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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은 노무현 “해고자 복직만은 안 돼”

중앙선데이 2009.11.29 03:22 142호 3면 지면보기
철도가 나흘째 덜컹거리고 있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철도파업은 사실 연례행사다. 그러나 연례행사에 대한 정부와 사측의 접근법이 과거보다 강해졌다.지난 25일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이 철도노조와의 단체협약 해지를 결정한 게 한 예다. 그는 “노조가 공기업 선진화와 잘못된 단체협약 개선에 반대하고 해고자 복직 등 무리한 요구만 계속하고 있다”며 철도 역사상 60년 만에 단협 해지를 노측에 통보했다.

철도공사 ‘최장수 CEO’ 이철 전 사장이 본 철도노조

강경한 허 사장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자리한다는 시각이 많다.실제 나흘 뒤인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허 사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날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이 대통령은 “파업에 적당히 타협하고 가선 안 된다”고 했다.철도노조는 공공부문 중 가장 강성 노조로 꼽힌다. 친노조적 성향이었던 노무현 정부마저 철도노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2005년 1월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한 이래 최장수 사장인 이철(사진) 전 사장(2005년 6월~2008년 1월)은 그래서 노조와 가장 많이 대치한 사람이다. 중앙SUNDAY가 이철 전 사장에게 철도노조 파업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 전 사장은 인터뷰에서 비화를 공개했다. 지금 노조파업의 핵심 이슈인 해고자 복직 문제는 당시에도 가장 큰 현안이었다. 그때 해고자 복직을 강력하게 반대했었던 사람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명박-허준영’ 라인처럼 ‘노무현-이철’ 라인도 철도노조와 힘겨루기를 했었다.

“복직” 건의에 벌떡 일어난 노무현
-노 전 대통령과 철도 노조원 복직 문제를 의논했습니까.
“2005년 사장으로 취임하니 해고된 철도 노조원이 80~100명쯤 됐어요. 청와대 주거공간(관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이렇게 말했어요. ‘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학교에서 네 번 쫓겨나고 다섯 번 입학과 재입학을 해서 20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학생은 잘리면 다른 대학을 가면 되지만 해고자는 다릅니다. 해고자들은 다른 회사로 가는 게 아니라 24시간 노동운동하는 투사로 변하게 됩니다. 이걸 해결할 방법은 복직밖에 없습니다’라고요. 그때 권양숙 여사도 같이 있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 반응이 어땠습니까.
“이 문제를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니 갑자기 흥분하는 거예요. 방에서 편하게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벌떡 일어나더군요. 흥분해서 내 호칭도 바꾸더라고요. ‘미안합니다, 이 총무님. 딴건 다 하겠는데 이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요. 노 대통령 흥분하면 말투 아시죠?”
이 전 사장은 1992년 통합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냈다. 당시 그는 3선 의원이었고, 노 전 대통령은 통합민주당 초선 의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사장님’에서 ‘총무님’으로 호칭을 바꾼 이유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도 물러서지 않았죠. ‘아니, 대통령께서 나를 개혁하라고 철도공사에 보내놓고 뭐는 되고 뭐는 안 된다는 식으로 하면 대체 뭘 하란 얘깁니까’라고요. 나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라고 하고 노 대통령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고 언쟁을 했습니다.”

-대통령에게 상당히 ‘세게’ 얘기한 편이었군요.
“내게 철도공사로 부임하라고 할 때, 안 가려고 했던 걸 알고 있나요? 나더러 기껏 준다는 게…그땐 너무 화가 났어요. ‘나 못 간다’고 성명서 뿌리려다 직전에 철회했죠. 가까운 정치인들 얘기가 ‘노통이 너 물 먹인 건 맞다. 그렇다고 네가 안 받으면 밥상 작다고 걷어찬 졸렬한 인물밖에 더 되느냐’고 해요. 그래 할 수 없이 꾹 참고 1년만 해야겠다고 하고 간 거죠. 가보니 철도공사가 막 발족해 6개월 됐을 때인데 완전 쑥대밭이었어요. 주요 간부들이 모두 검찰조사 받고 구속됐거나 재판 도중이었어요. 뭐 잃을 게 있다고 내가 얘기를 못하겠습니까.”

-노 전 대통령은 왜 해고자 복직을 반대한 겁니까.
“철도 노조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겁니다. 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서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노통 자신은 노조 얘기를 100% 들어줬다고 생각하고 노조와 타협하라고 지시했는데, 철도노조가 얼마 안 있다 파업에 돌입한 겁니다. 장관들하고 공무원한테 아주 망신을 당했다는 거죠. 타협안도 자신이 검토해서 직접 지시한 건데 그걸 파업으로 끌고 갔으니. 그때 다시는 철도노조하곤 타협 안 한다고 각오한 겁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후 두 달 만인 2003년 4월 철도노조는 당시 철도청의 공사화를 전제로 ▶철도 민영화 철회 ▶인력 충원 ▶해고자 복직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노조는 합의를 뒤엎고 6월 28일 철도공사법 입법 저지 파업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최초로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노무현 정부 첫 공권력 투입
-그래서 해고자 복직 요구를 거둬들였습니까.
“노통이 흥분해서 일방적으로 연설을 하기 시작했어요. 15분인가 20분 정도요. 요지는 ‘이 총무님, 나도 노동자 사랑합니다. 노동자 위해 투쟁도 했습니다. 그런데 복직만은 안 됩니다’라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30분을 옥신각신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울분에 차서 ‘이 사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내가 마지막 양보를 하겠습니다. 내 임기 전에 해고된 사람들 문제는 이 사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그러나 내 취임한 이후 (뒤통수 때린) 사람들은 입 밖에 내기도 싫습니다. 그건 이 사장님이 양보하시오’라는 거예요. 그게 마지막 결론이었어요.”

이 일이 있은 지 열 달 뒤인 2006년 3월 철도노조는 파업을 강행한다. 직권중재 기간 중의 불법파업이었다. 따가운 여론에 밀려 철도노조는 나흘 만에 백기를 들었다. 당시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가 2003년 파업 때 해고됐던 사람들의 복직이었다.
이 전 사장의 회고에 의하면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완강한 반대로 복직될 수가 없었던 셈이다. 2003년 파업 당시 해고된 이들 문제는 지금도 철도노사 간 중요 현안이다. 이 전 사장은 노 전 대통령 임기 전에 해고된 15명은 2006년 4월과 11월에 노사합의에 의한 ‘특별채용’ 형식으로 복직시켰다.

하지만 이 전 사장은 2006년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 2200명 이상을 직위해제하고, 노조에 151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소송으로 노조는 51억여원을 사측에 배상해야 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의장 시절 유신정권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지금의 허준영 사장을 연상케 하는 행보였다.

-노 대통령과 만났을 때 해고자 복직 문제 말고 다른 문제는 논의하지 않았습니까.
“철도공사 부채 문제를 꺼냈습니다. 무조건 해결해달라고 했습니다. 철도공사가 만든 부채가 아닌데도 그 부채를 떠안고 경영평가 받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노 대통령이 메모를 하더라고요. 일리 있는 얘기라면서요. 그러곤 연두회견에서 철도 얘기를 했어요.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요.”

“얼치기 지식인들, 나 축출 지지”
철도청은 경부고속전철 건설에서 생긴 부채 4조5000억원을 안고 철도공사로 전환했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법개혁·한미동맹·자주국방·행정중심복합도시 문제 같은 굵직한 문제를 언급하다 마지막에 불쑥 철도공사 얘기를 꺼냈다.그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숙제의 하나는 철도적자 문제”라며 “이 문제는 철도공사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기업 전반도 아니고 특정 공기업의 적자 문제를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언급 배경에 이철 전 사장과의 독대가 있었던 것이다.정부의 지원 아래 철도공사는 조금씩 적자 폭을 줄여나갔다. 그는 임기 동안 효율성을 강조하며 계열사 통폐합 등의 대수술을 강행했다.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 등을 벌여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2007년 흑자결산을 이뤄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철도노조와 게임을 벌여야 했다. 철도노조는 2007년 다시 파업을 감행했다. 이번엔 이른바 ‘이철 사장 축출 투쟁’이 명분이었다.

-왜 축출하려 한 거지요?
“KTX 여승무원 문제였지요. 나는 비정규직인 여승무원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바꿔주려 했거든요. 노조 요구는 철도공사 정직원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거였습니다. 이건 노조원들조차도 압도적 다수가 반대였습니다. 국립대 청강생을 정규학생으로 만들어 달라해서 인정해 줬더니 서울대 정규학생으로 해달라고 요구 수준을 훨씬 높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진보적 지식인, 전 얼치기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만 일부 언론을 앞세워 나를 성토하고. 마치 적군들만 수십만 명 있는데 홀홀단신인 느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장관 한 명은 여승무원 편에 서서 (정규직으로) 받아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죠. 나랑 친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었습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안 된다고 반박했었죠.”

-‘축출 파업’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2007년 11월에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고 사장축출운동을 했는데, 파업 찬반투표에서 52%로 가결됐다고 발표했으나 노조 내에서 부정투표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한마디로 무리수였죠. 그해 11월 총파업을 선언했는데, 근무조에 있던 사람이 파업 현장에 나간 게 전국적으로 6명뿐이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파업이 무산됐고 집행부는 쫓겨났죠.”

"노조원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
-이번 파업은 어떻게 보십니까.
“허준영 사장이 관료 출신이라 노조를 대화나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탓도 있지만 실제는 그보다 더 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허 사장이 전혀 재량권이 없이 정부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허 사장이) 정부 요구를 100%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타협 의지는 전혀 없겠죠.”

-이 전 사장 재임 중 일어난 파업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제가 있을 때와 다른 게 단협을 해지한 것인데, 물론 단협에 잘못된 부분도 있다는 건 제가 알죠. 하지만 그런 것들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 나가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죠. 물론 그렇게 하고 싶어도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잘됐든 못됐든 협의나 합의사항들이 한꺼번에 무시되는 것도 아니죠.”

-그러면 이번 파업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제가 파업에 찬성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참 조심스럽습니다. 국민 대부분은 파업 찬성 안 한다고요. 그러나 노조가 와해되는 게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2007년의 철도파업 와해는 노조원들이 스스로 판단한 것이었어요. 그동안 무작정 노조집행부가 파업하면 따라갔으나 그때 사상 처음으로 조합원들의 판단에 의해 집행부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거죠.조합원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조합원들의 마음이 과거로 회귀하진 않을까 그걸 걱정하는 겁니다.”

-앞으로 정부나 사측은 어떻게 대응해야겠습니까.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나가는 데 대해선 우려하고 있습니다. 설령 정부나 공사가 바라는 바를 100% 성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소란과 불편과 희생이 따를까 걱정스럽습니다. 가능하면 서로 타협을 생각하면서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게 옳지 않을까…. 아, 걱정스럽네요.”
이철 전 사장은 철도보다 ‘사형수 이철’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철도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2008년 1월 퇴임사)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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