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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영혼의 눈'

중앙일보 2004.07.27 18:35 종합 27면 지면보기
허형만(1945~ ) '영혼의 눈' 전문

이탈리아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 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냄새와 물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맹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을 모두 쏟아버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꼭 한 시간이었다"고. 그러고는 눈물을 비워낸 그 자리에 영혼을 담을 수 있게 된 것일까.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자꾸만 눈을 감게 되는 것도 그 영혼의 섬세한 빛을 따라가 보고 싶어서였을까.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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