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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명소 여수 향일암 한밤 화재로 잿더미

중앙일보 2009.12.21 03:23 종합 20면 지면보기
20일 오전 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잿더미로 변한 대웅전의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일출 명소인 전남 여수 향일암(向日庵)에서 불이 나 대웅전을 포함한 주요 건물이 잿더미로 변했다. 향일암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자리해 연간 6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3시간 만에 대웅전·종각 등 3채 불타 … 방화 가능성도
진입로 좁고 산 중턱 위치, 강풍까지 불어 불길 못 잡아



20일 0시20분쯤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에서 불이 나 사찰 건물 8동 가운데 1986년 새로 지어진 대웅전(51㎡)을 비롯해 종무실(26.9㎡)과 종각(16.5㎡) 3개 동과 대웅전 안에 있던 모사본 석가모니불 등을 모두 태워 5억90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3시간여 만에 꺼졌다. 불이 날 당시 사찰에는 승려와 신도 등 26명이 있었으나 긴급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화재가 나기 전의 향일암. 가운데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종각이, 왼쪽에 종무실이 있었다. 대웅전 뒤편의 흔들바위는 경전을 펼쳐놓은 듯한 모양이다. [여수시 제공, 뉴시스]
여수시 박상봉 문화재 담당은 "대웅전이 30년이 안 된 건물이고 불상과 탱화 등도 모사본이어서 문화적 가치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불이 나자 소방대원과 공무원·주민 등 300여 명이 나서 암자 내 3.5t짜리 자체 저수조와 동력펌프를 이용해 진화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사찰이 금오산(해발 323m)의 가파른 중턱(해발 150m)에 있는 데다 초속 6~7m 강풍이 불어 불길을 잡지 못했다. 불이 난 대웅전 등에는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산 입구에서 사찰까지 1㎞에 이르는 진입로는 가파르고 좁아 첫 소방차는 119 신고 후 20여 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불을 처음 발견한 총무 스님(40)은 “요사체에서 잠을 자다 화장실에 가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대웅전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며 “불은 좌우로 2~3m쯤 떨어진 종무실과 종각으로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고 말했다.



대웅전에서는 19일 오후 8시30분쯤 스님과 신도들이 예불을 마친 뒤 촛불을 껐으며, 오후 10시30분쯤 신도 2명이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사찰 측은 직원 1명이 오후 11시쯤 대웅전 주변을 순찰했으나 별다른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대웅전 천장에 백열전구로 된 연등이 많이 달려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의뢰했다”며 “사찰이 24시간 개방돼 있어 방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돌산읍 임포마을 이장 주대오(52)씨는 “매년 31일 밤부터 5만여 명의 인파가 모여 올해도 일출제를 준비했는데 화재로 물거품이 되게 됐다”고 걱정했다. 여수시는 향일암 아래 ‘해돋이 광장’에서 일출제 행사를 진행할지를 검토하고 있으나 종각이 불타 ‘제야의 타종식’ 등 행사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천창환 기자



◆향일암=조계종 19교구인 화엄사의 말사로 원효대사가 659년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한 뒤 1715년 인묵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으로 명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도 문화재자료 40호다. 바다와 맞닿은 금오산의 가파른 언덕에 자리해 수평선 일출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매년 12월 31일 수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다. 불에 탄 대웅전은 86년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으며, 최근 대웅전 안팎을 순금 5㎏을 들여 금박으로 단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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