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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박정희시대]36.젊은 날의 로맨스

중앙일보 1997.11.24 00:00 종합 8면 지면보기
박정희 (朴正熙) 전대통령은 육영수 (陸英修) 여사와 재혼할 때까지 남몰래 간직한 로맨스가 몇가지 있었다.


오랜 객지 생활및 첫부인과의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생활 때문에 陸여사를 만나 정착할 때까지 여성을 향한 방황은 계속됐다.


그는 술이 취하거나 옛 친구를 만나 기분이 좋을 때 가끔 추억담을 풀어놓곤 했다.


66년 1월27일 오전 경북 예천역 광장. 혹한에도 불구하고 시골역 광장은 장날처럼 북적거렸다.


일제가 소위 '대동아전쟁' 을 치르는 과정에서 철로를 걷어간 경북선 (예천~점촌) 의 재개통식이 열리고 있었다.


정각 10시가 되자 역광장에 마련된 연단 위로 朴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짧은 머리에 검은색 겨울코트를 걸친 朴대통령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여분간 기념사를 했다.


朴대통령이 연단 아래로 내려서자 군중 속에서 50대 초반 한복차림의 여인이 다가섰다.


이 여인은 朴대통령의 손목을 잡고는 "정희야…" 하고 부르고는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누님, 진정하세요. " 朴대통령은 이 여인을 다독거리며 위로했다.


두 사람에게는 예천역이 '이별의 플랫폼, 만남의 플랫폼' 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朴대통령의 친누님으로 여긴 이 여인은 주현숙 (朱賢淑.84.재미) 씨. 朴대통령보다 네살 연상이다.


최초로 공개되는 두 사람의 얘기는 朴대통령이 대구사범을 다니던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2년 봄 구미보통학교를 졸업 (11회) 한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대구사범은 경성사범.평양사범과 더불어 지방의 수재들이나 들어가던 명문. 지방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다.


통학열차에는 학생들의 풋사랑 얘기가 깃들여 있다.


박정희가 주현숙씨를 만난 것도 통학열차에서다.


평소 동기생 사이에서도 붙임성이 없어 외톨이였던 박정희. 그는 열차에서 만난 '누나' (당시 대구 간호학교 재학중)에게 특별한 호감을 가졌다.


두 사람은 당시 학생사회에서 유행하던 S - B (Sister - Brother.누나 - 동생) 관계를 맺었다.


S - B는 요즘의 애인과는 다른 의미다.


한 전직 언론인의 해묵은 취재수첩에서 두 사람의 로맨스를 되살려보자. 지난 10월 60대 초반의 중년신사가 취재팀을 찾아왔다.


그는 60년대 대구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한 이종립 (李鍾立.62.세진중기 이사) 씨. 李씨는 경북선 개통식 취재현장에서 우연히 두 사람의 사연을 알게 됐다.


"제가 선산 출신이어서 평소 朴대통령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친누님이 아니었습니다.


행사후 예천경찰서 서장실로 쫓아가 그 여인의 신상명세를 요구했지요. 서장은 '이 내용이 보도되면 내 모가지가 잘린다' 면서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각하의 명예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 며 설득했더니 정보계장을 불러 알려주더군요. " 계속되는 李씨의 증언. "朴대통령과 朱여사는 누나 - 동생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朴대통령이 문경 교사 시절 때도 '집보다 여기가 가깝다' 며 토요일마다 예천의 朱여사댁 (예천) 으로 놀러오곤 했었대요. 그때 두 사람 모두 결혼한 상태였는데 朴대통령은 '마누라가 꼬집어대서 못살겠다' 는 얘기를 자주 했답니다.


언젠가 (1939년말) 朴대통령이 놀러와서는 '군인이 돼 높은 사람이 돼서 오겠다' 며 일본군가.혁명가를 부르더랍니다.


그리고 며칠후 다시 와 '누님, 내일이면 헤이다이상 (군인) 이 되러 갑니다.


술 좀 사주십시오' 해서 술을 사주었고 朴대통령은 다음날 예천역에서 만주로 간다며 떠났대요. 그후 두 사람은 朴대통령이 2군 부사령관으로 있을 때 朱여사가 면회를 가서 22년만에 재회했다고 합니다.


떠날 때 朴대통령이 '내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갑니다' 하길래 뭔지도 모르고 그냥 '잘 갔다 와라' 하고 헤어졌는데 그로부터 2, 3일후 5.16 소식을 들었답니다.


" 박정희가 첫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배경에는 결혼 전부터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누님' 이 있었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맺어준 '시골색시' 보다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던 누님에게 마음이 쏠렸을 수 있다.


젊은 시절 박정희는 애정에 목말라 있었다.


그런 그에게 3년간 교사로 있었던 문경은 제2의 고향이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시절 휴가도 이곳에서 보내고 돌아갔다.


당시 문경에는 그가 마음을 쏟고 있던 또 한명의 여성이 있었다.


교사 시절 박정희는 자신의 결혼 사실을 감추고 한동안 '총각선생님' 행세를 했다.


그래서 더러 중매가 들어왔지만 기혼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朴선생님은 제자 정순옥 (鄭順玉.72.부임당시 5학년) 을 제자 이상으로 좋아했습니다.


朴선생님은 정식으로 청혼까지 했는데 순옥씨의 부친이 '저 친구는 잘되면 큰인물, 못되면 역적이 될 사람' 이라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5.16 후에도 朴선생님은 다른 제자를 통해 순옥이의 행방을 수소문했다고 들었습니다.


" (제자 Q씨의 증언) 당사자 정순옥씨의 얘기. "저보다 언니와 혼담이 오갔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교사 출신이었던 부친은 朴선생님에게 '장인이라고 불러라' 고 까지 말했는데 나중에 朴선생님의 형님이 오셔서 결혼 사실을 얘기하는 바람에 유야무야됐습니다.


朴선생님이 저에게 잘 해주신 것은 분명합니다.


만주에서 오시면서 분홍 비단손수건을 사다 주신 적도 있고 언젠가 내가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더니 '나는 순옥이라 부르겠다' 며 본래 이름으로 답장을 보냈더군요. 또 어느해 겨울 아버지 직장이 있던 울산에 다녀왔더니 마침 만주에서 휴가를 나오셨던 朴선생님이 '순옥이가 없어서 서운하다' 는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셨대요. " 당시 이 학교에 재학중이던 鄭씨의 사촌동생 정복영 (鄭復泳.66) 씨는 "누구에겐가 내가 朴선생님의 '연애편지' 를 전달했던 적이 있어요. 내가 손을 못대게 책보 뒤에 편지를 꽂아주면서 아무개한테 갖다주라고 그랬습니다.


" 해방후 만주에서 돌아온 박정희는 다시 군인의 길로 나섰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이데올로기 혼돈 속에서 좌익에 연루돼 군에서 파면 (49년) 됐다.


48년 대구 10.1폭동사건 때 형 (상희) 이 피살됐고 그의 파면 석달 뒤에는 모친이 별세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동거하던 여성마저 잃게 됐다.


당시 박정희는 李모 (작고) 라는 이화여대생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47년 12월 춘천 8연대에서 경리장교로 있던 박경원 (朴璟遠.74.예비역 육군 중장.전 내무장관) 씨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했다가 만난 사이였다.


상대편에 반한 쪽도, 적극성을 보인 쪽도 박정희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李여인은 박정희의 서울관사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육본 전투정보과에서 박정희와 같이 근무했던 한무협 (韓武協.74.예비역 육군 소장) 씨의 증언. "아주머니는 성격이 사근사근한데다 멋쟁이였습니다.


朴대통령이 푹 빠져 지냈죠. 그런데 아주머니 성격이 불같아서 화내면 朴대통령도 쩔쩔 맸습니다.


朴대통령이 재판받고 나온 뒤 어느 여름날일 겁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아주머니가 트럭을 불러다 놓고 짐을 싸더군요. 우리 부부가 가서 이러시면 안된다며 트럭을 막고 말렸으나 막무가내였습니다.


그후 다시 못만났습니다.


" 李여인은 임신도 몇차례 했는데 입덧과 히스테리가 심해 번번이 유산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가출한 李여인을 몇번이나 찾아 데려올 정도로 정을 쏟았다.


"50년 9월 서울수복 직전 부산 범일동에서 朴대통령과 단둘이 술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한 여자가 들어오다가 갑자기 후닥닥 내빼더군요. 그러자 朴대통령이 '저×이 결국 술집으로 돌았네. 애는 어쨌는지…' 하시더니 '에이, 그냥 가자' 고 해서 술도 못마시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가출한 둘째 부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Z씨 증언) 이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


그러나 '그를 버린 여인' 에 대한 박정희의 미련은 한동안 남아 있었다.


5.16후 박정희는 최고회의 취재기자로 활동하던 李여인의 동생을 불러 누나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李씨가 기자생활을 그만두자 박정희는 그의 일자리도 봐주었다.


사랑을 찾아 헤맨 박정희의 긴 방황은 6.25를 계기로 막을 내렸다.


그는 전화 (戰火)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육영수여사와의 만남이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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