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량있는 미술가 발굴해 세계적 대가 키우고 싶어”

중앙선데이 2009.03.01 00:24 103호 11면 지면보기
배순훈(66·사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다시 공직을 맡았다. 이번에는 17대 국립현대미술관장이란 자리다. 미국 MIT대 기계공학 박사라는 전공으로 보나, 대우전자 사장 등을 역임한 경력으로 보나 매우 뜻밖이다. 전직 장관급 인사가 1급 차관보 대우를 받는 자리에 갔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2월 25일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실에서 만난 그는 “마지막으로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길”이라며 “직급이 높은지, 낮은지 그딴 건 관심 없고, 내 할 일만 잘하겠다”고 말했다. 임명장을 받은 지 사흘째여서 그런지 그는 아직 사무실 분위기에 낯설어했다.

배순훈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장고 끝에 그를 국립미술관장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선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다. 지난해 3월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유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배 관장은 김대중 정부의 첫 정통부 장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선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장(장관급)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중반 대우전자가 내건 ‘탱크주의’ 광고에 함께 출연했던 유 장관과 친분으로 기용된 ‘코드 인사’라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배 관장은 “나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고, 정치색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정당이나 정치 활동은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다. 일을 하는 데는 김대중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술관에 ‘탱크주의 마인드’ 접목
-대우전자 사장 시절 ‘탱크주의’를 내걸어 유명세를 탔다. 미술관 운영에도 탱크주의가 통할까.
“탱크주의 광고를 할 때는 소비자 조사를 많이 했다. 경쟁업체들은 첨단기술에 중점을 뒀지만, 내가 보는 소비자는 기능이 간단하면서 고장 없이 오래가는 상품을 원했다. 광고를 보신 분들이 상당히 호감이 갔다고 말해줘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미술에서도 소비자인 국민에게 어떻게 가깝게 다가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미술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 봤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 예전에 젊은 직원을 유능한 기술자·경영자로 키웠듯이 젊고 역량 있는 미술가를 많이 발굴해 세계적 대가로 키우고 싶다.”

-미술관 운영에 경영 마인드를 접목하겠다는 뜻인가.
“바로 그런 생각으로 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차 일본을 능가하는 선진국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예술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하지 마라. 78년 거제도 옥포에 있는 대우조선에 갔을 때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서 무조건 세계 제일이 돼야 한다고 했다. 세계 제일이 아니면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상징적 의미로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 현장 부근에서 골재를 가져다 조선소를 만들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30년을 열심히 노력하니까 세계적 조선소가 됐다.”

-조선소와 미술관은 다르지 않나.
“나는 틀림없이 우리가 예술 강국이 된다고 본다. 그렇게 하려면 20년이 걸릴 거다. 내가 할 일은 전도사 역할이다. 국민에게 우리가 예술 강국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 미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현대 미술은 회화나 조각에 비디오 동영상과 음악·춤 등을 융합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우리는 정보기술(IT)이 세계적 강국이니까 IT와 접목하고 젊은 작가의 창의적 발상이 합쳐지면 피카소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나올 수 있다.”

-미술에 비전문가라서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미술을 하는 가족(부인 신수희씨는 서양화가, 차남 정완씨는 설치미술가)이 있고, 개인적으로도 미술을 아주 좋아한다. 세계적 화가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도 많았다. 미술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점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겠다. 그렇게 3년 임기를 마치면 다음에는 틀림없이 미술계 인사가 이 자리로 올 것이다.”

장관에서 1급 차관보 대우로
-장관까지 한 분이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기엔 격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이 자리는 계약직 고위 공무원이다. 1급이든, 2급이든 상관없이 고유한 업무를 잘해 나가면 된다. 봉급을 얼마 받는지도 모른다. 장관 주재로 회의할 때 좌석을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도 나오던데,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뭔가 사회에 봉사하고 싶은 생각에 직급을 따지지 않고 왔다. KAIST에선 정년이 없는 특훈교수 지위도 받았지만 후배에게 물려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고위직에 계셨던 분이 이명박 정부에서 일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유인촌 장관의 ‘코드 인사’라는 비판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김우식 과학부총리와 잘 알았고, 지금 정부의 장관 중에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누구와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테크노크라트일 뿐이다. 그거면 됐지 무슨 문제가 있겠나. 미술계에도 민중미술 쪽에 가까운 분이 많지만, 어느 쪽에 편향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98년 말 정통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KAIST에서 10년 동안 교수로 있었다. 무엇을 가르쳤나.
“KAIST는 젊은 시절 첫 직장이어서 애정이 많다. 장관을 그만두고 KAIST에서 경영학을 가르쳤다. 학위는 공학박사지만 현장에서 기업 경영자로서 일한 경험이 많아서다. 현대 경영학에선 수학이 매우 중요한데, 나는 수학에 자신 있기 때문에 경영학 전공 교수들 못지않았다. 특히 파생상품인 ‘옵션 가격결정 모델’ 같은 것을 이해하는 데는 남보다 빨랐다. 과목은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 관리)와 기업 지배구조였다. 학회 활동 같은 것은 하지 않아 학계에 영향력은 없지만 학생들은 아주 좋아했다. 미술관장 임명이 늦어지다 보니 이번 학기에도 강의를 맡게 됐다.”

일하는데 DJ·MB 정부 따로 있나
-최근 『우리에겐 위기 극복의 유전자가 있습니다』란 책을 펴냈다. 여기서 유전자란 무엇인가.
“6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나라에 위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걸 모두 극복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기적이고, 그 원동력은 유전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유전자는 한(恨)과 신명이다. 이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폭발하면 싸움이 되지만 한을 풀고 신명을 살리면 기적을 이룰 수 있다.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해 봐라. 붉은 악마의 응원에 축구를 모르던 시골 할아버지·할머니까지 가세하니까 16강을 넘어 4강까지 가지 않았나.”

-예전에는 우리나라만의 위기였다면 현재 경제위기는 세계적인 문제여서 깊고 오래갈 것 같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유전자로 언젠가 극복할 거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를 넘긴 다음 우리의 경쟁력이 강화되느냐, 약화되느냐다. 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위기 극복에만 정신이 팔려 미래의 경쟁력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조기에 졸업했다고 박수는 쳤지만 잠재 성장률은 반 토막 났다. 과거에는 한 해 10%씩 성장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성장률이 4~5%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위기 이후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제언이 있다면.
“일자리 나누기는 굉장히 좋은 일이다. 사실 일자리를 나누면 같은 일을 여러 사람이 하기 때문에 생산성은 떨어진다. 그런데 어려운 시기에는 생산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협동해 같이 살아야 한다. 과거에 8시간 일하던 것을 6시간에 끝낸다면 나머지 2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미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부도 하고, 동료끼리 회식도 하며 마음과 마음을 맞춰야 한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