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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남녀주연상 영광의 얼굴

중앙일보 2009.04.21 01:25 종합 37면 지면보기
남우주연상 김진태

‘58세의 환희’… 모두 기립 박수

연륜과 도전 정신 … 내리는 봄비가 그들을 축하했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김진태.” 발표와 동시에 시상식에 참석한 모든 배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30년 넘게 무대를 지킨 김진태(58)에 대한 예의였다. 무뚝뚝하고 정 많은 아버지 ‘테비에’를 연기했던 김진태가 젊고 날렵한 후배들 사이를 걸어나와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로 즐거운 한해였다. 참 열심히, 즐겁게 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는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의 하이라이트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 중 결혼식 피로연 장면을 연기했다. 쉰이 한참 넘은 배우의 몸짓에서 환희가 묻어나왔다.



하지만 김진태에게 무대가 항상 즐거웠던 곳은 아니다. 그는 한때 무대에서 도망쳤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후 활동하던 극단 ‘가교’에서였다. 출연료는 그저 술 한잔으로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는 물론 집안에서 ‘밥벌이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힌 20대의 김진태는 “시장에서 장사나 하겠다”며 극단에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여읜 후 마음의 짐이 컸던 때였다. 당시 액세서리 좌판을 차려놓고 장사를 시작한 그를 잡아온 이가 같은 극단의 배우 박인환(64)이다. “너처럼 연기폭 넓은 배우를 본 적이 없다. 천직으로 생각하고 다시하자”는 말에 김진태는 무대로 돌아왔다.



이처럼 그의 연기 인생은 ‘살아남는’ 일의 연속이었다. 극단 ‘가교’를 거쳐간 100명 넘는 배우 중 현재는 박인환·최주봉·윤문식 등 대여섯 명만이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다. 김진태도 그중 하나다. 1970년대에 이들에게는 교회, 교도소, 군 부대의 ‘강당’ 무대에서 닥치는 대로 공연을 한 뒤 여기에서 번 돈으로 대극장에 한번 서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전국에 안 가본 강당이 없다”는 것이 박인환의 말이다. 이렇게 해서 1년에 7편쯤 되는 외국의 고전 명작을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수제식·도제식 시스템이었다. 경제적 생존과 꿈 사이에서의 방황은 계속됐다.



이 시기는 배우 김진태가 완성된 때이기도 하다. 100kg이 넘는 그는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제비’로 불렸다. 날렵하고 섬세했다. 인상처럼 푸근한 호인에서, 야비한 역할까지 섭렵했다. 40년지기 최주봉(64)은 “단역, 조연, 주인공 등 안 한 것이 없다”며 “배우 중에서도 보배였다”고 김진태를 기억한다. 김진태의 말에 따르면 “흉내내는 수준”이었던 초창기 뮤지컬에서도 그는 중량감을 인정받았다.



이날 무대에서 김진태는 ‘아들뻘’ 배우들을 제치고 수상자가 됐다. “40대가 넘으면 맡을 역할도 없다”는 뮤지컬 배우들의 자괴감을 날린 수상이었다. 인기와 화려함 대신 깊이와 연륜이 빛을 발한 이날, 후배 배우들은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여우주연상 최성희

가수 이미지 벗고 대형 배우 변신





“어릴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습니다. 가수로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최성희(29)는 아득한 ‘바다’를 마침내 건넜다.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그의 앞에서 더이상 SES의 가수 ‘바다’를 불러내기란 쉽지 않다. 수상자로 호명되자 그는 애써 울음을 참았다. 하지만 시상자로 나온 선배 배우 윤석화 앞에선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윤석화의 말처럼 어느덧 “너무나도 훌륭한 배우로 우리 곁에 서게 된” 배우 최성희. 그는 가수 출신이란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가수 이미지를 허물어야 연기도 빛난다”는 신념으로 배우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왔다. 그런 그가 뮤지컬 퀸의 자리에 오르면서 수년간 자신에게 던져지던 의혹의 눈초리를 말끔히 걷어냈다.



사실 최성희는 지난해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옥주현과 더불어 연예인의 뮤지컬 진출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다. 선명한 비주얼과 폭발력 있는 가창력이야 가수 시절 충분히 검증받았지만, 배우 최성희의 연기력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았다. 더구나 지난해 옥주현과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도 퀸의 자리를 빼앗긴 그에게 지난 1년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해였음이 분명하다.



최성희는 2003년 뮤지컬 ‘페퍼민트’로 데뷔한 이후 줄곧 “가수로서 가창력은 뛰어나지만 배우로서 깊이 있는 연기를 하기엔 모자란다”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인터뷰를 통해 “원래 연기를 공부했고 배우가 꿈이었다”고 강변해봐야 소용 없었다. 댄스 가수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이다. 그 역시 “가수 이미지 때문에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끄집어내기가 힘든 시간이 많았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깨질 것같지 않던 편견도 그의 노력과 의지 앞에서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텔미 온 선데이’,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묵직한 작품들을 거뜬히 해내면서 ‘가수 바다’ 대신 ‘배우 최성희’를 이야기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출연한 ‘미녀는 괴로워’는 뮤지컬 무대에 배우 최성희의 이름 석자를 또렷이 아로새겼다. 이 작품에서 그는 ‘뚱녀’와 ‘미녀’를 오가는 변신 연기를 넉넉히 소화해냈다.



대중 스타 출신인 그는 고집스러운 도전 정신으로 연기를 갈고 닦아 뮤지컬 무대에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최성희는 가수 이미지를 덧칠하는 이들에게 “노래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진실한 연기도 함께 즐겨달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그는 진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앨범 발표도 미루고 방송 출연도 자제하며 연기에만 매달려 왔다. 이번 수상은 한 여배우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뮤지컬계에 또 다른 대형 여자배우가 탄생했다.



특별취재팀

문화스포츠부문=최민우·강혜란·이영희·정강현·김호정 기자

영상부문=이영목·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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