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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 똑같은 질병일 뿐인데, 왜 건강보험 혜택 안 주나

중앙선데이 2009.11.29 02:22 142호 22면 지면보기
주우영(가운데)씨 등 세 명이 27일 탈모치료센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동연 기자
27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의 한 탈모 전문 관리·치료센터 사무실. 남녀 ‘탈모인’ 세 명이 마주 앉았다. 회사원 유모(28)씨와 가정주부 서모(54)씨, 탈모 전문 관리자인 치료센터 주우영(47) 이사였다. 탈모 진행 정도는 초기(유씨), 중기(서씨), 말기(주씨)로 각기 달랐다. 이들이 모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 이사가 치료센터에 다니는 고객들을 설득했다. 대부분의 탈모인들은 언론 노출을 꺼렸다. 어렵게 방담에 참여했지만 사진을 찍으려 하자 서씨가 기겁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진은 절대 안 돼요. 그럼 저 안 해요.” 뒷모습만 촬영하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이후에도 “이름은 쓰지 말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방담은 탈모 경험, 고통, 극복 방안 등을 주제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탈모인들이 말하는 탈모의 고통

치료약 있다면 소록도에도 달려가
주 이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주=탈모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탈모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 구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1990년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더니 원형탈모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스트레스에다 유전적 요인이 겹쳤다고 했다. 구청을 그만두고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거기선 안전모자를 쓰고 일한다. 머리를 가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녔다. 나환자촌인 소록도까지 갔다.

한기범씨가 모발이식수술 하기 전후의 모습.
나환자촌의 70대 노인에게서 약을 구해 발랐지만 소용없었다. 두피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호르몬주사를 2년 동안 맞았다. 머리에 주사바늘이 들어갈 때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후유증으로 눈썹까지 다 빠지는 경험도 했다. 97년엔 5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도 참여했다. 1년6개월 동안 참여했는데 머리가 조금씩 났다. 그때 탈모 카운슬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서=탈모인 마음은 다 똑같다. 우리는 서비스 계통의 일은 하기 어렵다. 고객들이 혐오감을 갖는다. 2005년 갑자기 머리를 감으면 한 줌씩 빠지더니 4~5개월 만에 머리가 반 이상 빠졌다. 머리 감기가 두려웠다. 자꾸 빠지니까 머리카락 한 올이 아까워 미용실에 갈 엄두가 안 났다. 경동시장에 가서 한약도 많이 지어다 먹었다. 차츰 좋아지는 듯하더니 다른 쪽 머리카락들이 빠져 결국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죽고 싶었다. 동창회도 나가기 싫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유=내 또래의 20대 탈모인들이 적지 않다. 2년 전쯤 친구가 내 머리를 보더니 속이 빈 것 같다고 했다. 깜짝 놀라 거울을 봤더니 정말 그랬다. 가마 주위 3cm 너비로 훤했다. 체질적으로 몸에 열이 많은데 그것도 탈모의 원인이 된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심한 대머리라 유전적 요인도 걱정된다. 인터넷 탈모 사이트에 들어가 연구도 많이 했다. 6개월 전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미리 예방해야 좋다고 해서….
유씨의 머리는 언뜻 보면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커보였다.

▶유=내 증상은 머리가 빠지는 것보다 가늘어지는 것이다. 머릿결이 반 곱슬인데 모발에 힘이 없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푹 가라앉는다. (머리에) 신경이 쓰여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머리가 빠지면 여자들이 싫어한다. 이러다 장가도 못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참석자 중 여성은 서씨 혼자였다. 50대 여성이 느끼는 탈모는 어떤 것일까.
▶서=머리가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에 따라 10년이 더 늙어 보이기도, 젊어 보이기도 한다. 머리 감을 때 빠져나가는 한 올 한 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금가루보다 더 소중하다. 1년 내내 가방에 모자를 넣고 다닌다. 갑자기 비가 오면 쓰기 위해서다. 하나 둘 모으다 보니 모자 수집이 취미가 됐다. 아는 사람들이 ‘60대 할머니 같다’고 할 때 충격을 받는다. 이 나이에 예뻐서 어디에 쓰겠나. 다만 여자가 이런 고통을 겪다 보니 머리카락만 있어도 행복하겠단 생각이 든다. 지금은 당당하게 다닌다. 조금 창피할 뿐인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 탈모 치료에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했다.
▶서=지금까지 치료받느라 쓴 돈이 500만원가량이다. 너무 비싸다. 식이요법, 발모제, 발모촉진용 샴푸 치료를 동시에 진행한다.
▶유=탈모는 건강보험은 물론 어떤 보험 대상도 안 된다. 골퍼들을 위한 홀인원 보험도 있는데 탈모에는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
▶주=군대에서는 원형 탈모가 왔을 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탈모는 치료하고 싶어도 비용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방담을 마친 뒤 주 이사가 부연 설명을 했다. “직장인 유씨가 치료를 받으러 온 건 여자친구 때문이다. 대뜸 ‘네 아버지가 대머리신데 너도 혹시 대머리 되는 것 아니냐’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아서였다. 키가 1m80㎝에 호감이 가는 외모인데도 머리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산다. 젊은 남성 탈모인들의 불안은 첫째, 여자가 싫어한다는 것이고 둘째 취직 문제다. 한국 여성들은 남편감으로 다른 건 다 용서가 돼도 대머리는 용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취직 면접에서 떨어져도 머리 때문이 아닌가 걱정한다. 외모 콤플렉스가 심해진다.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비밀리에 치료 받으러 다닌다. 젊은 층은 치료 전과 후의 변화된 사진조차도 안 찍으려 한다. 탈모는 우리 사회에서 숨기고 싶은 비밀이고 장애 아닌 장애다.”

한기범·이봉주는 모발이식, 이덕화는 가발
탈모로 고통 받는 건 일반인만이 아니다. 정치인이나 스포츠스타, 영화인·연예인 중에도 탈모인이 적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 영화감독 이준익, 디자이너 이상봉, 탤런트 이덕화, 가수 설운도, 프로야구 해설가 하일성, 개그맨 박명수·염경환이 그렇다. 스포츠스타 중에는 농구선수 출신 한기범, 전 복싱 세계챔피언 홍수환,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 등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 ‘왕과 나’의 주연 배우 율 브리너가 꼽힌다. 한기범(47)씨는 대학생 때부터 조금씩 머리칼이 빠지더니 결혼 직후인 90년부터 탈모가 진행된 케이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하는데 하수구 구멍이 모발로 막히는 걸 봤다”며 “이후 중국제 발모제, 탈모 샴푸 등을 써 봤지만 효과가 없어 모발 이식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2007년과 올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1만 개의 머리카락을 심었다. 한씨는 “시술 후 대인 관계의 자신감도 회복했다”고 했다. 머리에 왁스를 발라 스타일링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덧붙였다. 시술비에 대해선 “요새 가발이 평균 200만원 정도인데 가발은 2년에 한 번씩 교환해야 한다”며 “이식은 한 번 하면 반영구적이라서 비싸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머리카락이 없으면 귀엽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탈모로 고민하다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며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봉주(39) 선수도 2002년 5000여 개를 심었다. 이씨는 “머리카락이 빠지긴 했지만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며 “병원에 갔더니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해서 심었다”고 말했다. 배우 이덕화(56)씨는 가발 애용자다. 1986년 MBC ‘사랑과 야망’에 출연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드라마 장면 중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한다’라는 지문을 보면 참 작가선생님들이 미웠다”고 말했다. 탈모 경험이 있는 개그맨 박명수씨는 최근 아예 가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탈모 카페 회원의 90%가 10대, 20대
인터넷에는 탈모 관련 카페·커뮤니티가 수두룩하다. 첫 탈모 커뮤니티는 98년에 생긴 ‘대다모(대머리는 다 모여라)’다. ‘초탈모(초기 탈모 예방 모임)’, ‘삼탈모(30대 탈모인의 모임)’ 등도 규모가 크다. 2006년 개설된 네이버의 ‘이마반(얼굴의 반이 이마라는 뜻)’은 회원 수가 7만5000명에 이른다. 회원의 90%가 10대, 20대라고 한다. 카페 운영자인 신주호(34)씨는 “그만큼 탈모가 시작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씨는 탈모로 10년 이상 고생했다. ‘이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스님이 되려고까지 했단다. 전자상거래 컨설팅이 본업이다. 그가 직접 카페를 연 것은 탈모인들이 마음 놓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신씨는 “탈모인들은 탈모를 두피나 모발에 생기는 감기 같은 질병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탈모를 겪는 이들은 정신적 충격이 더 크다”며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젊은이들을 위한 치료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모 치료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며 “싼 데는 한 번에 5만원, 비싼 데는 30만 원 정도”라고 덧붙였다. 신씨는 탈모 치료 비법도 소개했다. “2~3개월 하다가 효과가 안 나타난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모낭 안에서는 새로운 모발이 준비되고 있다. 1년 이상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식생활부터 개선해 몸을 건강한 상태로 돌린 다음에 발모제 등 제품을 써야 효과가 있다.”

그는 “탈모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공짜로 이식 시술을 해 주겠다는 병원이나 회사가 많지만 정중히 거절한다”며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탈모가 극복할 수 있는 병임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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