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할 말 다하면 야구장에 못 가 … 구수한 입담도 실력

중앙일보 2009.08.21 01:00 종합 32면 지면보기
“해설가로 데뷔하는 건 어때?”


야구 중계의 ‘감초’ 해설가, 그들은 …

지난 16일 대전구장에서 은퇴를 선언한 ‘200승 투수’ 한화 송진우에게 Xports 이효봉 해설위원이 던진 말이다. 송진우는 “제가 언변이 좀 달립니다”라고 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하긴, (부산 사투리가 심한) 마해영도 지금 해설을 하고 있네요”라고 받았다.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 수첩에 기재된 해설위원은 모두 14명이다. 지역 민방 해설가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수십 명이다. 야구팬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는 해설위원들의 TV 밖 모습을 살펴봤다.



◆초보 해설가의 애환



롯데에서 은퇴한 마해영은 올해 ‘루키 해설가’다. 지난해 12월 Xports와 계약하고 2~3개월 준비를 했지만 방송이 아직 쉽지 않다고 했다. “한번은 이닝이 끝난 뒤 광고가 나갈 줄 알고 한 잡담이 전파를 탔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현역 선수로 뛰었지만 ‘흔치 않은 상황’이 나오면 룰을 혼동할 때도 있다. 타격 방해와 피처 보크를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선배 아나운서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다. 야구계의 위계 관계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마 위원은 한화 경기 중계 때 김인식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해 비판적인 해설을 한 적이 있다. 다음 날 김 감독은 구장에 도착하자마자 “마해영 어디 있어”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젠 제법 요령도 생겼다. “할 말을 다하다가는 야구장에 못 갑니다. 꼭 해야 할 말은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에둘러 말하기도 합니다”고 말했다. 말을 할 타이밍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언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깊이 있는 이야기는 인터벌이 긴 투수가 던질 때 주로 한다”고 나름대로 요령을 공개했다.







◆야구 지식은 기본, 재미있게 해야



이정천 MBC ESPN PD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해설가들은 신문기사 스크랩 정도 준비만 했다. 지금은 그 정도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 수준의 매니어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이순철 MBC ESPN 위원은 외국 야구서적을 탐독하는 노력파로 통한다.



허구연 MBC 위원은 매일 3경기 이상 TV 시청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야 선수들의 맥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효봉 Xports 위원은 비번인 날에도 야구장을 찾아 꼼꼼히 취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미있는 해설도 요샌 필수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선두주자가 이병훈 KBS N 위원이다.



TBS라디오 해설도 하는 그는 자신의 선수 경험을 바탕으로 야구계 뒷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입담이 일품이다. 이정천 PD는 “해설가는 야구 전문가다. 하지만 전문지식만으론 한계가 있다.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개그맨 기질이 있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은 ‘편파 방송’



구단 관계자나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해설가는 ‘상대 팀을 응원하는 해설가’다. 이달 문학구장 경기에선 한 팬이 ‘편파 방송을 한다’며 방송사 중계 부스에 난입하는 사건이 빚어지기도 했다. 다음 날 해당 방송사는 구단 측에 부스 주변 경비를 공식 요청했다. 현역 시절 ‘미스터 롯데’로 불렸던 김용희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롯데 경기 해설이 가장 조심스럽다. 어떤 말을 해도 ‘롯데 편을 든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SK구단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방송 중계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지난해 윤길현의 욕설 파문도 TV 화면에서 문제 장면이 반복 방영된 탓도 있다”고 말했다.



◆해설가 파워도 높아져



1980년대부터 해설계는 하일성과 허구연이 양대 산맥이었다. 당시 KBS의 하일성은 일반인 눈높이에서 경기를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반면 국가대표 출신에 학구파였던 MBC의 허구연은 전문 야구지식 설명에 능했다. ‘하-허 체제’는 1990년대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케이블TV가 등장하며 해설계도 변화를 맞았다.



95년 한국스포츠TV(현 SBS스포츠)가 개국했고 2001년 KBS N, 2005년 MBC ESPN이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했다. 지난해 Xports의 참여로 프로야구는 전례 없는 ‘전일 전 경기 중계’ 시대를 맞았다. 방송사들은 앞다퉈 능력 있는 해설가를 찾고 있다. 이들의 위상도 올라갔다. 신상우 KBO 총재 시절에는 해설위원 출신인 하일성·박노준씨가 각각 KBO 사무총장과 히어로즈 단장을 지냈다.



최민규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