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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97. 88서울올림픽

중앙일보 2008.06.24 00:48 종합 28면 지면보기
데뷔 30주년 무렵의 필자. 멋진 기념공연을 생각했으나 1988년 서울올림픽 때문에 1년을 미뤄야만 했다.
1958년 여름, 미8군 쇼에서 가수로 데뷔했으니 88년은 데뷔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행사가 열린 해다. 내 기억으로는 올림픽 개최 2년여 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의 중심에는 올림픽이 있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88년에 올림픽과 무관한 행사를 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관조차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대관을 한다 하더라도 올림픽과 무관한 공연이 성공할 리 없었다. 모든 국민의 관심이 온통 올림픽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데뷔 30주년 기념공연 한 해 미뤄
성화 안치된 시청 앞서 축가 불러

데뷔 30주년 공연을 염두에 두었던 나로서는 아쉽지만 한 해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왕 한 해를 연기한 바에야 그토록 서 보고 싶었던 미국 카네기 콘서트홀 공연도 함께 추진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카네기 콘서트홀은 2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음악당으로 운영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아티스트에게만 대관해주는 까다로운 곳이다. 1~2년 전에 신청해야 공연 스케줄을 잡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만 했다. 그러자면 남은 시간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지구촌 최대 축제인 서울올림픽 개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어마어마한 이벤트인 올림픽에 밀려 비록 데뷔 30주년 공연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서울올림픽은 내게도 진정 뜻 깊은 행사였다.



올림픽 성화는 고대 올림픽의 발원지인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다. 그렇게 채화된 성화는 비행기에 실려 개최국에 도착하고, 개최국 전역을 돌아 개최 도시 성화로에 안치된다. 서울올림픽 당시 성화는 8월 27일 제주도로 날아왔고, 이후 20여 일 동안 전국을 돌아 9월 16일, 드디어 시청 앞 성화로에 도착했다.



그 성화가 성화로에 안치되는 순간 나는 바로 그 앞에 서서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88올림픽 참가국은 모두 160개국. 최소한 160개국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역사적 순간에 내가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한국에서는 서울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서울토박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 패티 김은 ‘서울의 찬가’, ‘서울의 찬가’는 패티 김이라는 등식이 존재할 만큼 나와 ‘서울의 찬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 만큼 서울이라는 도시도, ‘서울의 찬가’라는 노래도 내게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고의 이벤트가 열리는 마당에 ‘서울의 찬가’가,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가 울렸다는 것은 한없이 자랑스럽고 뜻 깊은 일이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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