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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가톨릭 노동사목의 대부 두봉 주교

중앙일보 1998.09.21 00:00 종합 17면 지면보기
건물 외부 어디에도 십자가가 없는 성당이다.


그래서 두봉 (杜峰 : 프랑스명 르네 듀퐁) 주교가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옆 나루터의 가톨릭 서울교구 행주공소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교구장 정년을 14년이나 남겨 놓고 자진 은퇴, 틈만 나면 농사일을 하며 여기서 8년째 자득 (自得) 한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





한국 가톨릭 사목 44년중 안동교구장 (1969~90) 시절, 노동사목담당 주교로 활약하다 '오원춘사건' 과 관련해 추방 명령까지 받았던 두봉 주교를 만나 IMF체제하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노동문제와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이은윤 = 명성은 들어왔습니다만 대면은 처음입니다.


주교 정년 (75세) 이 많이 남았는데 일찍 교구장직을 물러난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두봉 주교 = 교구장 자리를 한국인 주교에게 물려주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배경은 없었어요.





▶이 = 행주공소로 오게 된 경위는.





▶두봉 = 교구장직을 자진 은퇴하면서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가 조그만 공소 (公所) 하나를 맡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음대로 골라보라기에 여러 곳을 다녀보았는데 1910년 본당으로 축성됐던 이곳이 유서도 깊고 내 취미인 채소.꽃 등을 가꾸는 농사일에도 어울리는 환경이더군요.





▶이 = 요사이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성추문' 이 세상 화제입니다.


르 몽드.르 피가로 같은 프랑스 신문들은 새로 등장한 세계화의 총체적 지도력 상실, 공산주의 몰락 10년 만의 미국 슈퍼 파워 와해라고도 보던데.





▶두봉 = 그런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비판의 배경에는 미국의 슈퍼 파워를 견제하려는 유럽연합 (EU) 의 자존심도 깔려 있는 것입니다.


나는 프라이버시 측면에서 재판을 받기도 전에 조사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한 건 절대 반대예요. 사생활의 깊숙한 일면은 필히 보장돼야 할 인간 존엄성의 한 부분입니다.





▶이 = 잘 아시겠지만 한국은 지금 입만 열었다 하면 온통 국제통화기금 (IMF) 얘기입니다.





▶두봉 = IMF가 초래된 데는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외부적 요인이라면 국제적으로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의 '돈장난' 입니다.





나는 태국.인도네시아.한국 등의 외환위기가 하나같이 국제 투기자본의 계획된 음모적 '달러놀음'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달러 외채의 비싼 이자는 돈 많이 가진 자들의 착취고 행패지요. (두봉 주교는 이 대목에서 얼굴이 붉어지면서 두 주먹을 불끈 들어 자신의 책상을 한번 내리쳤다. )





이러한 돈장난이 가능한 것은 덜미를 잡힐 만한 내부적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경우 부정과 비리에 무감각한 사회기풍, 과소비 풍조, 권력만능의 독재 등이 중요 내부요인입니다.





고도성장에 취해 있는 과소비는 한국처럼 자동차.냉장고.컴퓨터를 자주 바꾸는 나라가 없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독재 풍토는 대통령부터가 민주적 여론 수렴과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지요. 문민정부라던 김영삼 (金泳三) 정권도 내가 보기엔 '독재' 였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사제들마저 일방적인 지시.결정을 내리는 자신의 공동체 독재를 해요. 가정도 아직 가부장적 독재가 많이 남아 있고.





▶이 = 현 김대중 (金大中) 정부는 어떻게 보십니까.





▶두봉 = 좀더 기다려 봐야지요. 글쎄, 여론수렴을 잘해야 할 텐데….





▶이 = IMF시대를 극복하는 지혜가 있다면.





▶두봉 = 일거리와 돈을 서로 나누어 갖는 진짜 고통분담이 있어야 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 몰래 감추어 놓고 절대 손해 안보려 하는데 이제 많이 가진 사람들 세금 등을 통해 내놓고 봉급 많은 사람들 깎아서 다른 사람도 일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더불어 살려는 공동체의식이 없으면 세상은 끝장나고 말아요. 내 생각으론 IMF극복은 5년 이상 걸릴 것 같은데 미안한 얘기지만 차라리 빨리 안풀리는게 병폐들을 치유하는 데 좋을지도 몰라요. 도덕성을 새삼 확립하는 '양심회복운동' 없이 근본적 치유는 불가능합니다.





정부.기업.개인 모두가 지금 돈문제에만 매달리는데 돈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양면성이 있어요.





▶이 = 당면한 경제구조 개혁으로 고임금 저효율의 산업구조와 노동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정리해고가 제기돼 있는데. 임금깎고 노동시간 줄여야





▶두봉 = 고임금 저효율 구조는 맞는 얘깁니다.


노동자까지 포함, 모든 월급쟁이들이 너무 많은 봉급을 받는다는 것 깨달아야 해요. 정리해고도 가슴 아프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임금을 깎고 노동시간을 줄여 함께 일하는 시간분할근무제 (Job Sharing) 와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사회복지제도가 빨리 확립돼야겠지요.





▶이 = 돈을 많이 가졌다는 것 자체를 부도덕이라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두봉 = 돈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전복 시키기도 하는 물과 같습니다.


내가 아는 장년의 치과의사 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벌었는데 이제 미국으로 이민가서 그림이나 그리면서 취미생활을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금융실명제도 당연한 상식인데 가진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아 실패했지요. 가진 사람들이 이런 식이면 나라가 죽고맙니다.





▶이 = 로마 가톨릭은 1891년 교황 레오13세의 회칙 (回勅) '레룸 노바룸 (Rerum Novarum:새로운 사태)' 을 반포한 이래 많은 사회적 가르침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면서 특히 노동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가톨릭 노동윤리의 핵심은 어떤 것입니까.





▶두봉 = 한마디로 인간이 있은 다음에 경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노동시간과 임금은 인간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돼야 되고요. 가톨릭은 사유재산권을 전통적 자연법 사상에 기초해 불가침의 권리로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재산도 근본적으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재산을 소유한 개인은 다만 관리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라고 해서 내돈 내 마음대로 써서는 안됩니다.


모든 재산권 행사는 반드시 인류공동체의 이익과 공공윤리에 어긋나지 않아야지요.





▶이 = 대기업들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은데….





▶두봉 = 재벌제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기업을 해서 번 돈을 투기나 정경유착에 쓰지 말고 정의롭게 분배한다면 욕할 사람 없을 거요.





▶이 = 현 교황 바오로2세는 회칙 '1백주년' 에서 민주적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면서 기업심 (企業心) 을 인간 기본권인 창의성 발휘의 하나라고 했는데.





▶두봉 = 그렇습니다.


이제 자본주의는 그 약속들을 이행하기 위해 도덕적.문화적 제도들을 진지하게 개혁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론 내핍정신.절제.책임감.엄격성.부패에 대한 경멸 등과 같은 자본주의 본래의 문화적 기풍을 새삼 진작시키지 않으면 안돼요.





▶이 = 1979년 노동사목을 하다가 추방명령을 받았던 얘기 좀 해주시지요.





▶두봉 =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정신적 뒷받침을 해주는 것뿐이었는데 제3자 개입, 또는 '빨갱이' 라고까지 합디다.





한번은 이효상 (李孝祥) 국회의장의 권유로 내무장관을 찾아가 노동자 입장을 설명했는데 79년에는 오원춘사건과 관련시켜 추방시키려 하더군요. 교황청에 불려가 교황께 설명을 드렸더니 오히려 칭찬해 주시더군요. 주한 교황청대사가 외무부에 항의해서 미적거리는 사이에 10.26사태가 터져 추방은 유야무야되고 말았지요.





▶이 =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라면.





▶두봉 = 한국인들 참으로 '정 (情)' 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특히 시골의 순박한 상부상조 정신은 유럽에선 보기 어려운 정경입니다.


원래 시골을 좋아하지만 그래서 나는 한국의 시골을 사랑해요.





▶이 = 앞으로는 어떻게 지내실 겁니까.





▶두봉 = 신자 2백명인 행주공소 공동체속에 계속 살면서 이미 시작한 사제.수사.수녀들의 평생교육에 헌신할 생각입니다.


내일은 1주일 동안의 음성 꽃동네 피정을 지도하러 갑니다.





▶이 = 주교님 사시는 게 참으로 단순 소박하십니다.


사제관도 건설현장 보호막으로나 쓰는 철판의 가건물이고 그 흔한 응접 소파 하나도 없으시니 주교의 위엄 같은 게 영 안보이네요. 빈손으로 와서 손수 가꾸신 무공해 채소 반찬의 점심까지 얻어먹고 좋은 말씀 들어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 출생


▶48~54년 오를레앙신학대.파리신학대.로마 그레고리안신학대 대학원 졸업. 그레고리안신학대 신학박사


▶53년 사제 서품


▶54년 한국 입국


▶55~67년 대전교구 대흥동본당 보좌신부, 대전교구청 비서신부


▶69년 주교 서품


▶69~90년 안동교구장


▶91~ 행주공소 사목,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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