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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꿈을 이룬 사람들

중앙일보 2004.08.05 15:20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 청양 문화체험학교 성 욱 교장


일 재밌죠 손님들 기뻐하죠 뭘 더 바라겠어요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고추를 바구니 가득 담아 머리 위에 얹으려는 성욱 교장(左)과 아내 박영숙씨 사이에 도타운 정이 오간다. 성 교장은 "먼 서울까지 일주일에 두세번 오고가는 아내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고 말한다. 박씨는 한 시민단체에서 비상근직으로 일하고 있다.

"조심조심, 너무 깊게 파다 손 벨라."



"줄을 끼우면 목걸이로 써도 정말 예쁠 것 같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고, 조그마한 학교 운동장엔 긴 풀만 수북이 쌓여 있지만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새끼손가락 크기만한 나무토막을 정성스레 잡고 떨리듯 조각칼을 댄다. 세밀히 줄을 긋기도 하고 아래 부분을 한움큼 푹 파내다 보니 어느새 씽긋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장승을 빼닮았다. 지난달 30일 상갑리 문화체험학교 '소형 장승 깎기 프로그램'의 한 모습이다.



충남 청양군 대치면 상갑리 가파(嘉坡)마을. '아름다운 언덕'이란 뜻의 마을 이름처럼 예부터 이곳은 호리병 모양의 분지 지형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했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탓에 청양에서도 가장 외진 곳으로 꼽혔다. 그러나 버려졌던 폐교가 3년 전 '문화체험학교'(041-943-4945)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가파 마을은 도시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고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해엔 1200여명, 올해엔 7월말까지 벌써 100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방학을 이용해 '농촌 체험'을 하기 위한 학생들이 대다수지만 주말을 이용한 가족 단위 방문자들도 적지 않다. 청양군 농업기술센터 김미숙 계장은 "가파 마을은 도.농 교류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단 58가구만이, 그것도 대부분 60~70대 노인네들이 사는 이곳이 이토록 변신을 하게 된 데에는 문화체험학교 성욱(49)교장의 힘이 컸다.



"8년 전 제가 이곳에 내려올 때만 해도 근근이 목숨이나 연장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성 교장은 서울대 국문과 75학번이다. 학창시절 '잡혀 가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한두번 시위에 참여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운동권으로 낙인찍혀 변변한 직장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렵사리 조그마한 출판사를 냈지만 돈만 까먹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6년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해 위의 80%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그는 요양차 상갑리 폐교를 찾았다. "1년 임대료 250만원이면 집도 텃밭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끌렸어요."



초등생 두 딸 등 가족과 함께 내려와 2년쯤 지났을까. 맑은 공기와 가벼운 운동 덕인지 어지간히 몸을 추스르게 되자 그는 청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 관련 교육과정을 차례차례 배워나갔다. 농산물 가공법, 자생화 재배, 친환경농업 등 그가 지금까지 수료한 교육과정은 30개가 넘는다. "농사도 과학이더라고요. 실습과 이론을 접목해 가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던지…."



그는 자신이 익힌 선진 기술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의 말이라면 "농사의 농자도 모르면서 떠드는 얘기"라며 코웃음을 쳤다. "벼농사에 '오리 농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대신 논에 오리를 풀어놔 해충을 잡아내는 방법이죠. 비록 수확량은 85% 수준으로 떨어지지만 벼의 질이 좋아져 값은 훨씬 높게 받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 거예요. 제가 직접 해서 좋은 결과를 냈더니 '사기꾼이다. 몰래 농약을 친다'는 등 오히려 나쁜 소문만 나지 뭡니까."



보수적이지만 순박한 마을 주민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선 꾸준히 성과를 내는 것 이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차츰 신뢰를 쌓아가게 되자 그는 용기를 내 2001년 낡은 교사 안에 '천연 염색 작업장'를 만들고 문화체험학교를 열었다. "돈을 벌고자 했던 게 아닙니다. 외지 사람이 찾아와야 이 고장에서 나는 청양 고추.구기자 등을 직거래할 수 있잖아요. 도시인을 한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했죠."



천연 염색, 장승 깎기, 떡 만들기 등 손쉬우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수업 내용 덕분에 찾는 이들이 늘어나자 58가구 가파 마을 사람들도 두 팔 걷어붙이고 자기 일처럼 동참했다. 예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들은 전통음식 만들기, 짚풀 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했다. 1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면 온마을이 민박촌으로 바뀌었고, 이럴 때면 성 교장은 주민들이 직접 가꾼 농산물을 싼값에 파는 '반짝 시장'을 열기도 했다. 지난해 청양군은 이 지역을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했으니 성 교장이 지핀 불씨가 마을을 바꾼 셈이었다.



"돈은 여전히 없죠. 그러나 건강도 되찾고, 정다운 이웃도 생겼고, 살아갈 보람도 얻었으니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청양=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제천 원서문학관 오탁번 교수



예순을 넘긴 나이건만, 건물 바깥 벽에 달린 새집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동작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의 그것이었다. 새가 놀랄까봐 살짝 고개를 빼고 새집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아빠보다 쉬야를 멀리 쏘고 싶었다'는 내용의 시를 쓸 수 있었을까.



"봐. 뻐꾸기 새끼야. 원래 무당새 부부 집인데 뻐꾸기가 몰래 알을 낳았어. 근데 무당새 부부는 제 새끼인 줄 알고 길러. 지금 새끼 줄 먹이 찾아 나간 모양이야. 나무로 집을 해 달면 새가 둥지 트는 곳. 여기가 그런 데야."



시인이자 소설가인 고려대 오탁번(61.국어교육과) 교수. 3년 전 충북 제천의 폐교인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를 사들여 수리 끝에 지난해 문학 교실로 탈바꿈시켰다. 이름은 소재지인 백운면의 옛 지명 '원서'를 딴 '원서문학관'. 오 교수 자신의 작업실이자 문학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20명 희망자를 받아 올 3 ~ 6월 1기 코스를 마쳤고, 9월부터 2기 강좌를 시작한다(043-653-0978). 오 교수 자신과 알음알음 연줄이 닿는 문인들이 '교수'다. '자연심'을 심어주고자 텃밭 가꾸기도 시킨단다.



"전부터 먹고 살 걱정 없어지면 자연에 파묻혀 글을 쓰려고 했어.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동네를 찾아서. 여기지. 게다가 내 고향이야."



글쓰기 말고도 하려는 일이 있다. 잊혀져가는 우리말 찾기다.



"엘레지가 뭔지 알아? 트로트에 익숙하면 '비가(悲歌)'라고 하겠지. 그건 외래어고 우리말 '엘레지'도 있어. 수캐의 성기야. 이 동네에서 누가 그런 말 하기에 그걸 알았어. 고향 주변에서 이렇게 잊혀져가는 우리말을 찾고 싶어."



사실 이곳은 고향 이상이다. 모교다. 분교가 없던 시절 백운초등학교 출신이다.



"동창 여섯이 근처에 살아. 학교 주변 텃밭에 옥수수.고추.가지 심어 가꾸는 걸 걔들이 다 도와줬지."



운동장 자리에 연못을 팠더니 '옛 어르신 왔다'고 동네 사람들이 근처 강에서 자라까지 잡아다 넣어줬단다. 다 쓰러져 가던 폐교는 이제 자연으로 변했다. 건물 벽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고, 운동장에선 참외가 익고, 울타리엔 조롱박이 달렸다.



하지만 오 교수는 또 다른 '자연'을 꿈꾸고 있다. 원서문학관은 부인 김은자(56.한림대 국어국문학과)교수에게 맡기고 올 가을에 1㎞쯤 떨어진 뒷산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움막 하나 짓고 그 안에 토굴 대신 항아리 몇 개 파묻고 기어들어가 자고 싶어. 옆 항아리에선 산토끼가 자겠지. 그렇게 살다 보면 '어린 왕자'같은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제천=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 영월 곤충박물관 이대암 관장



"길에서 픽(pick)을 주웠다가 기타리스트 된 셈이죠. 우연히 시작한 곤충채집에 평생을 바치게 됐으니…."



폐교가 된 강원도 영월 문포초등학교에 국내 유일의 곤충박물관(033-374-5888)을 세운 이대암(49)씨. 곤충채집 경력 30여년, 이젠 나비 그림자만 봐도 무슨 종인지 알 정도지만 그의 전공은 생물학이 아니다. 이곳에 오기 전 호주.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부학장(세경대 건축디자인학과)까지 지낸 '잘 나가는' 건축가였다.



그가 곤충에 빠져든 것은 대학 1년, 친구 기숙사에서 나비 표본을 본 뒤부터다. 표본이랄 것도 없이 손으로 잡은 노랑나비를 핀에 꽂아 벽에 붙여놓은 것에 운명처럼 매료됐다. 그 길로 포충망.삼각통을 구입, 본격적인 채집에 나섰다. 급기야 전공을 바꿀 작정까지 했다. 당시 무작정 찾아간 사람이 '나비박사'로 유명했던 이승모 선생. 그러나 그는 이씨를 만류했다. "평생 하고 싶다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 충고를 받아들여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국내 굴지의 건축설계사무소에 들어가 6년간 일했다. 하지만 곤충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교수가 된 것도 순전히 '방학 동안만이라도 채집에 전념하고 싶어서'였다. 강단에 선 동안도 꾸준히 채집을 해 현재까지 그가 만든 표본은 총 6000여점. 모아둘 곳이 필요했다. 그러다 1997년 이 폐교를 찾아냈다. 준비과정을 거쳐 지지난해 아예 박물관을 열었다.



물론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도 많았다. 지난해 장마를 겪으면서 표본 수십여점을 버려야 했다. 온도.습도를 맞추지 못해 곰팡이가 슬었던 것. 그중엔 1970년대에 잡은 희귀한 갑충류도 있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자식 같은 이들을 불태웠다.



올해는 전시실에 난방제습기를 설치, 밤마다 가동시켜 장마에 대비했다. 그래도 전시실에 들여놓을 수 있는 수는 소장 표본의 절반 정도. 나머지는 창고에 무방비 상태로 쌓여 있다.



"가끔 관람객들이 '왜 잘 안 보이는 높은 데까지 빽빽하게 전시해 놨냐'며 불평합니다. 하나라도 더 전시실에 보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요."



하루종일 입구에 서서 매표부터 기념품 판매까지 도맡아 하는 이씨. 그 모습에 '관장님'의 권위는 없고 교수님의 이미지도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그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다.



"평생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세상 떠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앞으론 전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거니까 복받은 거죠."







영월=김필규 기자<phil9@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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