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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진단>무대미술가 윤정섭씨 국립현대미술관 초대展

중앙일보 1996.09.17 00:00 종합 13면 지면보기
미술계,특히 평론가들로부터 작가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면서지난해말부터 지금까지 미술계 내부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린사람은 틀림없이 윤정섭(46.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교수다.
미술대학을 나왔지만 미술계와 인연을 끊고 무대미술가로 살아온그가 갑자기 국립현대미술관의 야심기획 「올해의 작가전」에 초대되면서 미술계가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본지 5월26일자 15면 참조> 급기야 전시 개막일인 지난8월23일에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장 오광수)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라는 성명서를 내면서 올해의 작가전 작가선정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기획력 부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이 「무대미술의 성급한 초대로순수미술 분야 많은 작가들의 사기를 저하」시켜 「미술인의 분노를 자아냈다」는 것이다.또 이번 전시회 도록에 평론가 집단을 비난한 글을 쓴 공동 전시기획자 김상수(38)씨 에 대해 「미술에 상식조차 없는 연극인의 치졸한 문장」이라는 노골적인 비난도 함께 담고 있다.
전시는 오는 22일이면 끝나지만 「순수미술」또는 「미술권력」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국내 최대 현대미술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평론가집단 사이의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성명서 발표 이후 아직 어떤 접촉도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큐레이터는 『기획력 부재라는 표현을 썼는데 미술관 기획에 관여해 권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좀 과격하게 말하면 협회가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것 외에 한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 다.
오광수 회장의 입장은 또 다르다.최근 언론이 협회의 입장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인터뷰하기가 무척 곤혹스럽다는 그는 『윤정섭을 초대한 것 자체엔 아무런 이의가 없다』며 『무대미술도 예술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순수미술이든, 무대 미술이든 개인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다만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미술평론가 집단을 싸잡아 매도한 김상수의 글을 여과없이 실은 미술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것이다.작가의 사기저하 문제를 지적한 것도 평론가들의 입장이라 기보다 전반적인 미술계입장을 대변한 것이라는 얘기다.평론가협회측은 감정을 자극해 이번 사태를 촉발한 미술관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고 미술관측은 평론가집단의 몰이해에서 나온 밥그릇싸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똑같은 상황이지만 문제 의 본질을 바라보는 각도는 전혀 다른 셈이다.
정작 당사자인 윤교수는 무덤덤한 반응이다.『나는 작가의 한사람이지 운동가로 비치기는 싫다』면서도 『개막일에 성명을 발표해마음이 상한건 사실이지만 전시가 「섰다」』면서 『이것으로 나는할 말을 다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말이 단순히 허풍이 아닌 것은 이렇게 시끄러운 가운데서도국내 몇몇 화랑들과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문화원들로부터 자국 전시초청을 받은데서 알 수 있다.
또 『평론가들이 시대를 잘못 읽는 것같다』는 윤교수는 『마녀재판당한 느낌』이라면서 『중세에는 이쯤되면 벌써 죽었겠지만 지금은 현대라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나는 현대를 믿는다』고도 말했다. 이 논쟁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번 쟁점을 유야무야 묻어버릴 것이 아니라 보다 생산적인 토론으로 진전시키기를 기대하고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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