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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그들은 어떻게 ‘이야기꾼’이 되었나

중앙일보 2009.04.04 01:26 종합 20면 지면보기
 “트웨인은 소설, 철학, 예언, 기행문 등에 두루 손을 댔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의 본바탕은 이야기꾼이다(…)이야기꾼은 공인된 거짓말쟁이다. 뻔뻔스럽고, 도도하고, 발칙하고, 믿지 못할 이 지독한 남자…”(‘마크 트웨인: 재담의 왕’ 중에서)



‘꾼’은 ‘꾼’을 알아보는 법이다. 역사 속의 ‘이야기꾼’들을 들춰내 이 책을 쓴 폴 존슨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피카소를 가리켜 “사악함을 벌충할 다른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빅토르 위고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정떨어지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서슴치 않는다. 물론 두 사람이 위대한 창조자들이란 점을 인정하면서 한 얘기다.



폴 존슨이 쓰지 않았다면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14세기의 초서에서 20세기 피카소와 디즈니까지 예술가 17인의 삶을 소개한 이 책은 그저 그런 미니 전기의 모음쯤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으로 읽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박학다식한 그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자신만의 통찰력이 반짝이는 분석을 곁들였다



올해로 81세인 폴 존슨은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다.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 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쌓았으며, 역사·인문·종교·예술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썼다. 국내에도 『모던타임스』『지식인의 두 얼굴』등을 통해 그의 개성적 글맛을 본 독자들이 적잖다.



이 책에서 그는 두드러진 독창성을 보여준 인물들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그는 최고의 예술가들이 흔히 ‘많이 배운’(체계적인 교육을 가리킨다)이들이 아니었으며, 창조의 영감은 무엇보다도 ‘보통 사람들의 삶’에 밀착한 데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그는 영어로 글을 쓴 사람 중에 가장 창조적인 인물로 초서(1342?~1400)를 꼽는데, 그의 창조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소재는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초서는 하층 계급의 생생한 삶에 가까이 머물렀고, “명쾌하고 활기차며, 쉬운”이야기로 글을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흥행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셰익스피어(1564~1616)에게서는 “추상적인 것을 혐오하고 이론을 싫어하는” 실용주의적 면모에서 창조성의 답을 찾는다. 학구적 분위기나 ‘메시지’전달에는 관심이 없고, 점잔빼는 태도를 싫어한 셰익스피어는 철저하게 ‘보통의 인간 군상’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악인 캐릭터에게까지도 변론 기회를 주기 위해 그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간 ‘중용’과 ‘관용’의 미덕도 짚어낸다.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재능은 “두 자매가 한 방을 쓰며 항상 서로 의논하고 도와주고 농담을 주고받던 시간”을 통해 자라났다면, 마크 트웨인(1835~1910)은 “모닥불 주위에서, 오두막집에서, 상점과 술집에서 이야기 전달의 달인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이쯤 하면 그의 ‘관점’은 분명해 보인다. 예술은 돈 있고, 폼 잡는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자라기도 하지만, 창조적 재능과 열망은 그 누구에게서도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존슨은 “우리 역시 선천적으로 창조자”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창조에서 소질만큼 거대한 자원이 되는 것이 용기”라며 “어떤 경우든 창조는 경이로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창조자들 폴 존슨 지음, 이창신 옮김 황금가지, 500쪽, 1만9000원



원제 『Creators: From Chaucer and Durer to Picasso and Disney』.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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