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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강씨 모자 벗기자' 여론 일어

중앙일보 2009.01.30 13:33
1994년 9월22일 중앙일보에 실린 지존파 일당의 현장 검증 장면(上), 강호순씨 (下)
7명의 부녀자를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자백한 강호순(38)씨의 얼굴이 경찰에 의해 마스크와 모자등으로 '보호' 받으면서 흉악범의 얼굴 공개 이슈가 다시 불붙고 있다.



강씨가 현장 검증에 나섰던 지난 27일, 피해자 가족들은 “강씨의 얼굴을 봐야겠다”며 울부짖었다. 주민들도 “왜 흉악범의 얼굴을 가리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4월 일산 초등학생 납치사건의 피의자 이모(41)씨가 체포돼 경찰서로 압송됐을 때도 그의 얼굴은 경찰이 씌운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범 정모(39)씨, 남대문 방화범 채모(70)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 등장 왜=5년 전인 2004년 전까지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실명은 물론 얼굴 사진까지 언론에 공개됐었다. 국민 대부분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말이다. 1994년 9월, 부유층을 납치·살해하고 시체를 소각 처리한 ‘지존파 사건’ 당시 현장 검증에 나왔던 지존파 일당들은 모두 얼굴이 공개됐다. 96년 10월 ‘지존파’를 모방한 ‘막가파’ 5명이 구속됐을 때 역시 이들의 신상은 보도됐다.



2000년 9명을 살해한 강도 ‘정두영 사건’, 01년 4살 여아를 토막 살해한 ‘최인구 사건’ 때도 이들의 얼굴은 여과없이 공개됐다. 그러다 2004년부터 피의자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밀양여중생 성폭행사건’을 두고 ‘경찰의 인권 침해’ 여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경찰은 경찰청 훈령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초상권 침해금지’ 규정이 포함돼 있었다. 이후 연쇄살해범 ‘유영철’(04년)과 ‘정남규’(06년)등은 마스크와 모자를 쓴 ‘얼굴 모를’ 피의자로만 시민들 앞에 등장했다.



◇“마스크 뒤에 숨겨야 하나”=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의자의 초상권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마스크와 모자로 범죄자의 신분을 보호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논란이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얼굴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보호할 가치는 있는지, 범행를 저지른 것이 확실시 되는 피의자의 인권과 범죄 재발 방지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등을 두고 논쟁이 붙었다. 한 네티즌은 “무죄추정의 원칙은 인정하지만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당연히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며 “피해자와 유가족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도 안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인면수심이 따로 없다, 얼굴을 공개해야 또 다른 여죄에 대한 제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피의자 가족의 공개사과로도 부족할 판에 범죄자의 인권이라니…”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외에도 “공개 수배자는 전단지에 얼굴을 공개하면서 막상 검거한 뒤에는 마스크를 씌워야 하나”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해 경각심을 키워야 한다” 등의 의견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소수 의견이지만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일부 있었다.



◇신상 공개 적절성은=미국과 일본의 경우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다. 일부러 피의자 사진을 유포하지는 않지만 경찰이 마스크나 모자를 씌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 이정달 경감은 2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다 벗겨서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수사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피의자 신상은 무죄 추정의 원칙 등으로 인해 법리적으로 비공개가 맞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중대 범죄자에게 마스크를 씌우느냐 마느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와 관련한 심의를 내놓은 적이 거의 없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연구원은 "얼굴이 공개됐을 때 혹시 다른 피해가 있다면 여죄가 밝혀질 수 있고 국민의 알 권리도 충족되지만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피의자가 범죄에 대한 자백을 했을 땐 공개를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큰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에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서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죄를 저지르면 이렇게 된다’는 효과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제기하지만 신상 공개와 유무죄는 직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지은 기자



[역대 연쇄살인 사건]



◇지존파 사건=김현양 등 조직원 6명은 1993년 7월 ‘지존파’를 결성, 사업가 부부를 납치 살해한 것을 비롯해 배신한 조직원 1명 등 모두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체를 암매장하거나 불에 태웠다. 또 같은 해에는 지존파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부녀자 6명을 연쇄납치하고 살해한 온보현 사건이 터져 사회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묻지마 살인=2000년 검거된 부산ㆍ울산 연쇄살인범 정두영은 1999년 6월∼2000년 4월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철강회사 회장 부부 등 9명을 잇달아 살해했다. 그는 특히 유영철에게 큰 영향을 끼쳐 유영철은 그의 범죄 행각이 상세히 기술된 월간지를 탐독하고 실제 범행 때 망치를 살인 도구로 쓰는 등 범행수법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대의 살인마=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하고 시체 11구를 토막 내 암매장해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희대의 살인마로 기록됐다. 그는 자신의 불운한 성장 과정에 대한 비관과 부유층을 향한 적개심으로 부유층 노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고, 나중에는 출장안마사나 노래방 도우미 등 여성들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에 검거된 이후에도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경찰에 잡히지 않았으면 100명까지 살해할 생각이었다"고 말해 더 큰 충격을 줬다.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범 정남규=그는 2004년 2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전모(27.여)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등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 사이 모두 25건의 강도상해, 살인 등을 저질러 13명을 숨지게 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도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살해와 방화를 통해 만족을 얻기 위해 무차별적인 연쇄 살인 행각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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