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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1998.11.23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제6장 두 행상





이면도로였지만 대형차량은 들어갈 엄두조차 못할 만치 꼬불꼬불하고 협소했던 시장통에 그 송아지가 나타난 것은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그 시각쯤 되면, 난전꾼들 사이에 벌어지는 자리다툼도 얼추 가라앉고, 장꾼들의 수효도 눈에 띄게 불어나 바야흐로 호객행위들로 떠들썩해질 무렵이었다.





늦가을의 아침 햇살이 장마당 가운데로 함초롬히 떨어지고, 채마밭에서 뜯어온 푸성귀들을 햇살 잘 드는 골목 어귀에 펴놓고 늘어앉은 노파들도 궐련 한 대씩을 나눠 피울 시각이었다.





송아지가 나타난 지점은 장마당 초입인 황용천다리 앞이었다.


마침 그곳에는 신출내기 행상들이 용달트럭 적재함에 풍로와 번철을 떡벌어지게 차려놓고 도넛을 지져내고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송아지는 그 용달트럭 언저리를 기웃거렸다.


쇠전도 아닌 저잣거리에 나타난 송아지를 발견하는 순간, 신출내기 젊은 행상은 공연히 화가 치밀어 각목 하나를 뽑아 들고 개값도 못하는 짐승이 어디를 기웃거리느냐고 부아를 터뜨리며 송아지 엉덩이를 분수에 넘치도록 후려쳤다.





앗 뜨거워라 했던 송아지는 껑충 몸을 솟구치며 맞은편에 있는 좌판 쪽으로 뛰었다.


덩달아 놀란 것은 과일전 아낙네였다.





좁은 좌판에 과일들을 본때있게 진열하고 몫을 지워 놓는데, 한 시간 이상이나 진땀을 빼고 막 한시름 돌리려던 참이었다.


도넛 난전에서 쫓겨온 송아지가 일순 자신의 과일전으로 달려드는 것을 발견한 아낙네는 눈자위를 하얗게 뒤집고 송아지 앞을 몸 전체로 가로막았다.





아낙네의 아우성 소리를 들었던 신출내기는 품앗이를 한답시고 과일전으로 달려가 송아지 엉덩이를 또 다시 모질게 내리쳤다.


잠깐 사이에 죄없는 엉덩이를 누린내가 나도록 얻어맞은 송아지의 두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본성이 아둔하고 미욱한 송아지는 혹독했던 몽둥이질에 완전히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처음부터 옆에 있는 주차장 쪽으로 몰았더라면, 그날의 불상사는 겪지 않았을 것이었다.


송아지가 갈팡질팡 뛰어든 방향은 공교롭게도 주차장 쪽이 아닌 저잣거리인 이면도로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송아지를 아금받게 다루어서 주차장 쪽으로 몰아낼 여지는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날뛰는 송아지는 두 눈이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게다가 고삐는커녕 코뚜레조차 없었기 때문에 손을 쓸 빌미조차 없었다.


송아지가 이성을 잃고 좁은 골목 안으로 뛰어들자, 아녀자들은 괴성을 지르며 좌판조차 버리고 흩어지기 바빴다.


송아지는 사람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경험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사람과 마주쳤다 싶으면 제풀에 놀라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귀청을 찢는 듯한 여자들의 아우성소리. 송아지를 향해 던진 돌이 잘못 겨냥되어 엉뚱한 기름집 유리창 깨지는 소리.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가는 발걸음 소리들로 저잣거리는 금방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송아지 발길에 걷어차인 채소들이 종잇장처럼 난삽하게 흩어지고, 생선 실은 리어카가 엎어지는가 하면, 과일 좌판들이 길 한가운데로 좌르르 쏟아져 내렸다.





도대체 길길이 날뛰는 짐승을 제어할 방도가 없었다.


고삐가 있는 짐승이었다면 어렵사리 난동을 잠재울 수도 있었겠지만, 고삐 없는 짐승이란 마치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었다.





협소한 저잣거리는 한 마리의 송아지가 저지르는 소동으로 금방 쑥밭이 되고 말았다.


피신하다가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송아지는 이제 장마당에서 거칠 것이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송아지는 사람들의 무절제한 아우성과 난삽한 거동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아우성이 거세어질수록 더욱 날뛸 수밖에 없었다.





마구잡이로 날뛰다가 블록담과 정면으로 마주치면서 입은 부상으로 송아지의 눈두덩에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더욱 사람들을 공포심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난장판이 된 저잣거리의 주인공은 오직 송아지 한 마리뿐이었다.


개값도 못한다며 엉덩이를 내려쳤던 신출내기의 경솔했던 매질이 예기치 못한 소동을 자초한 것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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