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시장’은 돈을 부르며 운다

중앙일보 2008.10.27 19:39 종합 27면 지면보기
시장의 울음, 아니 통곡. 주가가 3년 반 만에 심리적 저지선 아래로 추락하고 환율이 공포의 1400원 선을 돌파했던 지난 주말 세상은 시장의 곡소리에 파묻혔다. 한국에서만 하루 만에 100조원 넘는 돈이 증발했고, 세계 증시에서는 수조 달러가 자취를 감췄다. 시장이 먹어치운 것이다. 먹이를 찾아 꺼이꺼이 울며 미친 듯 헤매는 시장을 달래려 미국이 1조 달러의 공물을 바치고, 유럽연합(EU)이 수조 유로의 구제금융을 모으고, 아시아가 80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조성하겠다고 용서를 빌어도 거식증에 걸린 시장은 대륙을 가로질러 질주한다. 그것만으론 턱도 없다는 듯이, 돈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내려앉을 태세다.



허기진 시장은 돈의 주인을, 주인의 인품과 형편을 따지지 않는다. 기업 비축자금·세금·보유외환을 포식하고도 모자라 결혼자금·학자금·펀드·주식·단기투자금·대출금에 서린 서민의 애환과 소망을 먹어치웠다. 마치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 떼와도 같고, 히치콕 영화의 새 떼와도 같다. 그 무시무시한 메뚜기 떼들이 파키스탄·벨로루시·우크라이나·아이슬란드의 들판을 초토화시키고 다른 국가로, 다른 대륙으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 그건 상황에 따라 새 떼로, 벌 떼로도 변할 수 있고, 모래바람·허리케인·태풍으로 변할 수 있다. 무궁무진한 자기변신력과 자기증식의 먹성을 건드린 것은 월스트리트였다.



1920년대 대공황의 진원지였던 월스트리트가 시장의 변덕스러운 성깔을,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시장의 무서운 번식력을 몰랐을 리 없다. 자만했던 거다.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가 그토록 경계해 마지않았던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 돌아가는 속도를 첨단 금융지식과 정보시스템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시장은 천사일 수도, 악마일 수도 있다. 무역풍에 한껏 돛을 부풀린 범선이 미지의 세계로 필요한 물자들을 날라주었을 때의 시장은 천사였다. 교역이 풍요를 선사하고, 풍요가 이윤에 눈뜨게 하고, 이윤이 탐욕을 낳자 시장은 악마로 변했고 절대자로 군림했다. 사회가 경제법칙의 부속물로 전락한 것이다. 호혜와 재분배는 사라졌다. 인류 문명을 훈훈하게 만들던 괜찮은 것들이 모두 갈려 죽었다. 19세기 문명을 집약하는 이 악마의 맷돌은 공장·기업·은행·일자리를 초토화시키고 태어난 지 100년 만에 멈춰 섰다. 이게 대공황이다.



그런데, 지금의 금융쓰나미는 생후 20년 만에 발생했다. 1980년대 말, 만반의 준비를 마친 미국이 정예 금융군단을 앞세워 순식간에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명칭도 화려한 각종 금융상품들이 이번에는 범선이 아니라 초음속 수송기와 초고속 전산망을 타고 전 세계를 하루에도 수십 바퀴 돌았다. 동구권이 편입되고 브릭스(BRICs)가 가담하자 물가불안 없이 호황이 구가되는 ‘골디락스의 시대’가 열렸다. ‘악마의 맷돌’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지만, FRB 의장인 그린스펀이 자백했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루그먼, 스티글리츠 같은 삐딱한 경제학자들의 비판과 경고가 월스트리트의 자기최면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세기의 탐욕’에 ‘20세기의 오만’이 겹쳐져 이번에는 ‘악마의 기갈증(Satanic Thirst)’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기갈증에 걸린 시장은 돈, 돈을 찾아 헤맸고, 투자자·기업·은행·정부가 달러를 갈무리하기 시작하자 급기야 ‘시장은 돈을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이게 최근의 사태다.



얼마나 더 먹어치워야 시장은 기갈증을 스스로 풀 것인가? 그 메뚜기 떼·벌 떼·새 떼가 본격적으로 덮치지도 않았는데, 한국 경제가 식은땀을 흘리며 앓아눕는 이유는 무엇인가? MB경제팀은 악마의 포식을 다스릴 능력은 과연 있는가? MB정권이 운이 없다 치더라도 주가와 환율가치의 동반자살, 외환보유액은 많은데 돈이 돌지 않는 이상증세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실력이 없다는 증거 아닌가? ‘수준 이하’-이게 세간의 판정이다. 소방수의 행동준칙 1조는 ‘초동진압’이다. 프레디맥과 베어스턴스 사태 한 달 반, 메릴린치와 리먼브러더스 붕괴 한 달이 다 지나는 동안, 경제팀의 인식은 낙관에서 비관으로 밀렸다. 당연히 말은 바뀌었고, 정책은 뒷북치기였다. 공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돈, 인생을 담보로 맡겨둔 그 돈이 도대체 얼만가?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다. 한국은행이 꺼내 든 은행채 매입이라는 이 비상카드는 시중은행의 부실을 뜻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경제팀은 중병의 원인을 오진하고 있는가, 아닌가? ‘돈을 부르며 우는 시장’을 달랠 마에스트로, 우리는 그를 부르며 운다. (제목은 김형경의 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에서 차용함)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