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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국무회의] 따져묻는 DJ 할말없는 장관

중앙일보 1998.04.30 00:00 종합 5면 지면보기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국무회의가 새 정부 들어 시끌벅적해지고, 의결이 보류되는 안건까지 심심찮게 생기고 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실제 대통령 자신도 적극 참여하기 때문이다.


28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있었던 일. 정해주 (鄭海주) 국무조정실장이 '규제개혁 종합지침 시달' 이란 안건을 설명했다.


현재 1만1천여건의 정부규제를 '5년내에 3분의2 수준으로 줄이겠다' 는 장기 목표를 보고하자 金대통령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3분의2로 줄인다는 근거가 뭡니까. " "규제개혁은 국운이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규제는 절반이나 그 이하로 줄여도 문제가 없어요. "


그런데 안건심의가 끝나자 鄭실장이 장기계획은 수정하더라도 당장 시달해야 할 지침만 의결해줄 것을 사회봉을 쥔 김종필 (金鍾泌) 총리서리에게 주문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단호한 어조로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만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잘랐다.


대통령이 장관들의 보고와 의결 주문을 일일이 체크하는 바람에 장관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장관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


소관 업무는 물론이고 다른 부처 업무에 내놓을 의견이나 아이디어도 한 두개쯤은 가지고 참석해야 한다. 대통령이 훈시나 하던 YS정부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이같이 낯선 풍경은 새 정부 들어 허다하다.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도 두차례 설전 (舌戰) 이 있었다. 일본군 군대위안부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문제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의 소속부서를 어디로 하느냐는 건. 이날 참석한 국무위원은 거의 모두 의견을 개진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두 사안은 그러나 모두 대통령의 원래 취지와는 다른 결론이 내려졌다.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한 박상천 (朴相千)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KOTRA를 산업자원부에 두어야했던 상황을 해명했는데, 다른 장관들에겐 "대통령과 장관이 설전을 벌이는 위태위태한 상황" 으로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국무위원들은 "YS정권에서 이렇게 토론이 이뤄졌다면 아마 IMF 위기는 맞지 않을 수도 있었을텐데…" 라며 아쉬워한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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