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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7.한진그룹

중앙일보 1996.03.23 00:00 종합 27면 지면보기
한진그룹은 창업주인 조중훈(趙重勳)회장을 정점(頂點)으로 아들 4형제가 주요 계열사를 나눠맡는 분할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다. 趙회장은 『창업자에겐 은퇴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으며실제로 이 말을 철저히 실천에 옮기는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고희를 넘긴 고령(76세)임에도 매일 오전8시면 서울소공동 사옥으로 출근해 그룹의 중요 사안들을 직접 챙긴다.

조중훈 교통공화국 네 아들 4輪체제

그런 그도 올 들어서는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趙회장의 4남1녀중 장남인 양호(亮鎬.47)씨가 올해초 그룹부회장에 올랐다.대한항공 사장을 겸하면서 그룹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대임을 맡은 것.그는 2월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총회에서 한진그룹을 대표하는 전경련 부회장으로 선임 되기도 했다.

막내 아들인 정호(正鎬.38)씨도 올초 동양화재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이에 앞서 차남인 남호(南鎬.45)씨는 93년 한진건설 사장에,3남인 수호(秀鎬.42)씨는 94년 한진해운 사장에 올랐다.

사위는 그룹법률고문을 맡고 있 는 이태희(李泰熙.56)씨.

대한항공은 그룹의 젖줄이자 최대 기업이고 건설.해운.금융 등도 모두 그룹내 매출 비중이 10~20%씩 되는 간판 업종.이들 4개업종을 합친 매출은 그룹 전체의 80~90%로 趙회장의아들 4형제가 그룹을 이끌어나가는 준(準)2세 체제로 정비된 셈이다. 趙회장의 형제중 유일하게 그룹에 몸 담아온 동생 중건(重建.64.대한항공 부회장)씨는 최근 들어 사실상 그룹에서 손을 뗀 상태.

이름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 CK로 불려온 그는 유창한 영어실력과 폭넓은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미군관련 사업이나 월남진출 등그룹 도약의 계기마다 큰 활약을 했다.대한항공 인수 때부터 경영에 참여한 뒤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워내 창업동 지나 마찬가지인 1세대 경영인이다.

최근 자신의 거취문제와 관련해 趙회장과 원만한 합의를 봤으며한진을 떠나 무역업이나 리조트업을 벌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와 함께 일했던 창업세대 전문경영인들도 차례로 물러나 이제 趙회장의 친척으로는 막내 처남인 김성배(金成培)한진관광사장만이 그룹에 남아 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말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2005년에는 세계 10대 물류그룹(현재는 19위수준)으로 발돋움한다는 야심찬계획을 선언했다.한진은 국내 재계순위 7위지만 육.해.공의 운송망을 골고루 갖춘 세계 유일의 그룹이다.그룹 매출의 약 70%가 사람이나 화물을 실어나르고 번 돈.나머지 30%도 도로.

항만 등을 건설하거나 수송사업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는 업체 등물류관련 일색이다.

그룹측은 제조업으로는 배나 비행기를 만드는 것외에 소비재산업에는 전혀 진출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기조실이나 비서실없어 요즘 웬만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정보통신사업의 경우에도 주파수공용통신(TRS)분야참여를 희망하고 있다.물류사업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는 해방되던 45년 화물트럭 1대로 출발해 50년만에 수송 대기업으 로 성장한 자부심과 『물류에 관해선 1등이 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한진그룹에는 거의 모든 그룹에 있는 기조실이나 비서실이 없다.그룹운영위원회가 있으나 역할은 사뭇 다르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그룹의 장기 비전을 만들거나 계열사 단위로는 할 수 없는 대(對)정부업무 정도며 자금이나 인사조정기능이 없다.계열사간 인사 교류가 거의 없는 것도 특징.그룹의 중요 사항은 매주 월요일 오전9시의 「5인 월요회의 」에서 결정된다.趙회장과 조양호부회장,이근수(李根秀)한진해운 부회장,황창학(黃昌學)㈜한진 부회장 및 이태원(李泰元)운영위원회 실장 등이 그 멤버다.그룹의 총력을 모아 투자해야 할 큰 프로젝트나 계열사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 등이 이곳에서 조율된다.이 모임엔 현안에 따라 건설.해운.금융 등 관련 계열사 사장이 배석하기도 한다.물론 최종 결정은 趙회장의 몫이다.

한진그룹은 24개 계열사가 있지만 크게 수송.건설.금융의 세분야로 나눌 수 있다.일종의 소그룹성격으로 분야별 사장들 모임이 1~2주에 한차례씩 정기적으로 열린다.계열사별 분할 경영에따른 단점을 보완하는 모임이다.한진그룹은 공채 제도를 시행하면서도 공채기수 개념은 희박하다.학연.지연에 기반한 사내 모임도허용되지 않고 있다.『사(私)조직이 기업을 망친다』는 회장 특별지시에 따른 것.

趙회장의 아들 4형제는 고속승진이기는 했지만 이사.상무.전무등 단계를 차례로 밟으며 비교적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장남 양호씨는 미주지사에 근무하면서 시간을 쪼개 남가주대 대학원을 마친 노력파로 인사관리를 전공한 경영학 박사.『서비스업은 직원들의 불평이 적어야 발전한다』는 미국식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다.일찍부터 컴퓨터와 친해 외국출장 때는 노트북 PC를 휴대해 해외에서 만날 사람의 인적사항을 미리 컴퓨터로 파악해두는 치밀한 면이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뒤 곧바로 대한항공에 입사한 차남 남호씨는 4형제중 유일하게 국내 대학을 졸업했으며 학연을 바탕으로한 인맥이 두텁다.

부하직원이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가 다소 미흡해도 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한일개발과 한진종건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그룹내건설.레저 및 엔지니어링부문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맏형과 남가주대 동문인 3남 수호씨는 과묵하지만 경영수완이 좋고 부친인 趙회장에게 직언도 하는 스타일.한진해운의 흑자전환을 이룩하며 대한항공의 핵심인 영업담당 부사장직도 겸하고 있다.그룹내에서는,영업쪽은 형인 양호씨가 유일하게 거 치지 않은 분야로 형을 보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막내인 정호씨는 고교.대학을 미국에서 마치고 스위스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아 영어.프랑스어에 능하다.증권.보험.종금 등 그룹내 알짜 금융계열사들을 사실상 관장하고 있다.

이태희 고문은 하버드대 출신의 엘리트 변호사.그룹 경영진에는포함돼 있지 않지만 항공법을 전공한데다 趙회장의 사위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측근이다.한진그룹은 오너 2세를 제외하고는 40대 사장이 전혀 없고 50대 후반과 60대 사 장이 주류를 이루는 등 장수경영인이 많은 것이 특징.이근수 부회장은 공군대령 출신으로 국영항공사 시절 입사한 뒤 지금까지 휴가 한번 제대로 가지 않았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원로 경영인이다.황창학 부회장은 공채1기 출신으 로 그룹의 산 증인.대외관계에 발이 넓고 노사문제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장단에선 이태원 그룹운영위원회 실장과 송영수(宋榮壽)한진중공업사장이 돋보인다.

***長壽경영인 주류이뤄 이들은 서울대법대 동기로 협력과 경쟁의 관계이기도 하다.

李실장은 운영위원회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10년동안 실장을계속 맡아왔으며 그룹의 핵심 브레인 역할도 하고 있다.KS(경기고.서울대법대)출신으로 ㈜한진 사장과 대한종합운수 사장도 겸하고 있는 趙회장의 1급 참모다.특히 대한선주. 조선공사.코리아타코마 등 부실기업 인수에 발군의 역량을 과시했다.

송영수 사장은 공사 교관을 지낸뒤 69년 입사해 ㈜한진.한진해운 등 주요 계열사를 거쳤다.유도7단의 만능스포츠맨으로 조선공업협회장 및 유도협회 이사직도 맡고 있다.89년 인수한 한진중공업을 처음부터 맡아 만년적자에서 3년만에 흑자 로 돌려놓는등 정상화에 성공한 전문경영인으로 趙회장도 그의 말은 경청한다. 김성배 한진관광사장은 趙회장의 처남이지만 59년 입사후 30여년간 그룹에 몸담아온데다 관광업계 최초로 관광진흥탑을 수상하는 등 경영수완도 뛰어나 오너 가족이면서도 전문경영인쪽으로 분류할 수 있다.정하룡 한국항공 사장은 파리대학원( 정치학박사)을 나온뒤 경희대 교수를 지낸 학자출신이고,고충삼(高忠三) 정보통신 사장은 그룹내 유일한 경제관료(교통부 서기관)출신 최고경영자다.금융계열사들은 업종 특성으로 인해 전문가들이 맡고 있다.김두배(金斗培) 종금 사장은 은행 출신이고 박종익(朴鍾翊) 화재 사장은 보험업계,송영균(宋榮均)증권 사장은 증권업계에서만 일해온 사람이다.재계는 한진그룹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1세지도아래의 2세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趙회장의 아들 4형제가 그룹 경영을 나눠 맡고는 있으나 장자승계원칙이 정해진상태여서 그룹분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만기친람(萬機親覽)형인 趙회장의 의중에 따라 한진호(號)의 미래구도가 결정될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다음은 한화그룹편〉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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