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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달라도]부산 보광정사 지홍 스님…개인택시로 포교·설법

중앙일보 1998.02.21 00:00 종합 11면 지면보기
성직자와 신앙인들은 종교는 서로 달라도 추구하는 목표는 다 같다.


사랑의 실천과 구원이 그것이다.


그런 목표를 향해 다른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이들의 아름다운 삶을 소개한다.





부산 개인택시 6바1960.어쩌다 이 택시를 잡게 되는 부산시민들은 “영업용 택시 아닙니까” 하며 화들짝 놀란다.


“어서 오십시오” 라는 인사말의 주인공이 빡빡 깎은 머리에 빳빳하게 풀을 먹인 승복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운전자가 스님이라고 하면 “스님 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나왔습니까” 라거나 “절에 그렇게도 돈이 없습니까” 라고 강한 호기심을 비친다.


'움직이는 법당' 인 이 개인택시의 주인은 부산시금정구금사동 보광정사의 주지인 지홍 (智弘.46) 스님. 운전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어린이 10명을 돌보는 스님은 '지나치게 세속에 빠지는 게 아니냐' 는 시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데 충실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말라 (一日不作 一日不食)' 는 중국 당나라 백장선사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노력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스님에게 개인택시는 수행도량이자 설법공간이다.


개인택시 운전은 5년째지만 스님이 도심의 생활공간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야겠다는 뜻을 품은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지난 69년 아폴로의 달 착륙은 당시 통도사 강원에서 공부를 하던 스님의 사고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불가에서의 의식 (儀式) 규범을 적은 '석문의범 (釋門儀範)' 에는 일광월광 (日光月光) , 즉 해와 달을 예배의 대상으로 적고 있는데 그 경배의 대상이 그만 인간의 영역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스님은 불교공부뿐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도 나름대로 알아야겠다고 깊이 깨닫고 사회공부에 나섰다.


중.고등과정을 검정고시로 뗀 뒤 동국대 한방과에 지원했으나 실패하고 대신 태고종의 동방대학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미래포교는 어떤 식이어야 할까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스님은 자신과 '자식' 의 인연을 맺은 어린이 10명의 장래를 확실히 보장하기 위해 복지시설의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96년에 10일 정도 병원 신세를 졌을 때 불현듯 혹시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더군요. 그래서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복지시설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번째 관문이 복지사 자격 취득. 복지시설을 운용하는 데 꼭 필요한 이 자격증을 위해 3년동안 틈틈이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으나 지난 10일 치른 시험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스님은 내년 시험에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오늘도 스님은 운전대를 잡고 봄 기운이 밀려오는 부산 시내를 누비며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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