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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본 한·일관계]

중앙일보 1998.10.29 00:00 종합 7면 지면보기
94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郎) 는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한국인 못지않게 비판적이다.





그는 '천황' 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의 종적 (縱的) 인 정치.사회체제를 싫어한다.





그는 현실 참여의 작가로 한.일관계에도 관심이 구체적이다.


도쿄 (東京) 세타가야 (世田谷) 의 한적한 고급주택가에 있는 그의 집 거실에서 거의 3시간에 걸쳐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창밖 정원에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는 윤택한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화가인 부인 유카리 여사는 쉬지 않고 차와 과일.케이크를 내왔고, 정신장애를 갖고 태어나 피나는 노력 끝에 작곡가로 입신한 35세의 장남 히카리 (光) 는 미리 연습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었다.





[만난사람=홍석현 본사사장]





홍석현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새로운 전기 (轉機) 를 맞고 있습니다.





일본 천황과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가 다시 사죄를 하고, 총리의 사과발언은 공동선언문에도 넣었습니다.





이제는 미래지향적인 관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오에 = 사과발언이 문서화된 것은 큰 진전이라는 평가에 동의합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로 보상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인식 위에서 보상을 할 수는 없지만 보상을 하고 싶고, 앞으로를 위해 사죄를 포함해 가능한 일을 하겠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해요. 洪 = 선생께서는 일본이 도덕적 청산을 하지 않고는 아시아의 미래에 참가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오에 = 여러해 전 김지하 (金芝河) 씨와의 대담에서 그렇게 말했어요. 일본인이 윤리적.도덕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와 화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洪 = 앞으로는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망언은 나오지 않을까요.


오에 = 망언이 나올 때는 그 망언이 대표하는 저류가 있어요. 망언을 한 오쿠노 세이스케 (奧野誠亮) 전국토청장관은 물론 나쁘지만 그는 그런 발언을 기뻐하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망언은 큰 흐름을 표면으로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일 뿐입니다.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인들은 도덕적으로 조금씩 회복돼간다고 생각합니다.





洪 = 종군위안부 문제가 그냥 덮어두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면 어떤 해결이 가능합니까.





오에 = 근본적인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근본문제입니다.


와다 하루키 (和田春樹) 같은 매우 양심적인 학자들이 종군위안부들을 위한 민간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보상하지 않으니 민간기금으로 보상하자는 생각에서죠. 그건 근본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는 자세죠. 위안부 출신 여성들은 당연히 그런 보상을 거부했어요. 그들은 돈보다 명예회복을 요구합니다.





그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원칙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돈을 주겠다는 것은 그녀들의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히는 겁니다.


그것은 내각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가 논의하고 법을 만들어야 할 문제입니다.





洪 = 나치 독일도 반인류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 사죄하고 프랑스와 우호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일본이 독일같이 하지 못하는 건 독일과 일본 또는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 때문입니까.





오에 = 독일은 지도자도 훌륭하지만 민중이 훌륭합니다.


독일 지식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범죄를 정말로 부끄럽게 여깁니다.





일본은 지도자들이 과거의 잘못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50년이 흘렀습니다.


일본의 지식인을 포함해 시민들이 진심으로 한국.중국.필리핀과 화해하려는 의식을 가졌는가.





물론 가진 사람도 있지만 독일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런 점에서 일본의 시민 도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일본인들은 역사인식이 약해요.





洪 = 독일의 전대통령 바이츠제커는 독일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과거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1930년대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 (南京) 대학살의 책임을 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오에 = 바이츠제커도 독일 젊은이들에게 나치의 만행에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고 그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나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난징학살을 잊지 말고,가능하면 보상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洪 = 94년 선생께서는 한국에서 한국에 대해 편견을 가진 작가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오에 = 그 무렵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김지하씨의 구명운동에 참여해 단식을 했습니다.


그건 한국 정부에 대한 반대운동이었습니다.


내가 한국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았다는 건 내 작품이 말해줍니다.





洪 = 선생의 주요작품의 하나인 '타오르는 푸른 나무' 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만, 등장인물들은 외지에 살다가도 모두 '계곡의 숲' 으로 돌아와 공동생활을 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관계있습니까.





오에 = 자연으로 돌아간다기보다 젊은이들이 모여 자신들의 선조와 부모가 하지 못한 일, 새롭게 선택한, 운명공동체가 아닌 공동체를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일 속에서, 사상 속에서 만들자는 거죠. 洪 = 선생의 작품 '개인적인 체험' 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주인공 '버드 (Bird)' 의 첫 아들이 뇌 헤르니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버드는 처음에 아들을 죽게 내버려 두려고 하다가 수술로 살려내 공생 (共生) 합니다.


이건 선생과 선생의 장남 히카리씨를 실제 모델로 한 것인데, 무엇이 버드로 하여금 아들을 살려 함께 살기로 결심하게 만들었습니까.





오에 =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버드는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고 아이와 같이 살아가자, 내가 아이를 버리면 나 자신의 존엄성과 윤리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洪 =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는 일본에서는 '노벨상을 받지 못한 노벨상급 (級) 작가' 로 평가됩니다.


두분을 이념의 스펙트럼에 놓고 보면 좌와 우로 극명하게 나누어진다고 하겠습니다.


작가 미시마와 인간 미시마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에 = 인간으로서의 미시마는 자기 방식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시마의 글 쓰는 스타일과 인간을 다루는 방법은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해요. 미시마가 살아 있다면 자기비판과 사죄를 요구하고 싶습니다.


천황국가의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일본 자위대에 쿠데타를 요구했습니다.


그건 범죄라고 생각해요.





洪 = 선생은 1960년 결혼할 때 사회가 반동적이고 핵전쟁의 위험이 있어 2세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毛澤東) 을 만나고 혁명중국의 현상에서 용기를 얻어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바꾸어 장남이 태어났습니다.


혁명중국의 어디가 그렇게 희망적이었습니까.





오에 = 중국 인민들이 살아서 활동하는 걸 보고 큰 감동을 받았던 겁니다.





洪 = 그후 문화혁명과 천안문사건이 일어났는데요. 오에 = 문화혁명은 국내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천안문사태 때는 문인들이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보호하는 운동에 참여했어요. 천안문사건은 잘못된 겁니다.





洪 = 나는 지난 8월 22일부터 29일까지 한국의 언론사 대표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분단된 '형제의 나라' 에서 많은 걸 생각했습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반도를 바라보는 일본 지식인의 입장에서 남북이 이념을 넘어 화해와 평화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에 = 한국에는 매우 오래된 문화가 인간 속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오차 (茶道) 나 오하나 (꽃꽂이) 와는 다릅니다.





한국민족의 문화는 역사보다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중심으로 남북이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치.경제체제보다 문화의 뿌리가 중요합니다.





洪 = 선생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의 노벨상 수상 기념강연 주제가 아주 대조적입니다.


1968년 가와바타의 강연제목은 '아름다운 일본의 나' 였고 94년 선생의 강 연제목은 '애매한 일본의 나' 였습니다.


26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아름다운 일본이 애매한 일본으로 바뀐 겁니까, 아니면 같은 일본을 보는 두분의 인식의 차이 때문입니까.





오에 = 인식의 차이지요. 정치적인 일본, 역사적인 일본에서 최근 1백년간의 일본인의 삶을 보면 전혀 아름다운 일본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洪 = 미래가 비관적일수록 젊은 세대에게 기대를 걸게 됩니다.


선생께서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라고 충고하고 싶습니까.





오에 =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 '공중제비' 의 마지막 부분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인간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이 나와야 해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사람이 돼달라는 게 나의 희망입니다.





洪 = 선생께서는 지금은 관용과 공생 (共生) 을 실천하지 않으면 인류가 살아갈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관용과 공생의 정신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 한국에서 생겨난 동학 (東學) 사상.증산교 (甑山敎).원불교 등의 신흥종교에도 보입니다.





상생 (相生).해원 (解寃).사면 (赦免) 이라고도 표현되는 사상입니다.


이들 정신이 21세기 세계의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에 = 그게 안되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洪사장은 심비오시스 (Symbiosis) 라고 했는데 나는 컨비브 (Convive) 를 생 각합니다.


더불어 산다는 의미지요. 관용과 공생이 미래를 만듭니다.


일본인들은 근대의 3분의2 정도의 오랜 기간중 비관용적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관용을 생각하고 경쟁보다 공생을 생각할 때입니다.





洪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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