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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로런스 “거품기에 착공해 경제 위기 때 완공, 상관관계 있다”

중앙선데이 2009.11.29 03:16 142호 4면 지면보기
고대에 왕과 종족의 권위를 상징했던 고층 건축물은 오늘날에도 국가 자부심의 상징이다. 초고층 빌딩의 꿈은 갈수록 거대해져 1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3.2㎞ 높이, 500층 규모의 ‘울티마 타워’ 구상까지 나와 있다.초고층 빌딩의 신축은 경기와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 흔히 이 상관성을 일컬어 ‘초고층의 저주(skyscraper curse)’로 부른다. 초고층 빌딩을 지으면 경제 위기가 온다는 저주다. 연관성을 처음 분석한 사람은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다. 그가 1999년 창안한 ‘초고층 지수(skyscraper index)’는 경제 위기와 초고층 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로런스에 따르면 초고층 빌딩은 거품기에 착공되고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완공된다. 1908년과 1909년 완공된 뉴욕 싱어와 뉴욕 메트로폴리탄생명 빌딩은 1907년 패닉과 함께 탄생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1년 문을 열었다.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타워 역시 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개장했다. 로런스는 두바이의 버즈 두바이가 솟아오를 때 또 다른 위기를 직감하지 않았을까.

초고층 지수가 갖고 있는 나름의 예측력은 흔히 ‘캔틸런 효과(Cantillon Effects)’로 설명이 가능하다. 캔틸런 효과는 화폐 공급량에 따라 재화나 용역의 상대 가격이 변해 생기는 현상이다. 예컨대 통화 공급이 늘어도 물가는 모두 똑같이 오르지 않고, 어떤 것은 더 오르고 어떤 것은 덜 오른다. 통화 공급은 또 금리도 떨어뜨리는데, 이로 인해 건물 같은 장기 자본재의 가치가 각광받는다. 이게 캔틸런 효과다.

대개 통화 공급이 늘면 돈은 빌딩 같은 장기 자본재나 도심의 땅에 몰려들어 이것들의 값을 끌어올린다. 땅값이 오르면 땅 주인은 좀 더 자본집약적인 구조물을 짓는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초고층 신축의 동력이다. 신축 여건도 좋아진다. 저금리 덕에 같은 비용으로 더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다. 분양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줄을 선다. 그렇지만 대규모 자본 투자가 활발한 호황기에는 정교하고 합리적으로 사업성을 판단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제 위에 대규모 계획이 세워진다. 왜 그런가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물음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든 덜 합리적인 자본 투자로 인한 손실이 확인되면 경기는 움츠러든다. 광범위한 자본 손실의 충격파는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

캔틸런 효과는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리처드 캔틸런(또는 리처드 캉티용)의 이름에서 따왔다. 캔틸런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680년대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캔틸런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미시시피 거품의 주인공인 존 로 등과 함께 외환거래업으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734년 불 탄 런던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프랑스어 원고는 1870년대에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캔틸런 효과도 그의 사후 후세들이 붙인 이름이다.

유사 이래 최고 빌딩인 818m 높이의 버즈 두바이도 세계 경제의 거품기 정점이랄 수 있는 2005년 1월 착공됐다. 두바이의 미래에 대해 경고음이 없지 않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낙관적인 전제 위에 계획들이 추진됐다.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무하마드는 올 9월 “장래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실현 가능성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이제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버즈 두바이는 금융위기의 터널을 지나 우여곡절 끝에 개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개장일은 올 9월 9일에서 12월 2일로, 그리고 다시 내년 1월 4일로 늦춰졌다. 이날은 셰이크 무하마드의 취임 4주년이다. 이번 위기로 다시 개장이 늦춰질 수도 있다. 예정대로 화려한 개장식이 열린다고 해도 빚쟁이 두바이의 초라함을 감추긴 어려울 듯하다. 버즈 두바이도 초고층의 저주를 완전히 비켜가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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