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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우호단체 탐방①] 1942년 충칭서 설립된 한중문화협회를 찾아

중앙일보 2008.11.11 09:35
1992년 국교 수립 이후 16년 동안 한중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뒤에는 국내 여러 민간단체들의 공이 컸다. 한중문화협회, 한중우호협회,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한중친선협회, 한중경영인협회는 한중우호를 위해 활동한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서는 한중우호 증진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활약 중인 이들 단체들을 차례로 찾아 각 협회의 소개와 활동 내용을 전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최근 중국은 전쟁과 약소국에 대한 수탈이 아닌 외국의 투자유치와 자국민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을 토대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발전양상을 주의깊게 바라보면서 중국과 어떻게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21세기에 중국과 친해지지 않고서는 어떤 국가와도 친해질 수 없다. 부상하는 중국과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난 7일 여의도 삼도빌딩 5층에 위치한 한중문화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영일 총재(69)는 한중 우호관계의 발전을 위해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춰야 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한중 우호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국내 단체가 여럿 있다. 한중문화협회는 어떤 계기에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는가?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쑨원(孫文) 선생이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을 세웠다. 중화민국은 외국 민간 우호단체들과 교류협회를 만들면서 이름을 모두 ‘문화협회’라고 붙였다. 이와 달리 신중국은 ‘우호협회’로 통일하고 있다. 당시 한국 임시정부를 중국이 국가로 승인하기 위한 전단계로 먼저 만든 것이 바로 ‘한중문화협회’다. 1942년 10월 11일 충칭 중국방송국 대강당에서 제1회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 당시는 제2차 국공합작이 진행중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함께 항일전쟁을 수행하던 기간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한국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승인하기 위해 협회 창설을 요청한 것이다. 쑨커(孫科) 당시 중화민국 입법원장이 중국측 회장을 맡았다. 쑨커는 쑨원 선생의 아들이다. 저우언라이, 펑위샹(馮玉祥), 궈모뤄(郭末若) 등 중국의 유명 인사들이 이사를 맡았다. 한국측 회장은 임시정부 외교부장이었던 조소앙 선생이 맡았다. 한국측 이사진에는 이승만, 서재필 등이 포함됐다. 지난해 10월 11일 충칭에서 열린 협회 수립 65주년 기념식에는 펑위샹 장군의 딸 펑리다(馮理達) 해군 소장이 참석했다. 펑리다는 기념식에 참석해 42년 창립일을 회상하는 기념사를 했다. 아쉽게도 펑 소장은 올해 2월 8일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다.




▲조소앙 한중문화협회 초대 총재
유=42년 설립됐다면 국내 한중우호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가 길다. 49년 신중국 성립 이후엔 어떤 변화를 거쳤는가?

이=한중문화협회의 중국측 기구는 대륙에 있다가 49년 대만으로 건너갔다. 한국측 기구 역시 해방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46년 이후엔 활동이 끊겼다가 65년 최용덕 공군참모총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재창립됐다. 한중문화협회 설립 당시 사용한 간판은 아직도 대만에 보관돼 있다. 아직도 대만에 한중문화협회의 조직이 남아 있으나, 장졔스(蔣介石) 총통 사망 이후에는 교류가 거의 단절됐다. 92년 한중 수교 이후 대만과의 관계는 이어지지 못했다.



유=그렇다면 대륙과는 어떤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가?

이=중국 외교부 산하 대외우호협회와 교류하다가 1998년 중국과 교섭한 결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가 한중문화협회의 파트너가 돼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정협 외사위원회 톈정페이(田曾佩) 주임과 공식적 협력관계를 맺은 것이다. 2002년 협회 창립 60주년에는 왕원위안(王文元) 정협 부주석이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당시 김석수 총리, 리빈 주한 중국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그런데 중국측 정협은 국가기구인데 반해 한국의 한중문화협회는 민간 기구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이때문에 실무팀에서 민간기구와 국가기구가 대등한 협력을 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현재는 사안별로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리자오싱(李肇星) 전 외교부장이 회장으로 있는 중국국제우호연락회와 사업협력에 서명하고 교류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8.6.13 심장병어린이수술
유=한중문화협회가 펼치는 대표적인 활동으로 무엇이 있는지 소개해 달라.

이=중국 낙후지역의 심장병어린이 수술지원사업을 2006년부터 펼치고 있다. 2006년 6월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6명, 7월 지린성 옌지에서 7명에게 수술을 집도해 새로운 생명을 선사했다. 지난해에도 옌지와 하얼빈의 빈곤아동 20명에게 수술을 해 줬으며 지난 10월에는 산둥성 지난에서, 오는 23일에는 하얼빈에서 수술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사업은 한국의 애국지사들이 중국대륙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할 때 중국인들에게 진 큰 우정의 빚을 기억하면서, 다소나마 보답한다는 뜻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병원의 김용진 박사 등 소아심장관련 전문의들의 자원봉사와 중국에 진출하고 있는 LG, GS 등 기업들의 협찬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유= 어떻게 심장병 수술을 택하게 됐나?

이= 아동 심장병은 치유가 힘든 난치병이다 특히 중국 어린이 심장병 환자들의 사망률은 매우 높다. 한국 의료진의 심장병 수술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채영덕 한중문화협회 부총재가 서울의대의 김용진 박사를 소개해 본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중국 성(省) 정부에서 심장병에 걸린 빈곤 아동을 골라 연락이 오면 우리가 의료진을 구성해 중국으로 가 수술을 집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2008.2.29 중국 유학생 위문행사




유= 또 다른 활동도 소개한다면.

이= 2002년부터 한중문화협회는 매년 전국의 15개 지회를 통해 중국유학생이나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설 잔치를 민간외교차원에서 개최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서울에서 180여 명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3500여 명이 참석하는 떡국잔치와 노래자랑 행사를 가졌다.

또 올 6월에는 협회 산하에 인권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으로 활동중인 임통일 변호사가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중국 대사관 고문변호사로 활동중인 명로승, 박종렬 변호사, 우윤근 국회의원 등이 함께하고 있다.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인권침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한중문화협회를 찾는다면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올림픽 성화봉송 과정에서 구속됐던 진모(20)씨에 대한 영장 실질 심사 때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재한 중국인들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로 의료보험 문제가 있다. 많은 한국 체류 중국인들이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아 병에 걸렸을 때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와 협상해 유학생의 의료보험료 요율을 낮추고 입국 과정에서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06년부터는 중국 공무원들의 새마을 연수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공무원 연수기구인 중국국가외국전가국(外國專家局)로부터 연수대행기구로 지정을 받았다. 3500여 명의 중국 공무원들이 지난해 전주 새마을 연수원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다. 이론과 체험 과정을 합쳐 1주일간의 교육을 받고 돌아갔다.




▲2008.6.26 인권위원회개소식




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활동은?

이= 중국과의 교류 사업을 중심으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한국 내 협회 회원들이 모일 기회가 적었다. 해마다 연말에 한중친선의 밤 행사를 갖는다. 올해는 12월 10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중국 대사관의 전직원과 서울에 진출해 있는 중국 기업 및 단체들, 협회의 전국 지회장들이 모여 한중 친목을 다질 것이다.



유= 이영일 총재는 통일문제에 대한 공부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도 ‘햇볕정책의 종언’ 등 남북관계 관련 저서를 출판했는데 어떤 계기로 한중문화협회 총재에 취임하게 됐나?

이= 과거 통일원 정책국장을 하던 시절 정치외교 정책 담당관을 했다. 지난 1975년 한양대학교 중소문제연구소에서 펴내는 학술지 ‘중소연구’에 중국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베이징에서 보는 서울, 서울에서 보는 베이징의 거리가 너무 멀다. 이를 점차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갈등해소 이론을 펼쳤다. 이 논문이 중국과의 첫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한중문화협회 총재직은 98년에 맡았다. 이종찬 당시 총재가 국정원장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당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있던 내가 총재를 맡게 됐다.



유= 협회를 유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다. 비용은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가.

이= 임원들의 회비로 유지하고 있다. 부총재단과 이사들이 소정의 기금을 내고 있다. 심장병 환자 지원 사업은 GS와 LG에서 크게 협찬해 주고 있다. 국제교류재단에서도 소정의 지원을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자체적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총재라는 자리가 자금을 조달하는 위치라 인기가 없다. 주위에 훌륭한 분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웃음)



유= 향후 한중관계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한국과 중국은 서로의 우호 발전을 위해 각각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특히 한국 민간 차원에서 신경써야 할 부분은 뭔가? 특히 최근 한국에서는 ‘중국 위협론’ 등 중국의 부상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이= 우리가 중국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던 간에 중국은 피할 수 없는 이웃이다. 요즘 한국 국민들은 중국을 잘 모른다. 중국에 대해 보다 많이 공부해야 한다. 한국 경제와 같은 규모의 성시 31개가 뭉친 큰 덩어리가 중국이다.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존재도 중국이다. 중국은 한국에게 있어 미국에 못지 않은 존재다. 최근 한국 일부에서 중국에 사시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 대한 고자세와 교만은 정말 유치한 생각이다. 중국이란 나라는 지금 정말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과거 강대국의 굴기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과 자원 침탈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외국의 투자와 자국민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강대국으로 굴기하고 있다. 이는 과거 다른 강대국의 부상과는 다른 양태다. 중국의 발전양상을 주의깊게 바라보면서 어떻게 우호협력관계를 맺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21세기에는 중국과 친해지지 않고서 어떤 국가와도 친해질 수 없다. 중국과 공존공영의 길을 걷는 것이 한국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또한 중국 원자바오 총리는 일전에 주변국에 대한 삼린(三隣) 정책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웃과 화목해야 한다는 목린(睦隣), 이웃을 부유하게 한다는 부린(富隣), 이웃을 평안하게 한다는 안린(安隣) 정책이 그것이다. 이 삼린 정책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실천으로 펼쳐진다면 한국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정리=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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