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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잃어버린 노인들, 다섯살 犬公에게 마음을 열다

중앙선데이 2009.04.20 19:05
경기도 성남시 보바스기념병원에 장기요양 중인 심재천(94) 할아버지. 심 할아버지가 무뚝뚝한 얼굴에 봄볕같이 환한 미소를 보이는 날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나무'와 '공주'를 만날 때다. 나무는 닥스훈트, 공주는 포메라니안계 견공들이다. 뇌성마비 때문에 혼자 걷지 못하는 준석(5)이 역시 일주일에 두 번, 승마장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준석이를 태우고 30분간 타박타박 마장을 돌아주는 둘도 없는 친구는 12살된 독일산 포니종 마공 '노랑이'. 중앙SUNDAY에서 치료도우미견과 재활승마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치매·장애인 치료 돕는 ‘犬馬之勞’의 세계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의 보바스기념병원에서 치매를 앓는 심재천(94) 할아버지가 치료도우미견 ‘나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아래는 경기도 군포시 삼성승마단 안에 지난달 문을 연 재활승마 전용 마장에서 전문 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운동을 하고 있는 양준석(5·뇌병변장애 1급)군. 최정동·김진경 기자
견마지로(犬馬之勞). 원래 ‘개나 말 정도의 하찮은 힘’이라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추어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여기 실제로 치매 어르신과 신체나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온 힘을 다해 기쁨을 주는 개와 말들이 있다. 20일은 장애인의 날. 길 안내 도우미 등의 역할을 넘어서서 장애인의 치료에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견공과 마공들을 만나 봤다.



#1. 다섯 살 동갑내기 ‘나무’와 ‘공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보바스기념병원에서 치매를 앓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재롱둥이들이다. 2007년 6월부터 매주 두 번씩 30분간 어르신들과 만나 여러 가지 게임도 하고, 미술활동 모델도 돼 드린다. 심재천(94) 할아버지나 최규덕(80) 할머니처럼 벌써 1년 반이 넘도록 나무와 공주를 보러 꾸준히 오는 ‘열성 팬’도 있다. 평소 무뚝뚝한 얼굴에 감정 표현도 거의 없다는 심 할아버지는 이들만 보면 180도 변한다. 안고 어르고 얼굴에 뽀뽀까지 한다. 반대로 최 할머니는 평소 주변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고 흙을 주워 먹는 등 거친 행동이 문제지만 이들 앞에서만은 한없이 얌전해져(?) 강사 말도 잘 듣는다. 나무는 닥스훈트, 공주는 유기견 출신의 포메라니안계 견공이다. 잠깐, 어르신들에겐 비밀 하나. 나무는 사실 한 살배기지만, 이전에 있던 닥스훈트 종과 생김새가 똑같아 어르신들에겐 다섯 살인 척하고 지낸다.



#2. 오늘은 노랑이가 준석(5·서울 용산구 효창동·뇌병변장애 1급)이의 파트너가 됐다. 독일산 포니종 마공 노랑이. 삼성승마단의 재활승마 프로그램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한 지도 어느새 4년째. 혼자 힘으로는 걷지 못하는 준석이를 등에 태우고 ‘질주 본능’을 억누른 채 뚜벅뚜벅 정확한 보폭으로 넓은 모래밭을 몇 바퀴씩 돈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두 팔을 번쩍 들거나 몸을 뻗어 장난감을 고리에 끼우느라 준석이가 들썩일 때는 은근히 스트레스도 받는다. 안전을 위해 자원봉사자가 세 명이나 옆에 딱 붙어 다니는 것 역시 성가실 만하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법. 일주일 내내 여기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준석이가 각종 치료활동을 받으며 생긴 스트레스를 다 풀고 좋아하는 모습에 노랑이도 힘이 나는 모양이다. 30분간 놀고 헤어질 때면 준석이처럼 아쉬운 듯 보인다.  애완동물이나 말 등 사람과 친근한 동물을 이용하는 동물매개치료(AAT·Animal-Assisted Therapy)가 최근 심신치료와 재활을 위한 보완요법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AAT는 영국이나 미국·일본 등에선 이미 대중화된 요법이다. 특히 치매나 정신분열증·우울증·강박장애·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ADHD)·자폐증 등 대인관계나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경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병원과 복지관 등에서도 노인 및 장애아동 대상의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장애인 도우미견 훈련센터나 대학의 수의학과·애완동물학과·사회복지학과 등을 중심으로 관련 강좌나 연구센터도 개설되고 있다.



재활승마는 자폐 아동도 대상



개와 말을 이용한 동물매개 활동이 체계적인 형태로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삼성그룹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서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견 훈련·보급 사업에서 치료도우미견 프로그램이 갈라져 나왔고, 승마단에서 2001년 재활승마를 소개했다.



 치료도우미견은 장애아동 등을 대상으로 하지만 시·청각장애인 보조견에 비하면 개의 선정 기준이나 훈련 과정 등이 훨씬 덜 까다로운 편이다. 시추나 치와와 같은 작은 품종의 애완견들도 적절한 선별과 훈련 과정을 거치면 치료도우미견으로 자원봉사에 활용할 수 있다. 현재 보건복지가족부가 인증한 장애인 보조견 훈련기관(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삼성전자 청각도우미견센터,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부설 이삭도우미개학교) 등에서 비교적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치료도우미견을 보급하고 있다. 특수도우미견이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죽는다는 건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재활승마는 2005년 한국마사회가 동참하면서 저변이 확대됐다. 지난 달 14일엔 경기도 군포시 삼성승마단 내에 국내 최초로 재활승마 전용마장도 문을 열었다. 삼성이나 마사회 모두 재활승마의 역사가 오래된 영국이나 미국에서 공인된 교육과 자격증을 받은 재활승마 전문 치료사와 교관을 두고 있다. 두 기관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무료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삼성은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추천받은 뇌성마비 아동에게 도움을 주고, 마사회는 매년 두 차례 홈페이지를 통해 뇌성마비나 자폐증 아동의 신청을 받는다. 올 하반기엔 8월 초 27명가량을 모집할 계획이다. 삼성은 전용 마장이 생기면서 올해에만 총 140명이 참가 기회를 갖게 됐다. 두 곳 모두 아동의 장애 유형과 상태에 따라 말에 너무 부담되지 않도록 몸무게를 제한하고 있다.



안전성 최우선·건강하고 성격 좋아야



주요 대상이 장애아동이나 치매 노인 등인 만큼 동물 매개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성이다. 치료견이나 재활승마용 말을 선정할 때 ‘건강하고 성격 좋은 놈’인지를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그 때문이다. 아동이나 노인 모두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동물의 건강과 위생 상태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또 동물의 타고난 성격도 중요하지만 큰 소리나 돌발행동에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이거나 낯선 사람을 대하더라도 경계하지 않는 훈련 등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치료도우미견은 다른 개나 고양이에 대해서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 안된다. 또 대상 아동이나 노인에게 ‘소통의 기쁨’을 안겨줄 수 있도록 ‘앉아’ ‘일어서’ 등 간단한 명령에 따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의 박종관 사무국장은 “정서 안정과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만 듣고 자폐증을 가진 자녀에게 덜컥 애완견을 사 줬다가 오히려 아이 상태가 나빠졌다며 상담해 온 경우도 있다”고 주의를 당부한다. 그는 “아이는 애완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개 역시 그런 아이를 피하거나 거친 반응을 보이는 악순환이 일어났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활승마는 아이들보다 몸집이 큰 말을 이용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더욱 요구된다. 반드시 말의 습성을 잘 아는 경험자(리더)가 고삐를 잡고 두 명의 사이드워커가 양쪽에서 아이를 지지해 주거나 지켜봐야 한다. 또 목 부분까지의 키(체고)가 1m50㎝를 넘지 않는 작은 말, 사람으로 따지면 안정감과 체력을 함께 갖춘 30대 정도인 10~15세의 말이 선호된다. 제주 조랑말은 체격 조건은 딱 맞지만 보폭이 짧고 빠르다는 게 단점이다. 특히 균형을 잘 잡지 못하는 뇌병변 장애아동이 실제로 걷는 듯한 운동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사람과 비슷한 보폭으로 일정하게 걷는 말이 좋기 때문이다.



장애아동의 경우도 전문의를 통해 경추 등에 문제가 없는지, 간질과 같이 돌발적인 행동을 일으킬 염려는 없는지 등을 반드시 확인한 뒤 참가해야 한다. 마사회의 재활승마 치료사 신정순씨는 “최근 유료로 재활승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설 승마장이 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이라며 “무엇보다 사고 시 보험 등의 대책이 마련돼 있는 정식 인가 승마장인지, 전문적으로 재활승마 훈련을 받은 말을 이용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견공과 마공의 더 큰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문제는 사람이다. 특히 재활승마는 아동 한 명 당 최소한 세명의 자원 봉사자가 필요한데, 평일에 도와 줄 인력이 부족하다. 치료도우미견 자원봉사는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www.helpdog.org)나 삼성의 마이독 홈페이지(mydog.samsung.com), 재활승마 자원봉사는 삼성전자승마단(horse.samsung.com)이나 마사회 승마훈련원(02-509-1695)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김정수 ·이해준 기자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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