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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이겨내고 발전 이룬 한국, 우리 교훈이자 힘”

중앙선데이 2008.10.20 01:20
동티모르 독립투쟁의 영웅이자 현재 실권자인 구스마오 수상을 중앙SUNDAY가 인터뷰했다.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 식민통치 시절을 거치며 독립을 이뤄낸 동티모르의 역사는 한국과 많이 닮았다. 동티모르는 아직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하지만 엄청난 지하자원 매장량 때문에 세계의 주목받고 있다. 지난 14일엔 한국과 자원협력 의향서(MOU)를 교환함으로써 공동 자원개발 및 자원 공급을 약속했다. 독립투사에서 경제발전을 이끄는 통치자로 변신한 그를 만나 봤다.


동티모르 경제개발 이끄는 구스마오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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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나는 마법사/ 때로는 바람이 되고/ 때로는 나무가 되고/ 때로는 여우로 변하기도 한다네.’



동티모르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구전 동요다.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 무장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사나나 구스마오 사령관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구스마오(62·사진)는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뛰어난 전략가다. 그는 2002년 독립 후 실시된 첫 선거에서 80%가 넘는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해엔 총선에 출마한 뒤 5개 정당의 연정을 성사시켜 수상이 됐다. 이원집정제를 채택한 동티모르의 실권은 수상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은 동티모르와 공동 자원협력 의향서(MOU)를 교환했다. 이로써 한국은 동티모르에 자원개발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원유와 가스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앙SUNDAY는 이날 구스마오 수상을 인터뷰했다. 동티모르 정부청사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소탈한 태도를 보였다.



-원유와 가스는 동티모르에 어떤 의미인가.

“(눈을 찡긋하며) 비밀인데. (웃음). 만약 자원이 없다면 우리의 발전 속도는 더 더뎌질 것이다. 오늘 아침 한국과 공동 자원개발 및 기술 교류에 관한 MOU를 교환했다. 우리는 숙련 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개발 노하우도 없다. 이번 MOU는 우리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동티모르 정부청사에서 구스마오(가운데) 수상이 박혜민(오른쪽)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은 인터뷰를 주선한 제이슨 리 옵티머스 사장.

-투자 제의가 많을 텐데 어떻게 선별하나.

“동티모르는 열린 나라다. 한국을 포함해 어느 누구의 투자라도 환영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은 우리의 교훈(lesson)이다. 한국은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하다. 식민지에서 독립했으며, 고통을 이겨내고 발전을 이뤘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운명을 개척한 한국의 역사에서 우리는 큰 힘을 얻는다.”



-많은 자원 부국은 일부 권력층만 혜택을 누릴 뿐 대다수 국민이 궁핍하게 산다. 일명 ‘자원의 저주(Curse of Oil)’다.

“우리에겐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 있는 ‘황금 궁전(Golden Palace)’이 없다. 우리는 독립 투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석유기금을 모은다. 자원의 저주는 부패를 허용할 때 생긴다. 부패는 부패를 컨트롤할 힘이 없을 때 생겨난다. 우리는 강력한 부패방지법을 만들었다.”



-석유기금에 대해 설명해 달라.

“2004년부터 베이운단 광구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 37억 달러가 모였다. 앞으로 이 돈을 활용할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자원으로 번 돈은 함부로 쓸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곧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거란 외신보도가 있었다.

“시위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평화적 시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 소요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동티모르 국민은 더 이상의 정치적 불안이나 폭력 사태를 원하지 않는다. 정부는 폭력을 차단할 모든 수단을 갖고 있다. 10만 명 넘게 난민이 발생한 2006년 내란사태는 올해,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

다.”



-독립투쟁 시절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데 이어 지난해엔 수상이 됐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맞다. 1999년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후 2000년 군대를 떠났고, 내가 이끌던 정당(CNRT)도 해산했다. 당시 나는 함께 싸웠던 전우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대통령 출마는 유엔의 결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 수상이 이끌던 정부는 잘못된 결정을 계속하고, 결국 2006년 대규모 폭력 사태를 낳았다. 국민의 희망에 부합할 현실적인 방법은 정당을 새로 만들어 정부를 장악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어떤 일에 역점을 두고 있나.

“동티모르는 작은 나라고, 인구도 적다. 오랜 세월 많은 고통을 받았다. 부국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은 가난하다. 가난을 줄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우선 오랜 식민지 시절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폭력이 아니라 관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식민지 시절 많은 고통을 받은 장년층의 삶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그들은 국가 독립의 유공자로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교육 문제가 시급하다. 지역 사회 발전, 의료체계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식량 자급자족의 기반을 만들고, 도로·공항 등 사회기반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이런 인프라가 갖춰지면 외국인 투자가 늘 것이다. 내년부터 국가 인프라 건설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장기 비전은.

“모든 동티모르 국민이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다.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고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는 그런 집이다. 모든 아이가 5㎞ 이상 걷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수상의 특별 경제 자문관으로 한국인 계두원씨를 임명한 이유는.

“그는 ‘나쁜 친구’다. (웃으며 윙크). 그는 구스마오 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재단 운용을 도와준다. 요즘도 내겐 매일 독립투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쟁 미망인과 고아, 다친 노인이 찾아온다. 그런 사람들을 재단이 돕고 있다. 내 월급(월 1000달러선)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옵티머스 계두원 회장은 현지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번 MOU 체결에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독립투쟁 당시와 지금을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보다 늙었다. (웃음) 독립투쟁을 할 때는 전우가 목숨을 잃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를 이끄는 건 독립투쟁보다 훨씬 더 어렵다. 독립투쟁을 할 때 적은 하나였다. 지금은 싸워야 할 적이 너무 많다. 가난과 질병, 정치적 혼란 등 많은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농부가 돼 호박을 키우고, 그 호박을 좋은 값에 팔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축구와 사진 찍기가 취미라고 들었는데.

“지금 나는 85세다. (웃음. 실제 그의 나이는 62세다. 동티모르 평균 수명은 50세가 채 안 된다.) 너무 늙어 축구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농담이고, 사실은 시간이 너무 없어 취미 생활은 할 수 없다. 토요일·일요일도 밤 12시까지 일한다.”



-최대 현안이 있다면.

“나라의 안정이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올해 말까지 안정시킬 수 있을까, 내년 말까지는, 그 다음해까지는, 내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늘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4년 뒤 수상 임기가 끝나면 다시 출마할 건가.

“그때 나는 90살이 될 것이다. (웃음)”

구스마오는 92년 감옥에 있을 때 만난 20살 연하의 호주 기자 크리스티와 99년 재혼해 3, 5, 7살짜리 아들 셋을 두고 있다.



딜리(동티모르)=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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