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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서평] '도덕지능(MQ)' 로버트 콜스 지음

중앙일보 1997.08.31 00:00 종합 17면 지면보기
얼마전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 내가 쓴 글들을 잘 간직해 두었다가 다시 주셨는데 (대단하신 분이다!


) 읽다 보니 낯이 뜨거운 부분이 많았다.


과거의 내가 유치해서가 아니라 그때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즉 성숙하지 못한 지금의 나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지식은 탐욕스럽게 먹어왔는지 모르지만 정서적.도덕적 성숙은 도대체 지지부진하지 않은가.


미국 정신의학자 로버트 콜스의 '도덕지능 (MQ)' (원제 The Moral Intelligence of Children) 은 이와 비슷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해냄刊) . 솔직히, 호들갑스럽게 아동의 정서발달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감성지수 (EQ)에 대한 법석 때문에 이 책도 그런 아류가 아닌가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현장에서 문제아들을 만나 같이 씨름하며 생긴 열정으로 생동감을 준다.


물론 저자가 보인 관심 이전에는 상당한 양의 도덕에 관한 심리적 연구가 축적돼 있다.


뒤르켐의 영향을 받은 피아제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유아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의 규칙을 이해하는 성숙한 성인으로 발달해가는지에 대한 구조주의적 도덕인지론을 정리한 이래, 리즈만.에릭슨.프롬.콜버그등도 도덕적 성숙에 대해 깊이 천착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콜버그는 도덕관념 형성에는 '다른 사람 입장에 서는 역할맡기' (Roletaking)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핵가족시대에 오로지 주입식 교육만을 기계처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겐 특히 부족한 체험일 것 같다.


도덕의 가장 중요한 10가지 과제 (법과 규칙, 양심, 정서적 역할, 권위, 시민권등) 를 조목조목 제시한 콜버그 박사가 '도덕' 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면 콜스는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도덕발달' 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나와 남을 모두 자유로우면서도 외롭지 않게 하는 도덕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 에 대한 방법론으로 개인면담보다 강의실에서의 집단토론 방식에 치중하는 것이 좀 의외였다.


자유로운 토론과 자기발표가 생활화된 구미 (歐美) 의 열린 교육여건과는 달리 청소년들에겐 입을 뗄 기회조차 주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 콜스식 접근이 과연 먹혀들어갈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목표로 하는 서구교육에 비해, 주어진 체제에 얼마나 잘 순응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요령을 키워주는 한국의 교육은 정말 많이 다르다.


게다가 도덕지수라는 제목과는 달리 자신이 과연 얼마나 도덕적으로 성숙했는지 비춰볼 특별한 도구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점수화하고 비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독자들에게는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콜버그나 피아제처럼 도덕적 발달과제를 연령별로 명료하게 체계화하지 못했다는 결정적 한계가 눈에 띄고, 또 어떻게 아이들의 도덕심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적 체험만 열거해 놓고 있어서 다른 비전문가들의 가벼운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물질과 성공제일주의의 천박한 미국사회에서 도덕성 교육의 당위성을 언급했다는 것은 매우 참신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든든한 이론적 틀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인은 상상 못하는 도덕교육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이 땅에서 도덕에 대한 보다 통합적인 연구를 제대로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나미 (정신과의사.이나미신경정신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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