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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황세희의몸&마음] 광우병 파동과 국민 건강

중앙일보 2008.06.02 01:14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난 주엔 오랜만에 만난 후배 둘과 간단한 한정식을 먹었다. 다양한 종류의 요리가 한 상을 채웠건만 식성 좋은 남정네들은 빠른 속도로 그릇을 비웠다. 단 고기 반찬은 예외였다. 불고기는 물론, 야채와 저민 고기를 섞은 샐러드 접시에도 저민 고기만 소복이 남았다. 그들은 날씬한 30대 인텔리 남성이다. 한 명은 언젠가 고기를 좋아하지만 비싸서 못먹는다는 말을 했었고 다른 후배는 자신을 “입이 휴지통이라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이라는 민망한 어법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 그들이 찬에서 고기를 골라내느라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든 나는 “광우병 걸릴까봐 그래요? 이건 호주산이잖아요? 그리고 미국 소 먹고 광우병 걸릴 확률도 벼락 맞을 만큼 희박하다는데, 수입도 되기 전부터 좋아하던 고기를 안 먹고 그래요?”라는 짓궂은 질문을 했다.

순간 그들은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며 민망하게 웃더니 “광우병 사태 이후 고기반찬은 왠지 기분 나빠 안 먹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하긴 최근 들어 야채 부페 식당엔 손님이 증가하는 반면 고깃집엔 빈 자리가 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걸 보면 후배들만의 심리는 아닌 듯 싶다.

부잣집 밥상의 상징이던 고기 반찬이 급기야 여기저기서 홀대받는 처지가 된 셈이다.

현재의 상황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흥미롭게도 많은 의료계 인사들은 지금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유는 이렇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는 고기로 대표되는 고칼로리 영양식이 초래한 비만이 국민 건강 최대의 문제점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현재 성인 비만인구는 30% 이상이며 50대 비만인구는 50%를 웃돈다. 그 결과 비만이 중요한 원인인 심혈관 질환은 사망원인 2위를 차지한다. 사망 원인 1위인 암도 비만과 직결되는 유방암·대장암·전립선암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을 걱정하는 의료계 인사들은 지난 10여 년간 각종 매스컴을 통해 ‘고기는 적게, 야채는 많이 먹자’, 또 ‘단백질은 고기보다 생선을 통해 섭취하자’는 식의 홍보를 지속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내장과 뼈까지 삶아 먹는 쇠고기 선호 식습관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원시시대부터 먹거리 전쟁을 치러온 인간의 뇌에는 고칼로리 식품인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실로 비만한 명의가 심장발작 때문에 병원에서 일하다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고기에 대한 본능적 식탐은 없애기 힘들다. 그런데 흉흉해진 쇠고기 민심이 고기 기피증으로 연결되면서 의료계의 고민거리를 덜어줄 ‘호재’로 떠오른 것이다. 의학계에선 이런 방법을 ‘혐오 치료’로 부르며 성도착증이나 알코올 중독 환자 치료에 이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성도착 욕구가 일 때마다 나쁜 냄새나 전기자극을 줘 혐오감과 연결시킴으로써 성도착 욕망을 억제하는 식이다.

고기는 멀리, 야채는 가까이 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10년, 20년 후 의료계는 현재의 광우병 민심을 촉발시킨 한미 소고기 협상을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 혁명적 기여를 한 역사적 협상으로 평가하지 않을까.

아니, 만성병 환자가 급속히 감소해 의료계 불황(?)을 초래한 사건으로 지목할지도 모르겠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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