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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년 경제 제1조 “임금은 깎아도 해고는 안 된다”

중앙선데이 2008.12.21 00:12 93호 12면 지면보기
14일 3만 개의 일자리를 모집하는 베이징 취업박람회에 수만 명의 대졸자가 몰렸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황소의 난, 황건적의 난, 이자성의 난…. 중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대반란들이다. 일어난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유민(遊民)이 주역이었다. 농지를 빼앗기고,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반란이었다. 유민의 현대적 의미는 ‘실업자’다. 경제위기 여파로 ‘세계의 공장’이 흔들리면서 중국에 또다시 유민이 대거 발생하고 있다. 현대 유민은 농촌과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며 고단한 삶의 탈출구를 찾고 있다. 실업 문제는 자칫 중국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를 위협할 수 있어 지도층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농민공 780만, 대졸자 1000만 명 ‘일자리 어디 없소’

‘세계의 공장’에서 쏟아지는 실업자
후베이(湖北)성 첸장(潛江)시 근교의 농촌 출신인 리량즈(李良智). 그는 요즘 동생 리량융(李良永)과 ‘땅 싸움’을 하고 있다. 칭다오(靑島)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리량즈가 첸장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달 30일. 공장이 문을 닫자 설을 쇨 겸 조기에 귀향한 것이다. 그는 광둥으로 떠날 때 동생 량융에게 맡겼던 토지를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동생은 ‘이미 경작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돌려주기를 거부해 형제 사이가 틀어졌다. 이들 형제는 지금 시 정부 중재위원회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첸장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중국 농촌 전역에는 지금 리량즈 형제와 같은 크고 작은 분규가 벌어지고 있다.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나갔던 농민공(농촌 출신 임시직 노동자)들이 귀향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설 연휴가 실업대란의 고비”라고 말한다. 농촌으로 복귀한 농민공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열쇠다. 난카이(南開)대 위안신(袁辛) 교수는 “경제상황을 볼 때 귀향한 농민공들은 설 명절 후 도시로 나갈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 농촌 실업자가 될 처지”라고 말했다. 도시 실업자가 농촌 실업자로 바뀌는 것이다. 이미 약 780만 명의 농민공이 일자리를 잃고 귀향 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농촌 지역 지방정부는 돌아온 농민공들을 가급적 다시 도시로 내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기 지역에서 위기 요인을 떠안지 않으려는 속셈에서다. 농민공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후베이성의 경우 광둥성 둥관(東莞)에 ‘재취업 지원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후베이성 출신 노동자들이 둥관에서 직업을 찾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둥관시는 탐탁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귀향한 농민공들을 고향에서 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업위기를 다른 지방으로 떠넘기는 ‘지방 보호주의’가 시작됐다.

베이징과기대를 지난해 졸업한 리톈톈(李田田). 그는 자신을 ‘링궁쯔쭈(零工資族)’라고 부른다. ‘0’의 임금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졸업 후 수백 통의 이력서를 뿌렸는데 적당한 일자리가 없어 결국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직장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일을 배울 수 있음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또 다른 ‘불안의 핵’ 청년실업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도시 실업률은 약 4.5%. 그러나 이는 신고를 받은 숫자일 뿐 실제 실업률은 15%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최근 ‘도시지역 실업률이 9.4%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대졸 청년실업이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올해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는 예비 취업생은 약 560만 명. 사회과학원은 ‘이 중 150만 명은 구직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도시지역에만 약 1000만 명의 대졸자가 대기 중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졸자 실업률은 약 12%. 공식 실업률의 세 배가 넘는다.

문제는 도시지역 취업난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원 분석에 따르면 도시지역의 일자리 수요는 연 2000만 개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1200만 개를 창출했다. 800만 개가 부족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성장률이 11.9%에 달했던 시절의 얘기다. 내년 성장률이 8% 선으로 떨어지면 일자리 창출은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동부 공업도시에서 ‘노동자 시위’는 이제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중국 언론에 보도된 시위만 30여 건이 넘는다. 폐업 공장에 모여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생계형 시위가 대부분이다.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정책 30년 만에 최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150개 대형 국유기업도 비상
리룽룽(李榮融) 국무원 국유자산관리위원회 주임은 150여 개에 달하는 중앙정부 산하 국유기업을 총괄하는 국가급 최고경영자(CEO)다. 그가 최근 국유기업 사장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그의 지시는 딱 한 가지. ‘임금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해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년 국유기업 업적평가의 최고 기준은 일자리를 얼마나 늘렸느냐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리 주임의 지시는 실업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긴박감을 말해 준다. 이달 초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의 결론이 바로 ‘촉진취업(促進就業)’이었다. 이 정책에 따라 요즘 각급 정부는 날마다 취업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쓰촨성 청두(成都)시의 ‘500위안 취업훈련권(就業培訓券)’은 그중 하나다. 청두시는 도시지역에서 귀향한 농민공을 대상으로 500위안(약 10만원)에 해당하는 취업훈련권을 배급할 계획이다. 시내에 설립된 직업훈련센터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시는 귀향한 농민공이 현지에서 창업할 경우 창업자금을 전액 지원키로 했다. 산시(陝西)성은 성내 주요 도시에 21개 ‘농민공 창업 시범단지’를 건설, 귀향 농민들을 흡수할 수 있도록 했다. 농민공을 채용하는 단지 내 기업에는 면세 혜택이 주어진다.

산업정책의 변화도 감지된다. 그동안 저부가가치 단순 임가공 기업은 빨리 없어져야 할 ‘공공의 적’이었다. 연안지역 공장을 내륙으로 강제 이전시키는가 하면 오염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강제 폐쇄했다. 올해 실시된 신노동법으로 기업주들을 옥죄었다. 그러나 임가공 기업은 요즘 언론에서 ‘일자리 창출형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폐지했던 우대조치도 하나 둘 부활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경제의 특성상 글로벌 불황의 시대에 실업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사회과학원 분석에 따르면 수출이 1%포인트 하락하면 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연 평균 20%에 달하던 수출 증가율은 이미 마이너스(11월 -2.2%)로 추락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약 500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간 셈이다.

지금까지 중국경제의 최고 경쟁력은 ‘인구(人口)’였다. 13억 인구가 제공하는 거대한 노동력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고, 제3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요즘엔 거대한 인구가 위기의 진원지로 변하는 ‘인구의 패러독스’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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