷받침된다. 중국의 고대문명인 은허(殷墟)를 발굴하던 중 주거지에서 개뼈가 무더기로 발견되곤 했다.





그러나 서구 유목민족들의 주거지에서 개뼈가 발굴된 적은 없다. 수천년 중국역사의 살아있는 화석인 한자도 그 방증이다.





그릇을 의미하는 '기(器)' 는 개 한 마리를 4명의 입이 둘러싸고 나눠 먹는 모양이다. 주(周)나라 때의 국가행사를 기록한 책인 주례(周禮)에서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린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런 고대의 전통이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그대로일 수는 없다. 서구의 경우 18세기 산업화와 함께 목축이 끝나면서 개의 개념이 바뀌었다. 목장의 일꾼이었던 개가 침실의 애완동물이 된 것이다.





김열규(68.인제대)교수는 "공간적 거리가 좁혀지면서 문화적 개념이 바뀌었다. 서양에선 개가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애완동물이 되었기에 여전히 식용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개는 여전히 마당 한 구석에, 식용으로 사용하기에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 설명했다.





요즘 중국에서도 개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 주교수는 "중국은 양쯔(揚子)강 이남에서는 개고기를 먹지만 이북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북방의 유목민 전통이 많이 섞였던 탓으로 보인다. 개고기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양쯔강 북쪽에서 개고기는 조선족들의 요리(단고기)로 통한다" 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개고기는 남북을 불문하고 여전히 식용으로 살아있다. 지난해 정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전국 6천4백여 보신탕집과 1만여 건강원에서 매년 1백만마리에 육박하는 개고기를 소비하고 있다. 북한에선 '단고기' 전문점이 성황을 이루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리법을 지도할 정도다.





이런 보신탕 문화의 강세는 한반도에서 개고기의 필요성이 다른 지역보다 오랫 동안 남아있었음을 말해준다.





주강현(45.민속학자)씨는 "벼농사와 두레라는 전통이 큰 역할을 했다" 고 설명했다.





벼농사는 여름 삼복더위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투입된다. 온 마을이 함께 일하고, 나누는 두레의 전통도 벼농사와 무관치 않다. 한여름 힘든 일을 뒷받침하는 영양공급원이 바로 개고기다.





동네에서 돌아가며 개를 잡아 개장국을 끓여 다같이 나눠 먹는다. 소는 값비싼 농업노동력이며, 돼지도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잡지 못할 정도로 귀했다.





이런 경제적 이유 외에 의학적.동양철학적 배경도 중요하다. 예한의원 이응세(40)원장은 "여름이 되면 양기가 몸의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데 이 경우 속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이 필요하다.





개고기는 대표적으로 따뜻한 음식이다. 체질적으로 태음.소음인에게 더욱 좋은데, 우리나라 사람의 70% 정도가 태음.소음인에 해당한다" 고 말했다. 동양철학에선 개고기의 화(火)기가 복날의 금(金)을 녹이기에 특히 복날에 먹는 것이 좋다고 본다.





물론 서양의학에서는 이런 개고기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고기가 부드러워 소화가 잘 되는 정도 외에 다른 고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보신탕은 숱한 논란 속에서도 성인남녀의 절반 이상이 먹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자랑하고 있다. 주강현씨는 "88서울올림픽 이후 법적으로 음식으로 대접받지도 못하는 수난 속에서도 보신탕집은 늘어나고 있다.





음식문화는 어느 다른 분야보다 더디게 바뀌는 속성이 있기에 보신탕문화의 전통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 이라고 전망했다. 바야흐로 복(伏)의 계절이 시작됐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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