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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연쇄 살인' 이것이 궁금하다

중앙일보 2004.07.19 15:10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34)씨의 추가 범죄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범행 이후 체포 때까지 범행을 둘러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부유층과 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만으로는 국내 범죄 역사상 최다 살인의 범행 동기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앞으로의 수사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왜 술술 털어 놓았나=IQ가 140을 넘는다는 유씨. 범행 수법도 극도로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그런 그가 범행 전모를 순순히 털어 놓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얼른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씨가 쉽게 자백을 한 이유는 뭘까. 다른 것을 노렸던 것일까, 아니면 불안정한 심리 상태였던 그가 좁혀오는 수사망에 일순간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유씨가 처음 체포된 것은 여성 출장마사지사의 실종과 관련해서였다. 그러나 유씨는 자신은 연관성이 없다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대신 유씨는 "노인들을 많이 죽였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실토했다고 한다. 완전범죄를 노릴만큼 주도면밀했던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한건 어떤 심산에서였을까.



경찰은 일단 유씨가 자백한 뒤 그를 데리고 서울 구기동.혜화동 사건에 대한 현장 검증에 나섰다. 그 때까지도 유씨는 "내가 범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TV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라고도 하는 등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수사 과정에서 유씨는 3번이나 간질 증세를 나타내면서 잠시 수갑이 풀린 틈을 타 달아났다.



다시 잡힌 유씨는 서울경찰청 김용화 수사부장이 8시간에 걸쳐 직접 심문하자 자포자기한 듯 모든 범행 사실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결국 유씨는 처음엔 고도의 심리전을 펴며 수사진을 헷갈리게 하거나 수사 방향을 틀려고 했으나, 처음에 노인 살해사건을 털어 놓은데다 CCTV 뒷모습 등 꼬투리를 잡히면서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백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동안 범행이 주춤했던 까닭은=유씨는 11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20명의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갔다. 지난해 9월 교도소에서 나온 뒤엔 두달간 부유층 노인들을 대상으로, 올 3월부터는 여성 마사지사를 대상으로 연쇄 범행을 했다.



여기서 남는 의문은 바로 지난 겨울부터 올 봄까지 범행이 없었다는 점이다. 유씨가 당시 범행을 멈췄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시기 이후 범행 대상이 노인에서 여성 마사지사로 넘어간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일단 경찰은 이 시기에 유씨가 전화방에서 일하던 김모씨를 사귀었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이 때 김씨를 만나며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아 참혹하기 그지 없는 범행을 잠시 중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러다 간질에 이혼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둘이 헤어진 뒤 유씨의 광기가 다시 살아났다는게 경찰의 분석이다.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극도에 달해 다시 범행 대상을 바꿔 연쇄 살인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 퇴소 이후 이어진 김씨의 잔혹한 행각으로 미뤄 범행이 뜸했던 시기에도 다른 사건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 등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씨는 18일 경찰 조사에서 "모두 26명을 죽였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한편 유씨는 여성 출장마사지사를 불러 살해하기 전 거의 성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에 대해 정액 검출로 인한 DNA 검사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있다.



◇왜 거액의 금품을 그대로 뒀나=경찰에 따르면 서울 신사동의 노교수 부부 살인사건 때 1만원권 7400만원과 투명한 보석함에 든 사파이어.다이아몬드 등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삼성동 노파 살인사건 때도 안방에서 현금 135만원과 100만원짜리 수표 3장이 손도 대지 않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원한범의 소행으로 가장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증거품에 손을 댔다가 꼬리를 밟힐 것을 우려해서였다고 돈을 그대로 놔뒀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씨는 거액을 모른체 할만큼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는 경찰관을 사칭해 원룸 월세 35만원을 뜯어 냈다지만 월세를 포함한 생활비며, 범행에 사용된 자금 등을 모두 사칭으로 얻어냈다고는 납득하기 어렵다. 보도방에서 알게 된 여성과 동거할 때는 그녀가 생활비를 댔다고 해도, 그 이후엔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아직 설명이 안되고 있다.



◇어떻게 암매장했나=유씨가 현장검증에서 매장지로 지목한 서울 봉원동 봉원사 일대에선 잘게 토막난 1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일대는 평소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어서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이들을 더욱 경악케 했다. 이처럼 행인들의 눈에 잘 띄는 공간에 어떻게 10구의 시신을 감쪽같이 묻었는지도 의문이다. 토막만 사체의 냄새를 막기 위해 매장 장소까지 봉투로 5~6겹 쌌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번번이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채 야산까지 오갔다는 것도 미스터리다. 그는 한 곳에 여러 사체를 함께 묻기도 했다. 암매장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파려면 시간도 적지않게 걸렸을 텐데 말이다.



◇'비오는 목요일 살인'과는 관련이 없나=지난 4 ̄5월에 고척동, 대림동, 신대방동 등 서울 서남부에서 부녀자 살해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비오는 목교일에 범행이 집중돼 이런 날엔 외출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희생자는 모두 여성들이었지만 경찰은 일단 날카로운 흉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둔기를 주로 사용한 유씨와는 관련이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씨가 인천 월미도 살인사건을 비롯해 부산에서도 2건의 범행을 더 저질렀다고 자백해 경찰은 추가 피해자와 함께 서울 서남부 사건과의 연관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공범은 없나=경찰은 유씨가 직접 칼을 포함해 스스로 만든 쇠망치와 장갑 등을 준비했고 공범이라고 할 만한 별다른 주변 인물이 없다는 점 때문에 단독 범행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연쇄 살인 후 아무리 봉투로 겹겹이 쌌다고 하더라도 무거운 사체를 들고 혼자서 공개적으로 도심과 야산 일대를 이동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경찰이 얼굴을 공개 안하는 이유는=경찰은 유씨를 체포한 뒤 언론에 공개하면서 모자를 푹 눌러쓰게 하고, 파란색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씌웠다. 사법적 판단이 끝날 때까지 인권보호를 위해서 피의자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감안하더라도 이번 범죄의 사안과 관련한 국민 감정으로 볼 때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리=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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